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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국내 경제자유구역 제1호 외국대학인 독일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교(FAU) 부산 분교가 한국을 떠났다.
FAU는 2008년 처음 국내 설립을 위해 부산시와 협의를 시작했고, 2011년에 개교한 이래 단 한 해도 정원 100명을 채우지 못하다 2017년 들어서는 철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에 부산시는 해법을 찾겠다고 했으나, 결국 2019년에 FAU가 한국을 떠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국내에 들어온 해외 대학들, 학생 안 들어오고 운영비 부담만 가중
1743년 독일 바이에른주에 설립된 국립대학교인 FAU는 화학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손꼽힌다. 독일 바이에른주 일대에 있는 바스프(BASF) 등의 주요 독일 기업들이 채용하는 인재를 매년 산출하는 대학이기도 하다. 부산시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하면서 첨단 연구개발 분야 육성을 위해 FAU 부산 분교를 유치했다. 송도시와 더불어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된 지역구 중 해외 대학 유치 1호다.
FAU 관계자에 따르면 설립 당시에는 해외 명문대학의 교육 과정을 도입해 국내 우수 인력들을 교육시키고, 산학협력을 통해 국내 시장 전반의 산업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매년 학생 수 14~65명 수준을 유지하는 등 정원 100명을 단 한 번도 채우지 못하며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2018년에는 매년 10억원씩 지원되던 국비마저 끊기면서 당초 지원 종료가 예정됐던 2017년에 사실상 폐교를 확정했다는 것이다.
부산시는 2017년 당시 부산 시비 지원 등을 통해서라도 FAU 부산 분교의 철수를 막겠다고 밝혔으나, FAU 관계자 측은 이미 적자를 보고 있는데 더 큰 적자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약속했던 산학협력도 진척 없어
관계자에 따르면 FAU 부산캠퍼스는 설립 당시 남동임해공업단지의 주요 화학 기업들과 대규모 시너지를 예상하고 다수의 실험장비를 도입했으나, 과다한 유지비 부담은 물론 학부 과정 도입을 위한 법적 지원의 지연과 교수 부족에 따른 연구질 저하까지 함께 겪었다.
특히 산학협력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국내 화학 기업들이 서울대, 카이스트 등의 국내 주요 대학과 맺은 학연·혈연·지연 등에 따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정부 지원 프로젝트들에 집중하고 있어, FAU가 제공할 수 있는 고급 화학 연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부산시에서도 같은 문제를 인하긴 했으나, 화학 전문가가 없는 탓에 구체적인 지원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3월 국내 최초로 전남 광양에 개교했던 네덜란드 국제물류대학의 분교(STC-Korea)도 같은 이유로 2013년에 폐교 절차를 밟았다. 국내 기업들과의 산학협력을 통한 추가 수익 모델을 기대했지만, 학생 모집 저조를 넘어 역량 있는 학생들을 받을 수 없었던 탓에 해외 대학교수들이 일찍부터 모교로 귀국했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도 정부 재정 지원에 의존, 해외 대학은 유치한 책임지려면 장기간 재정 지원 필수
익명을 요구한 서울 내 모 대학교수는 국내 대학들도 정부 지원금 없이는 조직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국내에 발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생 대학들이 자리 잡기도 전에 본국에서 자금을 끌어와서 자체 생존하라고 하니 유지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이 선뜻 해외 대학의 국내 분교를 선택하지도 않을뿐더러 선택한다고 해도 실력파 학생들은 드문 데다, 심지어 국내 네트워크 부족으로 연구·취업 지원 등에 애로사항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지원까지 끊어버리니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 대학을 불러서 투자를 시켰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지자체와 정부가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장사 논리를 따라갈 수 없는 해외 대학들이 포기 선언을 한 것"이라는 평도 덧붙였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본국 대학을 운영하기도 바쁜 해외 대학들을 한국에 유치할 때는 거꾸로 많은 당근을 제시해야 했음에도 한국 정부가 직접 투자하지 않고 해외 대학에 투자를 요구했던 것이 폐교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3명이나 배출한 세계적인 명문대학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장기간 재정 지원, 학생 모집, 산학연 협력 방안 마련 등 '대형 당근'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굳이 한국 시장에 힘을 쏟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