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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하 주장한 보먼·월러 이사 반대표 파월 “관세 빼도 지금 물가 높아” 9월 회의 전까지 관망모드 "더 학습 필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최근 물가 안정 흐름과 경기 둔화 조짐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과 두 명의 연준 이사 반대가 나왔지만, 대다수 위원들은 현재 상황에선 동결하는 게 타당하다고 입을 모았고, 제롬 파월 의장은 9월 회의 전까지 고용 보고서와 물가 보고서를 보고 금리를 결정하겠다며 여전히 관망모드에 있음을 시사했다. 고율 관세의 부담이 상품 가격에 얼마나 전가될 지 좀 더 지켜보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연준, 기준금리 4.25~4.5% 유지
30일(이하 현지시간)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이날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4.25~4.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연준에 따르면 회의에 참석한 11명의 연준 이사 가운데 9대 2로 금리 동결이 결정됐다. 그간 금리인하를 강하게 주장해 왔던 미셸 보먼,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 등 두 명의 위원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진다. 두 명의 이사가 금리 결정에 반대한 것은 1993년 이후 처음이다.
연준은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상반기 경제 활동 성장세가 둔화됐다”고 진단했다. 또 “시장 상황은 여전히 견고하고 인플레이션은 다소 높은 수준”이라며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도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이는 연준이 지난 6월 성명에서 “경제가 견고한 속도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던 것과 상반된다. CNBC는 “통상 경기 둔화 시에는 금리 인하 주장이 강화되지만 FOMC는 그런 의견을 지지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파월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9월 회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린 바 없다”며 “관련 데이터를 포함한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또 “관세가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일시적인 가격 상승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을 잘 관리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관세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정책 유지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미 2분기 GDP 3% 성장, 노동 시장도 견고
실제 파월 의장은 상반기 미국 경제 성장률은 1.2%로 지난해 2.5%에서 둔화했지만, 노동 시장이 약화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노동 시장에 하방 위험이 명백히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노동 시장이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으나, 노동 수요와 공급이 모두 같은 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게 노동 시장에 하방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2021∼2023년의 고점 대비 두드러지게 완화했고, 예상치를 웃돈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전기 대비 연율 3%)이 발표됐음에도 민간 기업과 소비자 수요는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의 물가 상승 압박이 앞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감안한 결정으로 분석된다.

트럼프가 금리에 목매는 이유
이로써 연준은 지난해 9월 시작된 피벗(긴축정책서 전환)을 통해 세 차례 연속 금리인하를 결정한 이후 올해 들어 다섯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에도 연준은 관세와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이유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국채 이자 부담 경감과 경제 활성화를 기대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 잇따른 금리 동결에 강한 불만을 표해왔으며 이번 회의를 앞두고는 파월 의장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하며 금리 인하를 압박해 왔다.
한때 파월 의장 해임 검토설까지 거론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워싱턴 DC의 연준 본부를 이례적으로 방문해 과도한 예산 투입 문제가 제기된 연준 청사 개보수 현장을 둘러보는 등 파월 의장을 다각도로 압박했다. 이날도 FOMC 결과가 나오기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예상치를 웃돈 2분기 GDP 증가율을 거론하며 파월 의장에게 “금리를 지금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채 금리 낮추기에 집중한다는 걸 숨기지 않는 이유는 막대한 국가 부채 때문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연방정부 부채는 36조2,000억 달러(약 5경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 15년간 두 배로 늘어난 수치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달러를 풀어 경기 방어하느라 부채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풀린 돈은 인플레이션을 유발, 금리를 밀어올렸고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연방정부가 이제까지 발행한 채권에 대한 누적 평균 이자율은 현재 연 3.28%로 2021년(평균 연 1.61%) 대비 두 배가 됐다. 연간 이자 부담만 1조1,580억 달러(약 1,600조원)로 작년 미국 국방예산(8,860억 달러)을 가뿐히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예산 균형을 맞춰야 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올해 초 연 4.8%까지 오른 후 연 4.1%대로 떨어졌다가 현재 연 4.3% 언저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17년 단행한 감세 조치가 올해 만료되는데, 이를 계속 연장하기 위해선 재정을 확보하는 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로운 과제라는 것도 문제다. 미국 정부가 이른바 ‘부채 디톡스(해독)’를 위해 주요국을 상대로 관세를 올려 재정 수입 늘리기에 필사적으로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