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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 “한은이 부동산PF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상황은 아니야“ 다만 시장에선 태영發 부동산 PF 부실 위기 우려하는 시선 여전 특히 위기 대응 더 취약한 ‘제2금융권’ 향한 우려 급증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사태가 전체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적다고 언급하며 한은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선 올해 상반기 내 만기가 도래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비중과 고금리 기조에 따라 악화된 대외 환경 등을 이유로 금융권 PF 부실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특히 위기 대응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제2금융권에서 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총재 “대포와 소총 있지만, 소총 쓸 정도도 아냐”
11일 이 총재는 한국은행에서 진행된 통화정책 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태영건설의 부동산 PF 부실 사태를 진단하고 금융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 등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태영건설 사태에 대해 “부동산 PF 중에서도 위험관리가 잘못된 대표적인 사례”라며 “태영건설 사태가 부동산PF, 건설업의 큰 위기로 번져 시스템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은 적다”고 진단했다.
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질만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책적으로 대응하는 기관이 한은이지만, 현재 태영건설 사태가 시장 불안을 가져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이 총재의 설명이다. 그는 “개별 사례가 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은행이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하지만 지금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며 “대포를 쏠 수도 있고 소총으로 막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소총도 쓸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빗대어 말했다.
최근 한은이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 유보분을 활용해 중소기업 지원에 나선 것을 두고, 태영건설 사태가 시장에 미칠 여파를 우려해 선제 조치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바로 잡았다. 이 총재는 “금융중개지원대출 지원 결정과 태영건설 문제를 연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지원을 결정한 것은 상당 기간 고금리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지방 중소기업 등을 선별적·한시적으로 지원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한편 한은은 이날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동결했다. 이 총재를 제외한 5명의 금통위원 모두 향후 3개월 금리를 3.50% 수준에서 동결하면서 물가안정 기반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 기준금리 인하 시점과 관련해선 금통위원 모두 금리인하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이 총재는 사견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려 불식되지 않는 시장 분위기 “올 상반기만 만기 도래 PF 12조원 넘어”
다만 시장에선 태영건설 사태로 금융권 PF 부실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 내 만기가 도래하는 PF 비중이 높은 데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등 대외 환경마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PF 규모는 130조원으로, 이 가운데 브릿지론은 30조원, 본PF는 100조원에 달한다. 여기서 브릿지론과 본PF의 만기 연장 비율은 각각 70%(21조원), 50%(50조원)에 이르는데, 만기 연장 비율이 높은 만큼 실제 부실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이 급증하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2020년 말 92조5,000억원이었던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134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5%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금리인하 기대감이 약화되면서 부동산 경기마저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67.3%로, 전월(72.3%) 대비 5%p 낮아졌으며, 특히 주요 PF 사업이 집중된 서울과 인천·경기권에서 하락이 두드러졌다. 주산연 관계자는 “경기침체, 고금리 기조로 위축됐던 주택시장에 부동산 PF 부실 악재가 겹치면서 거래절벽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미구멍이 큰 둑 무너뜨릴 수도
현재 시장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위기 대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제2금융권의 ‘부실 폭탄 돌리기’다. 제1금융권이 아닌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이 현재 대출 연장 취급 기관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기업평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23개 증권사가 보유한 PF 위험노출액(대출채권과 채무보증 합산액 기준) 24조원 가운데 올해 6월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는 11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브릿지론이 7조3,000억원 규모로 전체 60%가 넘는다. 브릿지론은 부동산 개발 사업이 착공되기 전에 받은 자금으로, 시행사는 이 자금을 토지 매입과 사업 인허가, 시공사 보증금 등에 투입하고, 1금융권 본PF로 넘어가기 전에 사용한다. 통상 대출 기간이 1년으로 짧고 금리가 높기 때문에 부실 위험이 더욱 높은 편이다.
제2금융권 가운데서도 자본력이 약한 지역금고를 향한 우려가 크다. 특히 새마을금고는 시중은행과 달리 금고마다 독립된 회사로, 신규 설립 기준이 150~200억원 선으로 자기자본 규모가 작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태영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하며 연대보증을 선 사업장에 대출을 내준 지역금고는 총 174곳으로, 대출 규모가 3,764억원에 달한다. 산업은행에선 태영건설 채권단 600여곳 중에 상호금융 절반을 넘는 300~400곳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새마을금고는 이번 태영건설 사태로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서 제기하고 있는 용인새마을금고와 성남새마을금고를 포함한 몇몇 금고의 태영건설 보증채무는 향후 회수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단계를 밝고 있지만, 시공 능력 자체를 상실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건설이 마무리되면 금고의 보증채무 대부분이 회수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