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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금융감독원이 최근 자금시장 경색과 관련해 증권사·건설사 부도 등 근거 없는 악성 루머가 확산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근거 없는 허위 사실 유포·확산으로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투자자의 피해와 자본시장의 신뢰도 저하가 염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금감원은 정확한 근거 없이 특정 기업에 대해 신용·유동성 관련 위기설을 생성·유포하는 행위 등에 대해 한국거래소와 함께 집중적으로 감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위기감에 편승해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루머 등을 고의로 생성·유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히 조치할 방침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악성 루머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 또는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를 적발할 경우 신속하게 수사기관에 이첩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구체적 사실관계 확인 없이 풍문에만 의존해 투자할 경우 큰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어 투자에 신중을 기해달라”며 “근거 없는 악성 루머 등 불공정 거래 단서를 입수할 경우 즉시 금감원이나 한국거래소에 제보해달라"고 밝혔다.
지난 19일에 금융업계 일대에 퍼진 속칭 '찌라시'는 "(받은 글) 롯데캐피탈이 15%에도 기업 어음이 소화가 안 된다... 지금 시장은 완전히 냉각 상태... A 건설, B 건설 부도 이야기 나오고, C 증권, D 증권은 매물로."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여의도 증권가는 물론 한국은행과 정부 부처로도 악성루머가 떠돌아 한은 관계자들이 시장에 "사실이냐"고 되물을 만큼 일파만파로 퍼졌다. 하지만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금시장이 얼어붙었다는 것 외에는 맞는 이야기가 없다"며, 다만 현재 시장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런 찌라시에도 멀쩡한 회사가 흔들리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허위사실 유포로 본 피해는 누가 보상하나?
현행 명예훼손 및 모욕죄 처벌은 형법 제307조에 따라 사실 적시일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허위 사실의 적시일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어 민법 조항에 따라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손해가액에 대한 청구권을 갖는다. 현실적으로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더라도 대부분 벌금 50만원 남짓의 약식 처벌에 그친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도 손해액을 확실히 산정하기 어려워 대부분 소송 비용 이상의 피해액을 보상받는 경우는 드물다.
기업법무 중 손해배상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손해보험사로 넘어갈 경우 손해인정률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금감원이 재조정에 나서는데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대부분의 피해자가 적당한 금액에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때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의 납득할 수 없는 피해액 산정에 불복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피해액의 일부를 보전받고 끝나게 된다. 때로 법률자문 비용이 더 큰 경우도 많아 상담하러 오는 고객들에게 대형사의 큰 피해보상 건이 아니면 담당하려는 변호사가 드물다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고 알려왔다.
실제 사례와 교묘히 섞은 허위사실 유포, 막기 어려워
충남 지역 6위 종합건설업체인 우석건설이 지난달 말 납부기한인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가 난 데 이어, 이달 말 유예기간까지도 상환이 불가능한 상태로 알려졌다. 우석건설 관계자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상환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최종 부도가 불가피한 셈이다. 지난해 매출액이 1,200억원에 해당하는 중견 건설사의 부도가 눈앞에 닥친 만큼 연쇄부도가 예상된다는 점을 악용해 안정적인 건설사들까지 동반 부도 위험으로 오해받고 있다는 항의에 결국 금감원이 주의 통보를 내린 것이다.
대전 일대의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재작년에 한창 우석건설이 잘나가던 시절 같이했던 프로젝트 때문에 우리도 부도나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고 들었다. 대체 시공사 선정 이야기가 나온다고 그래서 화들짝 놀랐다"며 불평하기도 했다.
증권사 중 한 곳에 부도 의혹이 이는 것도 이달 들어 강원도가 빚보증을 포기한 레고랜드의 채권을 국내 10개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레고랜드가 발행한 자산유동화증권(ABCP) 2,050억원 중 1,950억원을 신한투자증권(550억원), IBK투자증권(250억원), 대신증권(200억원), 미래에셋증권(200억원), 삼성증권(200억원), NH투자증권(150억원), 한국투자증권(150억원), DB투자증권(150억원), 유안타증권(50억원), KB증권(50억원)이 나누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한 곳이 한 때 부도 소문이 돌았으나 언급된 증권사들의 관계자는 소문 진화에 나서면서 현재는 소문의 출처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자금 시장 압박, 헛소문 대응에 최종 대부자인 정부까지 나서야 하나?
전날 퍼진 찌라시에는 롯데캐피탈이 연 15%대 고금리로 기업어음(CP) 발행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열사인 롯데건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에 어려움을 겪자 롯데캐피탈도 덩달아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었다는 설명이었다. 롯데캐피탈 관계자는 '찌라시'에 불편한 투를 내비치며 연 5~6%대로도 순조롭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유동성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함께 언급된 롯데건설 자금사정도 찌라시의 내용과는 다르다. 공시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등 포함)은 6,000억원에 이른다. 단기차입금은 6,091억원으로 대부분 내년에 만기가 도래한다. 올 3분기에 도래하는 단기차입금은 수출금융을 제외하면 1,800억원 가량이다. 단기차입금을 모두 상환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편이다. 여기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다음 달 18일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기업들이 유상증자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악성 루머가 돌 만큼 시장이 안 좋아진 상황이라는 지적과 함께,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소문 차단한다는 말보다는 정부가 위기 기업들에 준공적자금 수준의 지원을 하겠다"는 정책 개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