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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금융 위기 키우는 ‘잘못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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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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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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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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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 ‘왜곡된 기억’이 파장 키워
경제적, 기술적 변화 ‘간과’
‘투자자 교육’보다 ‘시스템 보완’이 중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 은행은 예금자들이 몇 시간 만에 420억 달러(약 58조원)를 인출하며 단 하루 만에 파산을 맞았다. 2008년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 파산 시 인출 금액의 두 배가 훨씬 빠른 시간에 빠져나갔다. 한군데 몰린 비보험 예금과 타 금융 시스템과 복잡하게 얽힌 은행 계좌, 유언비어를 확산시킨 소셜미디어, 두려움을 실시간 행동으로 옮기게 한 디지털 플랫폼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실리콘밸리 은행 사태, ‘잘못된 기억’이 원인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 Stability Board)는 2024년 분석을 통해 기술 발전이 촉발하는 은행 인출 사태는 기존의 유동성 규제로 막을 수 없다고 진단한다. 여기서 문제는 투자자나 정책 당국이 이전에 일어난 위기를 기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못 기억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2023년 예금 인출 사태 시 2008년 신용 위기 상황을 잘못 대입한 것이다. 이는 패닉을 가속화하고, 회복을 지연시켰으며, 정책 대응을 왜곡시켰다.

상하이 종합지수와 ‘투자자 기억’ 추이 비교
주: 연도(X축), 상하이 종합지수(적색, Y축), 투자자들이 기억하는 금융 사건(검정)

금융 위기가 지나면 대응은 한결같다. 모두가 과거를 기억하고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며 잘못된 기준점을 대입할 때가 많다. 2023년 당시 실리콘밸리 은행의 문제는 취약한 사업 모델과 빠른 자금 흐름을 따라 패닉이 삽시간에 전파된 것으로 2008년의 신용 붕괴와 상황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과거의 공포를 새로운 상황에 대입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기억이 비교를 불러낸 것인데 비교가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못 불러낸 선례를 통해 아무리 강조해도 투자자들은 안정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틀린 반사작용을 통해 시장 변동성을 키운다. 특히 투자자들의 금융 이해력이 낮은 시장에서는 과거와의 비교가 ‘말 그대로’(literally)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전 위기 패턴에 따른 ‘반복적 반응’이 문제

작년과 올해 금융 시장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기억에 따른 주목’(memory-induced attention)은 실제 가치를 왜곡하기 쉽다. 특히 현재 벌어지는 일이 최근 금융위기를 닮았다면 투자자들의 과대평가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크다. 2008~2024년 가구 투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과거 수익률과 변동성이 소매 투자 패턴의 40%를 좌우하는데, 특히 저소득 청년층이 수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향에 따른 것이다.

그렇게 과잉 반응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2020년 위기 후 빠른 시장 반등에 대한 기억이 지배한다면 투자자들은 ‘저가 매수’를 위해 몰려들 것이다. 2008년의 기억이 강력하다면 루머가 돌 때마다 대량 매각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이럴 때마다 위기는 길어지고 강력해지며 펀더멘털(fundamentals)에서 멀어진다.

과잉 반응이 금융 위기에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2023년 사태에서 보인 속도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모바일을 통한 비보험 예금과 소셜 미디어의 관여가 결합하며 작은 불씨가 들불처럼 퍼졌는데 여기서도 잘못된 기억이 불길을 더욱 키웠다. 사태의 본질은 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 가치 하락(duration shock)이었는데 이를 지불 능력 위기(solvency crisis)로 본 투자자들이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자산을 신속하게 매각하여 부채 수준을 낮춤)에 나선 것이다. 또 2020년 신속한 시장 회복이 기억은 투기적인 반등으로 이어졌다.

소매 투자 흐름과 시장 변동성 추이
주: S&P 500 변동성 지수(적색), 소매 투자 비중(%)(검정)

투자자 교육보다 ‘시스템 설계’가 우선

문제가 무지가 아니라 잘못된 비교라면 정책 대응도 이에 맞출 필요가 있다. 과거의 교훈을 무차별적으로 반복하는 대신, 피해를 흡수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인출 사태에 맞춰 준비금 정책도 적응할 필요가 있다. 소매 투자자들의 몰림을 분산하기 위한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양화도 중요하다. 또 자동 담보 조정(dynamic margining)을 포함한 속도 조절 장치를 통해 과도한 매수를 지연시킬 필요도 있다.

과거의 사례 중 어떤 것을 적용할지에 대한 안내도 필요하다. 간단한 지표 몇 개면 2008년의 신용 붕괴와 2020년의 팬데믹 쇼크, 2023년의 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 가격 하락 사태를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기억을 바로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를 견딜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할 점이 우선순위 설정(sequencing)인데 취약성이 높아진 시기에는 연금 기금, 보험사 자산관리사 등 전문성과 신중함을 갖춘 금융 주체들이 먼저 기준을 설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소매 투자에 대한 규제라기보다는 속도 조절에 가깝다. 항공관제를 통해 이륙에 시차를 둠으로써 충돌을 방지하는 것과 같다. 상황이 안정되면 통제를 늦추면 된다.

결론적으로 2023년의 은행 인출 사태는 2008년을 잊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간 얼마나 큰 기술 변화가 위기의 속도와 요인을 바꿨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를 ‘말 그대로’ 기억한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관리하는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Memory Misfires: Why Teaching the Last Crisis Risks Slowing the Next Recover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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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