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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하락과 육아 공백이 기업 인사·채용 결정에 영향 승진 보조금은 단기 처방일 뿐, 정규직 전환과 재직 유지 효과는 제한적 복귀 지원·보육 확충·세액공제 등 재직 안정 중심 정책 필요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3년 유럽연합(EU) 합계출산율은 1.38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2024년 미국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1% 늘었지만, 15~44세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는 오히려 1% 줄었다. 여기에 미국은 영유아 보육 부족으로만 매년 1,220억 달러(약 170조원)의 경제 손실을 입고 있다. 부모는 보육 자리를 찾지 못해 일을 줄이거나 쉬고, 기업은 인력 공백과 채용·훈련 비용을 떠안는다.
출산율 문제는 더 이상 가정만의 과제가 아니다. 육아로 생기는 공백과 불확실성은 기업에 ‘숨은 비용’이 되고, 이는 채용과 승진 결정에 영향을 준다. 출산율을 높이고 여성의 경력이 끊기지 않게 하려면, 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정책이 먼저다.

승진 지원에서 ‘재직 유지’로 초점을 전환해야
정부는 출산 후 일정 기간 내 승진하면 보조금을 주거나, 육아휴직·시간제 근무를 했다고 해서 승진에서 불이익을 주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도입해 왔다. 방향성은 옳았지만, 기업의 실제 반응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스페인의 1999년 일·가정 양립법(Work and Family Reconciliation Act)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자녀가 6세 이하인 부모가 근로 시간 단축을 요청하면 기업이 거부할 수 없고, 그 기간 해고도 금지됐다. 이 제도로 여성 정규직이 근무시간을 줄여도 일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기업은 새로운 부담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근무시간이 줄면 대체 인력을 뽑아야 하고, 해고할 수도 없어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가임기 여성의 정규직 전환을 더 꺼리게 됐고, 제도의 취지와 달리 정규직 전환의 문턱이 높아졌다.
이제 정책은 승진 자체를 지원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출산 후 복귀 안정과 경력 개발을 돕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승진이 성과와 기여에 기반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기업도 이를 ‘추가 부담’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숫자가 보여주는 현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은 2022년 1.5명,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1.2명, 한국은 2023년 약 0.7명까지 떨어졌다. EU의 1.38명이라는 수치는 일시적 하락이 아니라 장기적인 감소 추세다. 미국 역시 출생아 수는 늘었지만, 출산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전 세계 100여 개국 자료를 보면 남녀 경력은 출산 전까지 비슷하다. 그러나 첫 출산 이후 임금과 경력 격차가 벌어진다. 흔히 ‘차일드 페널티(Child penalty)’라 불리는 이 현상은 단순한 편견만의 결과가 아니다. 불안정한 보육, 불규칙한 근무, 복귀 장벽 같은 현실적인 요인들이 출산 후 여성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기업은 이런 잠재 비용을 미리 계산해 승진, 대체 인력 채용, 인재 육성 계획에 반영한다. 정책이 이런 마찰 비용을 줄여주면 승진 보조금 없이도 승진율은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다.

주: 출산율(X축), 생애 소득(Y축)/여성 고용 관련 규제 제거, 승진 지원금, 출산 및 양육 지원금, 단일 고용 계약
퇴사 비용도 숫자로 확인된다. 한 명이 퇴사하면 평균적으로 연봉의 33%가 추가 비용으로 든다. 현장직은 40%, 기술직은 80%, 관리자는 최대 200%까지 치솟는다. 실제 데이터를 토대로 계산하면 승진 보조금보다 퇴사 방지 중심 정책이 훨씬 큰 성과를 낸다는 점이 드러난다.
기업이 계산하는 것은 ‘승진’이 아니라 ‘재직’
기업은 한 명이 회사를 떠날 때 발생하는 비용을 매우 민감하게 본다. 인력 공백, 채용·교육비, 고객 손실, 쌓아온 경험의 사라짐까지 모두 돈으로 환산된다. 그래서 출산 후 복귀를 안정시키는 정책이 가장 직접적으로 회사의 비용을 줄이는 해법이 된다. 복귀 일정이 명확하고, 근무 여건이 안정되며, 보육 지원이 뒤따르면 비용이 즉시 줄지는 않더라도 퇴사 가능성을 낮춰 기업이 떠안게 될 장기적인 부담을 줄인다.
