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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기업들, 고금리 기조 속 향후 2년간 만기 돌아오는 총 채권 규모 약 1,000조 육박 한국도 미국發 고금리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 커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부동산發 경기 침체가 신흥국 및 우리나라 경제 발목 잡아
신흥국 기업들의 도미노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 자산의 벤치마크가 되는 미국 10년물 장기채 금리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고치로 치솟고 있는 데다, 미 연준의 고금리 기조가 내년에도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퍼지면서 투자자들의 신흥국 회사채에 대한 요구 수익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나라 또한 미국발 고금리에 따른 자본 이탈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기업 대출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는 상황인데, 비싸진 이자 비용으로 인해 리파이낸싱(재융자)에 차질을 빚게 돼 줄도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도 자국 부동산발 경기 위축으로 인해 신흥국 및 우리나라에 경제 '경고음'을 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머징 마켓 신용 경색 우려
29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주요국 중앙은행의 고금리 장기화 정책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채 금리가 약 15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개발도상국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회사채의 금리는 '무위험이자율(통상 미국채10년물 금리)'과 '부도 스프레드'의 합으로 계산되는데, 이 중 무위험이자율이 치솟으면서 투자자들의 회사채에 대한 요구 수익률도 크게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미국 장기채 금리가 오른 이유는 고금리가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채권 투자자들 사이에서 확산됐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9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은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다"며 "앞으로 몇 분기 안에 인플레이션이 안정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고금리에도 불구, 향후 미국 경제에도 인플레이션이 잔존할 가능성은 높은 만큼, 통화 긴축의 고삐를 늦추긴 아직 이르다는 것을 채권 시장에 명백히 전달한 셈이다.
또한 블룸버그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기업들의 회사채 중 2024년 만기의 달러 및 유로화 표시 채권 규모는 4,000억 달러(약 543조480억원)에 이른다. 2025년 만기의 달러 및 유로화 표시 채권 규모도 3,170억 달러(약 430조3,655억원)에 달한다. 아울러 업계에선 개발도상국 기업들의 향후 총 2년간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규모는 7,170억 달러(약 974조원)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 신흥국 시장에서 신용리스크가 높은 기업들, 즉 부도 스프레드가 높은 기업들 중심으로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기업들은 수익성 및 재무 구조가 탄탄해 높은 차입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경우 2년 뒤 만기가 돌아올 때 회사채 요구 수익률이 지나치게 높아짐에 따라 리파이낸싱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블룸버그는 이날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추후에도 고금리가 유지된다면, 필요한 자금의 10분의 1 수준만 롤오버(만기 연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 한국도 위험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 기조'는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 속속 발표되고 있는 실물 경제 지표들이 해당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9월 미국의 신규 일자리 수는 33만6천 개로, 8월 22만7천 개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또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도 전년 대비 3.7% 상승했는데, 이는 월가 애널리스트 컨센서스(3.6% 상승)를 웃돈 수치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대외적 변수가 등장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러-우 전쟁이 종결되지 않은 상황인 데다, 심지어 최근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이란이 참전을 시사하면서 유가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장기화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당초 물가 안정 목표치인 인플레이션 2%를 달성하기 위해선 현 고금리 기조를 길게 유지할 수밖엔 없을 것이라는 게 미국 통화정책의 향방을 바라보는 금융 업계의 시각이다.
아울러 미국 장기채 고금리 우려에도 불구, 미국이 견조한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점도 고금리 장기화의 근거로 꼽힌다. 지난 26일(현지 시간) 미 재무부가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전분기 대비 성장률은 4.9%로, 기존 전망치인 4.5%를 대폭 상회했다. 미국의 경제 성장세가 계속 유지되고 있고, 대내외적 변수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는 높은 만큼, 미 연준이 굳이 조기 금리 인하를 선택할 유인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나라도 미국발 고금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채 고금리로 인해 글로벌 유동성이 미국으로 대거 쏠리면서 신흥국을 필두로 전 세계 국가들의 자금 이탈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역시 자칫 과거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재현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고금리 상황 속에서 리파이낸싱이 여의치 않자 결국 과도한 기업부채가 터지면서 촉발됐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이 공개한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비(非)금융 기업 부채 비율은 GDP 대비 118.4%로, 전 세계에서 다섯째로 높은 형국이다. 심지어 부동산 관련 빚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최근 5년간 가계부채 비율 상승률도 전 세계 1위인 상태다.
휘청거리는 중국 경제도 신흥국 경제에 '경고음' 알려
이뿐만 아니라 부동산 위기로 인해 중국의 경제도 휘청거리면서 신흥국 경제에 경고음을 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1위 부동산 개발 업체 컨트리가든(중국명 비구이위안)은 지난 10일(현지 시간) 모든 역외 채무에 대한 이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공시하면서 사실상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2021년 말 헝다그룹에 이어 비구이위안까지 파산하게 되면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냉각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 금융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부문은 중국 지방정부 재정의 약 40%를 차지하는 만큼, 중국 부동산 디폴트 문제는 신흥국 수출처로서 중국의 입지를 고려하면 신흥국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제"라며 "경제 침체 위기감을 느낀 중국 당국이 긴급하게 유동성을 풀고 있으나, 대부분 자금이 은행권에 묶여 통화승수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부동산발 금융 불안은 우리나라 수출·성장률 둔화 우려 또한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의 투자·소비 수요가 꺼지고 한국의 반도체·건설기계·화학·가전제품 생산량 물량도 일제히 쪼그라들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 경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작년 12월 코로나19 봉쇄가 풀린 뒤에도 중국 소비가 여전히 부진한 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중국과 교역이나 투자로 많이 엮여있는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피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우리 경제 전망이 기존 '상저하고'에서 '상저하저'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