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하고 말지" 외면받는 청약통장, 그나마 남은 수요마저 양극화
입력
수정
청약통장 계좌 수, 2022년 이후 꾸준히 감소해 미분양 누적된 지방에서 감소 흐름 특히 두드러져 수도권·지방 고가 단지, 사실상 청약 수요 독식

국민 주거 사다리로 불렸던 주택청약종합저축 계좌 수가 2022년 정점을 기록한 이후 연일 감소 흐름을 보이고 있다. 청약통장 금리가 시중 정기예금 금리를 밑도는 가운데, 지역별로 분양가 상승·미분양 적체 등 악재가 누적되며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소비자가 급증한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특정 지역·단지에만 청약 수요가 쏠리는 양극화 현상도 가속화하는 추세다.
청약통장의 시대는 끝났다?
24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집계에 따르면, 청약통장 계좌 수는 2022년 7월 2,702만 개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 2,583만 개, 2024년 2,548만 개, 2025년 7월 2,511만 개 등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지방의 감소 속도가 한층 빨랐다. 5대 광역시 청약통장 계좌 수는 2022년 530만 개에서 2025년 475만 개로 55만 개(-10.4%) 줄었고, 기타 지방도 665만 개에서 614만 개로 51만 개(-7.7%) 적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은 624만 개에서 591만 개로 33만 개(-5.3%) 감소했다.
은행권은 청약통장 가입자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금리 역전을 꼽는다. 2022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청약통장 금리는 연 2% 수준으로 기준금리(1%대)와 비슷했다. 하지만 같은 해 하반기부터 기준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했고, 2023년 초에는 3%대까지 치솟았다. 청약통장 금리 역시 뒤늦게 기존 연 2.0~2.8%에서 2024년 연 2.3~3.1% 선까지 인상됐지만, 3% 후반 수준의 금리를 제공하는 시중 정기예금과 비교하면 매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수도권에서는 높은 분양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민간 아파트 분양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민간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는 ㎡당 1,374만5,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3% 상승했다. 수도권 평균 분양가 역시 ㎡당 879만4,000원으로 같은 기간 4.81% 올랐다. 이는 설령 당첨이 되더라도 대출에 더해 최소 수억원의 현금이 있어야 할 정도로 높은 가격대다. 근로 기간이 길지 않은 30대나 40대 초반 직장인 입장에서 수도권 청약은 사실상 '그림의 떡'인 셈이다.
지방 분양 시장의 현주소
지방 지역에서는 분양 시장 침체 흐름이 청약통장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3,734가구에 달하며, 이 가운데 무려 78%인 4만9,795가구가 지방에 몰려 있다. 부진한 지역 성장 동력과 인구 감소로 인한 주택 수요 감소, 공급 과잉 등 악재가 누적되며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고가 하이엔드 단지만이 침체 상황을 뚫고 예외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는 등 양극화 현상마저 본격화하는 추세다. 부산의 올해 청약 시장 상황을 살펴보면 이 같은 흐름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부산에서는 조합원 취소분을 제외하고 총 17개 민영 단지가 일반 분양에 나섰는데, 이 중 평균 경쟁률이 1대 1을 넘긴 곳은 5개 단지에 불과했다. 흥행에 성공한 5개 단지는 대부분이 분양가가 매우 높은 고급 주거 시설이었다.
일례로 이달 12일 청약이 진행된 '써밋 리미티드 남천'의 경우, 1순위 접수 결과 720가구 모집에 1만6,286명이 신청해 평균 22.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24가구가 공급된 전용 84㎡B의 경우 해당 지역에서 7,840명이 접수해 326.6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 단지는 대우건설이 하이엔드 아파트 브랜드 '써밋'을 새롭게 단장해 처음으로 리미티드 브랜드를 적용한 단지로, 전용 84㎡ 기준 최고 분양가가 16억2,380만원에 달한다. 펜트하우스(전용 243㎡)의 분양가는 최고가 기준 115억원 수준이다.

수도권-지방, 청약마저 양극화
이 같은 양극화 흐름은 수도권과 지방으로 비교 범위를 넓혀도 뚜렷히 관측된다. 분양평가 전문 회사 리얼하우스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지난달까지 공고된 민간 아파트 1순위 청약 경쟁률을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 수도권 정비 사업지에는 1,592세대 모집에 7만4,078명이 청약해 46.53대 1의 평균 경쟁률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비수도권의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은 7.27대 1에 그쳤다. 이는 수도권 대비 눈에 띄게 낮은 수치이자, 지난해(33.67대 1)의 4분의 1 수준이다.
수도권 청약 경쟁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공급 감소'가 있다. 지난 1분기 서울에서 일반에 분양된 아파트 물량은 482가구에 불과했다. 지난 2월 서초구 방배동에 공급된 ‘래미안 원페를라’가 유일한 분양 단지였던 탓이다. 같은 기간 경기 1,179가구를 포함해 수도권 전체에 분양된 아파트 물량은 1,857가구였다. 이는 지난해 1분기 분양 물량(1만6,181가구)과 비교하면 89% 감소한 것이며,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0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6·27 대출 규제가 청약 시장에 영향을 줬다는 진단도 나온다. 대출 장벽이 높아짐에 따라 매매 대신 청약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수도권 일부 지역은 집값이 시세보다 저렴해 청약 수요가 집중되는 추세다. 실제로 대출 규제가 시행된 이후인 지난 7월, 서울 송파구 ‘위례리슈빌’ 전용면적 105.46㎡의 무순위 청약에는 자그마치 7만4,051명이 몰렸다. 해당 주택의 분양가는 9억2,458만원으로 같은 면적의 최근 실거래가(약 20억1,000만원)보다 10억원 이상 저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