승진 보조금은 승진이라는 결과만 만들어내는 데 그친다. 하지만 출산 이후 업무 부담이 여전하면 승진한 직원이 결국 회사를 떠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보조금은 단기간 성과로만 남고,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다.
연봉 7만 유로(약 1억500만원)를 받는 중간 경력 직원을 기준으로 한 명이 퇴사하면 평균 2만3,000유로(약 3,4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출산 후 퇴사 위험을 10% 낮추면 100명 중 10명이 남아 절감액은 23만 유로(약 3억4,000만원)에 이른다. 반대로 승진 보조금으로 연봉의 10%를 15명에게 지급하면 10만5,000유로(약 1억5,600만원)가 들지만, 이 중 5명이 결국 회사를 떠나면 절감 효과는 사실상 사라진다. 결국 기업과 정부 모두, 승진보다 재직 안정에 투자하는 편이 훨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승진 보조금에 대한 반론과 정책의 방향
승진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출산 후 여성이 시간제나 유연근무를 많이 선택하면, 기업이 ‘언젠가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휴직할 것’이라고 보고 승진과 경력 투자를 꺼리는데, 보조금이 이런 불확실성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출산율(X축), 여성 복지(Y축)/여성 고용 관련 규제 제거, 승진 지원금, 출산 및 양육 지원금, 단일 고용 계약
여성 리더십 확대 속도가 느리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2024년에도 남성 100명이 초급 관리자로 승진할 때 여성은 81명에 그쳤다. 이 첫 승진 단계에서 막히는 병목이 시간이 갈수록 격차를 더 키운다. 그래서 보조금이 승진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출산율과 연계해 보조금을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출산 후 경력 전망이 좋아지면 출산 결정을 더 쉽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곧바로 정책 설계의 근거가 될 순 없다. 스페인 사례가 보여주듯, 단순한 보호 조치나 보조금은 기업의 역반응을 불러 정규직 전환과 승진을 더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 OECD와 유로스타트(Eurostat)의 통계 역시 출산율 하락의 배경이 단순히 승진 기회 부족이 아니라 보육비 부담, 불규칙한 근무, 복귀 불확실성 같은 더 깊은 구조적 문제임을 확인시킨다. 결국 한정된 공공자금을 어디에 쓸지 선택해야 한다면, 보여주기 위한 승진 장려금이 아니라 부모가 일터를 떠나지 않고 출산 후에도 경력을 이어가도록 돕는 정책이 더 빠르고 확실한 성과를 낸다.
승진 보조금 대신 지속 가능한 설계로
정책은 승진 보조금 지급에서 벗어나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출산 후 12개월, 24개월까지 근속하면 기업에 기본급 일부를 환급해 주는 재직 연계 세액공제를 도입해 기업이 실제로 ‘남는 정책’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 환급액은 평균 퇴사 비용보다 낮게 책정하고, 조기 퇴사 시에는 환수 조건을 두는 방식이다.
세액공제를 받는 기업에는 승진 절차 투명화를 요구해야 한다. 승진 기준 공개, 최소 1회 이상의 구조화된 심사, 연간 고정된 심사 일정을 통해 출산휴가 시점 때문에 승진이 불리해지는 상황을 없앤다.
여기에 경력 개발과 보육 지원 확대가 더해져야 한다. 정부가 자격증 취득, 코칭, 전환 교육을 지원해 부모가 출산 후에도 경력을 이어가도록 돕고, 보육 인프라를 확충해 ‘보육 공백 지역’을 해소해야 한다.
이 모든 정책은 평가 체계와 함께해야 한다. 부문별로 정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해 12·24개월 재직률, 36개월 승진율, 48개월 임금 추이를 추적·공개하면 어떤 조치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데이터로 검증할 수 있다.
진짜 신호를 보내야
승진 보조금은 단기적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오래가기 어렵다. 직함만 만들어낼 뿐, 기업이 중시하는 안정성, 예측 가능성, 경력 개발을 담아내지 못한다. 정책이 보내야 할 신호는 분명하다. 부모가 직장을 지키고, 역량을 키우고, 그 성과로 승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공공자금은 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 비로소 진짜 생산성과 가족의 안정을 살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Fertility–Work Puzzle: A Pressing Issue Requiring Immediate Attention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