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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에 국내 LCC 모였다
EU 기업결합 규제에 따른 매각 결정, 수익성 악화는 변수
"1조5,000억원 못 낸다" 일각에선 고평가 지적 쏟아져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 매각이 급물살을 탔다.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 부문 매각 주관사 UBS는 인수 후보사들에 이달 말 예정된 본입찰과 관련한 공지를 전달했다. 실사 등을 고려하면 오는 25일을 기점으로 세부 일정이 정해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화물 사업 매각가가 최소 1조5,000억원 선에서 산정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시장은 차후 가격 조정 및 인수자 선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화물 사업 인수 후보는?
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UBS는 지난달 제주항공, 에어프레미아, 이스타항공, 에어인천 등 4곳의 저비용 항공사(Low Cost Carrier, LCC)에 숏리스트(적격 인수 후보)를 통보한 상태다. 후보들은 지난달 11일부터 가상데이터룸(VDR) 실사에 본격 착수했으며, 이후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실무 담당 직원을 인터뷰하는 '브레이크아웃(BO)' 세션 등 실사 진행에 주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 부문의 예상 인수 금액이 5,000억~7,000억원에 달할 것이라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1조원 규모의 부채를 추가로 떠안아야 하는 만큼, 인수 확정을 위해선 최소 1조5,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본입찰 시 매각가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인수 후보 LCC들은 전략적 투자자(SI), 재무적 투자자(FI)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며 자금 마련에 나섰다.
실제 에어프레미아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파빌리온프라이빗에쿼티(PE)와 컨소시엄을 꾸려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제주항공의 경우 MBK파트너스 스페셜시추에이션(SS)펀드와의 협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타항공은 차후 해외 자본을 통해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진다. 소시어스가 보유한 에어인천은 국내 유일 '화물 전문' 항공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보유 자본금이 상당히 적어(2022년 기준 72억원) 유력 후보로는 거론되지 못하고 있다.
화물사업부 매각의 배경
이번 화물사업부 매각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한 데서 출발했다. EU는 이들이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야 하는 14개국 중 가장 까다로운 기준을 내세운 국가다. 대한항공이 EU 측에 최초로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한 것은 지난해 1월이었다. EC는 당초 같은 해 7월 5일까지 합병 승인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이후 ‘독과점 우려’를 이유로 두 차례나 심사 기간을 연장하며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이후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화물 사업을 매각하고, 유럽 일부 노선을 국내 LCC(저비용 항공사)인 티웨이항공에 넘기는 시정 조치안을 EC에 제출했다. 이 같은 대한항공의 구상을 받아들인 EU 측은 지난 2월 △인천~파리,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로마, 인천~바르셀로나 노선 등 대한항공의 14개 유럽 노선 중 4개 노선을 국내 LCC인 티웨이항공 측에 넘길 것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매각할 것 등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어 양사 결합을 승인했다.
문제는 매각을 앞둔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산업 부문이 지난해 뚜렷한 수익성 악화 기조를 보였다는 데 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약 46% 줄어든 1조6,071억원에 그쳤다. 사측은 세계적인 긴축 기조에 따른 항공 화물 수요 감소, 여객기 운항 회복에 따른 공급 증가 등 시장 내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수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과열됐던 항공 물류 수요 및 운임 상승세가 제자리를 찾으며 수익성이 눈에 띄게 악화했다는 의미다.
화물사업부 매각가 고평가 논란
아시아나항공의 물류 사업이 뚜렷한 약세를 보인 가운데, 시장에서는 화물사업부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현재 시장 추산 매각가가 현실화할 경우, 화물 부문을 매입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8,110억)의 두 배에 육박하는 자금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화물기 11기 중 8기가 기령 25년 이상의 노후 항공기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항공기는 기령이 30년을 넘으면 퇴역 수순을 밟아야 한다. 인수 후 추가로 순차적으로 항공기 교체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현재 거론되는 가격으로 실제 거래가 이뤄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번 매각은 어디까지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을 위한 선결 조건인 만큼, 매각 측이 '아쉬운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7,000억원에 달하는 몸값은 과하다는 평이 많다"며 "자금력이 부족한 구매자들이 꾸준히 매각가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경우, 차후 (아시아나항공 측이) 눈높이를 낮출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재무구조 악화로 인해 자금 수혈이 시급한 상황에 놓인 만큼, 차후 매각가를 크게 낮추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말 별도 기준으로 2조8,176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짊어지고 있다. 같은 해 투입한 순금융비용은 3,25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한항공이 지출한 순금융비용(852억원)의 4배에 육박한다. 항공 사업을 제값에 매각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경우 재무 부담의 '족쇄'를 풀어내고, 인수합병을 통한 추가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