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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반기 경제 '적신호' 부동산 장기 침체로 소비 심리 최악 유일한 성장 엔진 ‘수출’마저 꺼질 위기

중국의 올 하반기 경제 회복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생산·투자 지표들이 줄줄이 꺾이고 있는 데다, 불안한 경기 전망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있다. 하반기 들어 소비·생산·투자 등 주요 경제지표가 동시에 나빠져 주춤하던 실업률까지 다시 오름세로 전환했다. 중국 정부가 이른 시일 내 대규모 내수 부양책을 내놓지 않으면 하반기 경기 침체가 가속화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소매판매 올 최저, 산업생산도 위축
18일 중국 국가통계국과 관세청에 따르면 중국의 올 7월 산업생산과 소매판매, 고정자산 투자 등 핵심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최근 수년간 중국 경제를 탄탄하게 견인해 온 산업생산은 7월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하는 데 그쳐 지난해 12월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낮게 나타났다. 전월(6.6%)보다 하락한 것은 물론이고 시장 전망치(5.9%)에도 미치지 못했다.
중국 내수의 가늠자로 평가받는 소매판매도 부진했다. 소매판매는 백화점·편의점 등 중국 내 소매점 판매 수치를 의미한다. 7월 소매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 늘어나는 데 그쳐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작은 증가폭을 보였다. 소매판매 역시 전월(4.8%)은 물론 시장 전망치(4.6%)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성적표를 거뒀다.
농촌을 뺀 공장·도로·전력망·부동산에 대한 자본 투자 변화를 보여주는 올 1∼7월 고정자산 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7월 고정자산 투자만 놓고 보면 지난해 동기 대비 5.3%가량 감소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1∼2월 이후 최악의 수치다. 특히 부동산 부문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올 1~7월 부동산 개발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2% 급감해 최근 1년 새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실업률도 다시 치솟고 있다. 올여름 사상 최대 규모의 대학 졸업생이 노동 시장에 진입해 7월 전국 도시 실업률 평균은 5.2%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0.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中 수출 감소 충격, 소비 확대로 못 막는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올해 11월까지 관세 휴전을 약속했지만 중국의 수출 타격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의 관세전쟁으로 수출 타격이 커지는 가운데 내수 부진까지 맞물리며 하반기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최근 양국 간 관세 실행이 90일 연장되긴 했으나 여전히 미국의 대중 관세는 높은 편이다. 글로벌 무역정책을 분석하는 비영리단체인 글로벌트레이드얼러트(GTA)의 8월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대미 수출품은 제품별 차등 세율 등을 고려할 때 지금도 평균 약 43.5%의 관세를 부담하고 있다.
올 상반기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 기간에 따른 선수요 덕분에 양호한 수출 실적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상반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무역 갈등의 충격이 가시화하고 성장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해지고 있다. 스위스 자산운용사 롬바드오디에의 이호민 선임거시전략가는 “이번 중국의 경제 지표 부진은 관세로 인한 경기 침체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그간 미중 관세전쟁에서 ‘중국 승리’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이 국내총생산(GDP)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미미한 것을 이유로 꼽았다. 실제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액(4,389억 달러·약 608조원)은 중국 GDP(17조7,900억 달러·IMF 자료) 대비 2.5% 수준이다. 중국 총수출에서 2018년 19.2%던 대미 수출 비중은 지난해에 14.7%로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성장 기여도가 45%에 달하는 국내 소비를 5~10%만 올리면, 미국이 대중관세를 100% 넘게 부과해도 대미 수출 감소 충격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게 이들 논리다.
중국 당국도 미·중 대결 구도 속에 ‘내수 진작’을 핵심 과제로 꼽고 있다. 지난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정부 업무 보고서’에서는 ‘소비(消費)’라는 단어만 32차례 등장했다. 이후 3월 17일 중국 국무원은 자동차·가전제품·스마트폰 구매 보조금 확대 같은 30개 항목의 ‘소비 진흥을 위한 특별 행동계획’을 내놨다. 해당 계획은 “개혁·개방 조치후 가장 광범위한 소비 활성화 조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디플레이션, 명목GDP 낮아져 실질GDP 체감 크지 않아
하지만 이 같은 부양책은 좀처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잠재적 위험요소로 분류되는 디플레이션(장기 물가하락을 동반한 경기부진) 때문이다. 장기적 저물가에서 비롯된 디플레이션은 역사상 반면교사로 삼을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중국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로 지목된다. 실제로 중국은 올해 2분기 5.2%의 전년 동기 대비 GDP 성장률을 기록했는데, 물가의 저조한 흐름으로 인해 명목GDP 증가율은 3.9%에 그쳤다. 이는 2023년 이후 최대치다.
실질GDP에 물가 변동을 반영한 명목GDP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그대로 투영된다. 명목GDP에서 실질GDP를 뺀 GDP디플레이터가 커질수록 실질GDP를 제대로 인정하기 어렵게 된다. 실제 2분기 GDP디플레이터는 -1.3%로 확대됐는데 2023년 2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이를 두고 중국 국가금융과 발전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물가는 민생의 체온계"라며 "명목성장 둔화가 미시 주체들이 경제성장을 체감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3년 3분기 이후 중국 정부가 발표한 실질성장률이 5% 내외로 유지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물론 해외에서 중국의 경제성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2023년 3분기 이후 중국의 명목성장률은 사실상 4.2%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연구소는 "거시지표와 미시체감 간에 온도차는 이런 흐름 속에서 더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
이는 중국 정부 최대 고민 중 하나인 정부 부채 증가로 이어진다. 아무리 정부가 금리를 내려도 가계와 기업들은 제대로 현금 흐름을 창출하거나 투자하지 못하고, 여기서 이뤄진 경제적 불균형과 손실은 정부가 부채를 늘리면서 떠안아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분기 중국의 가계 부채와 기업 부채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0%와 6.9% 늘었는데 여전히 역사적 저점 수준이다. 반면 정부 부채는 전년 대비 무려 21.1%나 늘었는데, 이는 2021년 이후 최고 증가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