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發 마이크로 드라마 돌풍
이용자 7% 증가한 6억6,000만 명
미국서만 수천만 달러 수익 올려

편당 2분 분량으로 높은 몰입감을 주는 ‘마이크로 드라마’가 중국에서 폭발적 성장을 이어가면서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해내고 있다. 눈 깜짝할 새 이별하고 다시 태어나며 결혼까지 해버리는 이 드라마들은 모바일 세대의 시간 감각과 정서적 반응 구조를 정확히 겨냥해 미국 등 글로벌 콘텐츠 소비 방식을 재편하는 양상이다.

마이크로 드라마 수익 대부분 미국서 나와

17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의 마이크로 드라마는 최근 미국에서 폭풍 성장을 기록하며 기존 콘텐츠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새로운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이크로 드라마는 중국에서 2018년 등장한 새로운 형식으로, 중국의 방송·인터넷·게임 감독기구인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은 2020년부터 영상물 심사 체계에 해당 항목을 추가했으며 2022년부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넷캐스팅서비스협회(CNSA)에 따르면 지난해 말 마이크로 드라마 이용자는 6억6,200만 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7.3% 늘었으며 작년에만 총 70억2,000만 달러(약 9조7,00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이는 중국 영화 산업의 총 박스오피스보다 많은 수치다. 아울러 중국계 마이크로 드라마 앱 릴쇼트(ReelShort)가 2023년 11월 미국에서 틱톡을 제치고 다운로드 1위를 차지하는 등 해외 시장 진출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다.

현재 수십 개의 중국 마이크로 드라마 플랫폼이 글로벌 시장에 출시돼 있으며, 릴쇼트를 비롯해 드라마박스(DramaBox), 굿쇼트(GoodShort) 등이 초기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마이크로 드라마를 구매하는 큰손은 미국이다. 전 세계 마이크로 드라마의 수익 49%가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과실은 릴쇼트와 드라마박스의 몫이다. 양사는 올해 1분기 인앱구매 수익으로 각각 1억3,000만 달러(약 1,800억원), 1억2,000만 달러를 기록해 업계 1, 2위를 달렸다. 특히 2023년 말 샹시닝 감독이 연출한 '억만장자 남편의 이중생활(The Double Life of My Billionaire Husband)'은 릴쇼트에서 무려 4억8,5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미국에서 크게 흥행했다.

사랑·복수·신분 역전 줄거리, 중독성 있는 짧은 영상 포맷

마이크로 드라마는 짧고 강렬한 감정선과 반전을 특징으로 하는 초단편 드라마다. 1~2분짜리 에피소드로 구성되며 대부분 세로 화면으로 제작된다. 틱톡과 더우인을 통해 형성된 모바일 중심 소비 습관을 반영해 언제 어디서나 몰입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드라마는 주로 사랑, 배신, 복수, 금지된 신분, 정체성 반전, 갑작스러운 성공 같은 감정 중심 서사를 다룬다.

이처럼 줄거리는 종종 과장되거나 진부한 듯하지만 ‘1분마다 클리브행어(극의 절정 단계)’라는 제작 전략을 통해 시청자에게 중독적 몰입감을 제공한다. 시장조사기관 센서타워의 리서치 및 인사이트 부사장 시마 샤는 지난달 CNBC에 “중국의 마이크로 드라마들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시청 습관을 정확히 공략하고 있다”며 “스토리를 보고 바로 감정적으로 만족하는 그 순간이 핵심이다. 약간 과장된 면은 있지만 그 과장이 오히려 재미를 준다”고 분석했다.

마이크로 드라마는 처음 몇 편은 무료로 제공되지만 이후에는 유료로 전환된다. 이 때문에 한 편 전체를 보는 데 10달러 이상 드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넷플릭스 월 구독료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있다. 2021년~2023년 사이 중국의 마이크로 드라마 시장 규모는 10배 증가했으며 2027년까지 140억 달러(약 1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콘텐츠 제작과 소비 방식 재편

마이크로 드라마는 제작 측면에서도 효율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기존의 TV 시리즈가 수개월~수년에 걸쳐 제작되는 것과 달리 이 앱들은 한 달에 8~10편, 연간 100편 이상의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약 두 달이면 충분하며 무명 배우들과의 협업으로 진행돼 비용도 적게는 20만 위안(약 4,000만원)으로도 제작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제작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중국의 대기업들도 마이크로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틱톡의 중국판인 더우인 등 숏폼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최근 이들 기업이 제작한 마이크로 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다. 텐센트와 바이두는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서방 시청자를 겨냥한 마이크로 드라마는 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영어로 제작된다. 재벌물이나 복수극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늑대인간과 뱀파이어 같은 판타지 장르가 인기다.

이에 할리우드도 대응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모바일 전용 세로 피드를 출시했고, 디즈니는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드라마박스에 투자할 계획을 공개했다. 샹 감독은 "틱톡과 같은 짧은 비디오 앱이 사람들이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에 더 많은 서구 제작사들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마이크로 드라마는 특히 할리우드 파업 등으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미국 내 인디 제작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샹 감독 역시 할리우드에서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후 마이크로 드라마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