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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 中 부동산 시장 침체로 어닝 쇼크 기록 "정부가 책임지겠지" 연이은 붕괴 신호에도 투자 지속돼 현지 은행·해외 금융기관 줄줄이 손실 떠안아

영국 대형은행 HSBC의 상반기 실적이 곤두박질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 흐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중화권 부동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후폭풍'에 휘말리는 양상이다.
中 부동산 붕괴의 여파
31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HSBC는 지난 30일 상반기 세전 이익이 158억1,000만 달러(약 21조8,621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165억 달러)를 눈에 띄게 밑도는 수준이다. 실적 악화를 견인한 것은 다름아닌 중국 법인이었다. 중국 내 모기지 부문에서 대규모 손실 충당금이 발생하며 수익성이 악화한 것이다. 상반기 홍콩상하이 HSBC의 세전 이익은 93억8,400만 달러(약 13조756억원)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13.85% 감소했다.
시장에서는 HSBC의 사례가 일종의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23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가라앉기 시작한 중국 부동산 시장이 좀처럼 회복의 조짐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만큼, HSBC를 넘어 중국 부동산 시장에 투자한 대부분 금융기관이 유사한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 부동산 거래량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으며, 집값도 연일 하락세다.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신규 가구 형성이 둔화하며 시장 수요마저 얼어붙었다. 부동산을 자산 증식 수단으로 보던 대중의 신뢰는 무너졌고, 한때 토지 매각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던 지방정부도 이제는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잇달아 축소 중이다. 시장에 완연한 '혹한기'가 찾아온 셈이다.
시장 침체 '전조' 있었다
일각에서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잠재적 리스크는 수년 전부터 이미 드러나 있었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도시화가 가장 폭발적으로 진행된 것은 지난 2013년부터 2020년까지다. 당시에는 저금리, 대출 확대, 활발한 투기성 투자 등의 영향으로 시장 환경이 양호했기 때문이다. 2021년 무렵에는 건설 및 연관 산업을 포함한 부동산이 중국 전체 GDP의 25%를 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세는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꺾여 버렸다. 중국 부동산 시장이 품고 있던 '시한폭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헝다(에버그란데)의 붕괴 사태를 기점으로 혼란이 가중됐고, △부동산 개발사들의 연이은 채무불이행 △미완공 주택 단지 누적 △분양 대금 납부 지연 등 적신호가 줄줄이 켜졌다. 이 같은 징후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글로벌 재평가를 촉발했어야 했다.
그러나 많은 금융기관은 중국 정부가 나설 것이라는 믿음 아래 투자 규모를 축소하지 않았다. 물론 베이징 당국은 △대출 만기 연장 △핵심 건설사 대상 유동성 공급 △지방은행에 주택 수요 지원 권고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전반적인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시장은 끝내 침체의 늪에 빠졌다. 중국 부동산 붐에 편승해 손쉽게 수익을 내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돈 못 돌려받는다" 은행들의 비명
HSBC를 포함해 중국 부동산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했던 해외 금융기관들에는 일제히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부동산 붐 시기에 모기지 상품을 판매하거나 디벨로퍼 회사채 발행을 주선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규제 불확실성, 낮은 정보 투명성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부채 구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 부동산 관련 대출, 투자 상품, 채권담보부증권(CDO) 등에 자산을 묶어둔 일본·동남아 은행과 일부 유럽계 은행들은 줄줄이 손실 충당금 확대와 자산 손실 정리를 보고하고 있다.
중국 현지 은행들도 위기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다. 건설사들이 줄줄이 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지며 꼼짝없이 대규모 부실 대출을 떠안게 된 것이다. 중소도시(2선 도시) 부실 대출의 급증 역시 치명적인 악재로 꼽힌다. 과거 부동산 투기 열기에 힘입어 급격히 성장했던 이들 지역은 현재 인구 유출, 공실률 상승, 집값 하락의 '삼중고'를 겪고 있다. 해당 지역에 진출했던 은행들은 자본 회수는커녕 자산 매각에도 애를 먹는 추세다.
대출 연장, 자산 유동화, 리패키징 등의 금융 기법으로 손실을 '밀어둘' 수 있었던 것도 옛날이야기다. 현재 중국 시장에는 위험을 떠안을 투자자도, 구조화 상품을 설계할 여력도 없다. 중국 정부가 최근 '안정'과 '디레버리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과거처럼 정책적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은행들은 장기간에 걸쳐 손실을 직접 감당해야 하고, 이는 자본 비율과 수익성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금융기관들은 이제 '시장 회복'을 기다릴 게 아니라, 중국 익스포저 전략을 근본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특히 과거의 성장 공식을 믿고 미래 실적을 설계한 기관들의 경우 시장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향후 중국의 경제 성장 동력은 건설이 아닌 소비·기술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