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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얼롱 행사권 손에 쥔 11번가 FI 컨소시엄, 강제 매각 기정사실화 선제적으로 희망퇴직 단행하는 11번가, 이미 매각 의지 굳혔나 '리스크 폭탄' 이커머스 기업, 적자 쌓인 11번가 사들일 사람 있을까
이커머스 플랫폼 11번가의 '강제 매각'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11번가의 대주주 SK스퀘어는 이사회를 열고 11번가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및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로 이뤄진 재무적 투자자(FI) 컨소시엄은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을 활용하게 됐다.
11번가는 최근 희망퇴직을 통해 기업 덩치를 줄이며 매각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11번가가 차후 매각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커머스 업계는 이베이코리아와 같은 전도유망한 흑자 기업도 순식간에 미끄러지는 치열한 시장이다. 애초부터 '적자 기업'인 11번가를 떠안을 원매자를 찾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SK스퀘어 콜옵션 포기, 매각 가능성 커져
11번가 대주주 SK스퀘어는 2018년 FI로부터 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그 과정에서 콜&드래그를 설정했다. 5년 내 11번가의 기업공개(IPO)를 약속하고, 이에 실패할 경우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활용해 FI 지분을 되사들인다는 조건이다. 콜옵션을 포기할 경우 FI가 대주주 SK스퀘어의 지분(80.3%)까지 제3자에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드래그얼롱도 거래에 포함됐다.
11번가는 지난해 8월 IPO 대표 주관사를 선정했으나, 이후 본격적인 절차를 밟지는 못했다. 2018년 3조원에 가깝던 기업가치가 올해 1조원 이하까지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가운데 무리하게 IPO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결국 11번가는 기한 내 상장에 실패했다. 이후 SK스퀘어가 콜옵션 행사를 포기했고, FI 컨소시엄은 SK스퀘어가 보유한 11번가 지분까지 제3자에 매각할 수 있게 됐다.
드래그얼롱이 행사될 경우 원리금 정산은 워터폴(Water Fall) 방식으로 진행된다. FI가 우선적으로 원금 및 이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FI들의 투자 원금은 5,000억원, SK그룹으로부터 보장받은 수익률은 연간 약 3.5%다. 국민연금과 FI들은 경영권 매각 가격이 약 6,000억원만 넘어서도 손실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현재 11번가 지분 약 80%의 장부가치를 1조500억원으로 반영한 SK스퀘어는 경영권 매각 가격에 따라 수천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떠안을 처지에 놓였다.
11번가, 희망퇴직으로 덩치 미리 줄였다
업계에서는 최근 11번가가 희망퇴직을 단행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기업의 덩치를 줄이며 매각 과정의 '걸림돌'을 제거했다는 분석이다. 11번가는 지난 27일 개인 커리어 전환과 회사의 성장을 위한 차원에서 특별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희망퇴직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전사 모든 구성원 중 만 35세 이상, 5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다음 달 10일까지 시행된다.
SK그룹은 앞서 결렬된 큐텐과의 매각 협상에서도 인원 감축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3분의 1 이상의 인원 감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업계에서는 큐텐이 아닌 다른 원매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인원 감축은 사실상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이미 물밑에서 11번가의 임직원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거론돼 왔다는 설명이다.
콜옵션 문제를 논의하는 이사회 이틀 전에 희망퇴직 소식이 발표된 만큼, 일각에서는 11번가의 희망퇴직이 차후 원매자와의 협상을 위한 '선제 작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업의 덩치를 줄이고, 수익성을 개선함으로써 예비 원매자에게 적극적인 매각 의지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적자 기업 떠안을 원매자 나타날까
문제는 이미 한 차례 매각에 실패한 11번가가 새로운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다. 이커머스 업체의 인수는 사실상 '독배'로 꼽힌다. 신세계 이마트(SSG닷컴 모회사)가 인수한 이베이코리아(현 G마켓)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 위험성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지난 2021년 신세계그룹은 이베이코리아 지분 80.01%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약 3조4,400억원을 지불했다. 이후 신세계그룹은 기존 이베이코리아의 시장 점유율(약 10%)을 고스란히 흡수, 이커머스 시장에서 10% 중반대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커머스 시장의 '공룡'으로 꼽히는 쿠팡, 네이버와 '3강 구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이베이코리아 덕택인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베이코리아 인수는 독배였다. 인수 전 이커머스 업계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며 '알짜 기업'으로 평가받던 이베이코리아는 인수 후 적자 기업으로 돌변했다. G마켓은 지난해 65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신세계그룹의 이커머스 서비스인 SSG닷컴 역시 지난해 1,112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냈다. 과도한 경쟁으로 마진이 감소하며 상황이 악화한 것이다.
이렇듯 이커머스 업계는 유망했던 흑자 기업마저 순식간에 무너지는 치열한 시장이다. 원매자 입장에서는 이커머스 기업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리스크'라는 의미다. 수년째 적자의 늪에 빠져 있는 11번가의 경우 위험성이 한층 큰 매물로 평가된다. 예정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독배를 마실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11번가의 운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