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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인·페퍼銀, 금융당국에 '인수 협상 결렬' 통보 라온·SBI銀 매각 성공했지만, 시장 전망은 어두워 금융당국이 M&A 규제 완화했지만 실효성 떨어져

업계 1위 도약을 노리고 몸집 불리기에 나섰던 OK금융그룹과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매각을 추진해 온 상상인·페퍼저축은행 간의 인수 협상이 잇따라 결렬됐다. 기대를 모았던 두 건의 인수전이 무산되면서 금융당국이 추진해 온 저축은행 업권 구조조정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인수 후보와 실수요가 제한적인 데다, 업황 부진과 실적 양극화까지 겹쳐 구조조정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상인銀, SPA 체결 직전 단계에서 무산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상상인저축은행은 최근 OK금융그룹에 인수 협상 중단을 통보하고 금융당국에 새로운 인수 후보와 협상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OK금융그룹은 지난해 12월부터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해 왔다. 가격 협상 과정에서 OK금융그룹이 상상인 측이 제시한 희망가(1,100억원)에 근접한 1,082억원을 매각가로 제시하면서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직전 단계까지 진행된 상황이었다.
지난 2023년 10월 금융당국은 대주주 적격성 충족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상상인그룹에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지분 90% 이상을 6개월 내 매각하라는 주식처분명령을 내렸다. 기한대로라면 2024년 4월까지 보유 지분을 대부분 처분해야 했지만, 상상인그룹은 1심 패소 이후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며 매각 시간을 확보했다. 현재 상상인저축은행은 주식 처분 기한에 대해 효력정지를 신청한 상태다.
한편, 같은 시기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매각 명령을 받은 페퍼저축은행도 최근 OK금융그룹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금융당국에 중단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OK금융그룹이 2,000억원 초반대 매각가를 제시했으나, 페퍼저축은행 측이 기대한 금액과 차이가 커 협상에 난항을 겪어 왔다. 상상인·페퍼저축은행 모두 협상 중단 이후 새로운 인수 후보와 협상하겠다는 뜻을 금융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KBI 라온銀 인수, 올해 첫 민간 주도 사례
이는 최근까지 이어졌던 저축은행 매각 흐름과는 대조적인 전개다. 최근 주요 기업들이 저축은행 인수전에 잇따라 뛰어들면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사실상 멈춰 있던 업권 구조조정이 재개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23일 금융위원회는 KBI그룹 계열사인 KBI국인산업의 라온저축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했다. 이번 인수는 올해 첫 민간 주도 인수합병(M&A) 사례로,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정책금융 중심으로만 이뤄지던 구조조정 흐름이 민간 중심으로 전환된 첫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2000년 갑을상호신용금고를 매각하고 제조업·환경 사업에 주력해 온 KBI그룹은 이번 인수로 25년 만에 금융업에 복귀하게 됐다. 라온저축은행은 경북 구미에 본점을 둔 자산 1,247억원 규모의 소형 저축은행으로, 인수 당시 적기시정조치 상태였다. 금융당국은 KBI국인산업 측이 제시한 유상증자 및 부실자산 정리 계획을 심사한 끝에 인수를 승인했다. KBI국인산업은 이번 인수를 계기로 그룹 차원의 여신 기능 확보와 지역 기반 금융 네트워크 구축, 계열사 시너지 창출 등을 기대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인수도 업계에서 상징성이 크다. SBI저축은행은 자산 13조원대에 9년 연속 업계 수익성 1위를 기록해 온 알짜 금융사다. 교보생명은 지난 4월 이사회에서 일본 SBI홀딩스가 보유한 SBI저축은행 지분 50%+1주를 9,000억원에 매입하기로 의결하고, 2026년 10월까지 단계적으로 인수하기로 했다. 하반기 중 30% 지분을 우선 확보하고, 내년까지 추가 지분을 매입해 최대주주에 오른다는 방침이다. 인수가 완료되면 금융지주사 전환 또한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체율 급등하는 등 업권 상황 좋지 않아
그러나 올해 들어 성사된 두 사례만으로 저축은행 M&A 시장의 상황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SBI저축은행은 업계 1위의 우량 저축은행인 데다 교보생명과의 오랜 협력 관계 속에서 '윈-윈' 전략 등이 작용하며 거래가 성사된 케이스다. KBI국인사업의 라온저축은행 인수는 과거 금융업 경험과 재무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비교적 급격한 변수 없이 추진된 사례로 업황 변동성이나 규제 리스크가 높았던 다른 인수전과 달리 경영 정상화와 조기 안정화 의지를 내세우며 거래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업계에서는 기대를 모았던 이번 상상인·페퍼저축은행 인수 협상이 결렬되면서 저축은행업권 M&A 시장이 활성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3월 금융당국은 부실 우려 저축은행의 퇴출을 원활히 하기 위해 M&A 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적기시정조치 유예 대상 외에도 최근 2년간 자산건전성 평가에서 4등급 이하로 분류된 저축은행 역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도록 하고 BIS 비율 기준도 기존 9%에서 11%로 상향 조정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에도 실질적인 인수·합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미미한 배경에는 정책의 실효성 부재를 꼽고 있다. 인수·합병 허용 기준 완화는 부실 징후가 나타난 저축은행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자율적인 매각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미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몸집 불리기에 나설 곳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난해 79개 저축은행의 순손실은 3,974억원, 기업대출 연체율은 12.81%로 치솟았다. 반면 SBI·OK·웰컴 등 상위 5대 저축은행은 오히려 실적이 개선되는 등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