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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PF 정상화 역할 부여한 금융당국, "자금 투입 동참해달라"
금융권은 난색, "브릿지론 사업장 본PF 전환율 5% 미만 수준"
연내 사업장 정리 마무리하겠단 금융당국, '캠코 역할론' 다시 나오나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를 위해 은행과 보험, 저축은행 등 금융권에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고 나섰다. 은행·보험에 초기 PF 사업장 자금 공급을, 저축은행에 부실 사업장 매각을 각각 요구하는 모양새다. 다만 당사자들의 반응이 미온적인 만큼 PF 부실 문제가 단기 해소되기는 어려우리란 전망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쏟아진다. 일각에선 결국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손을 벌리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자금 투입 주문한 금융당국, 금융권은 "글쎄"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비교적 자금 여력이 넉넉한 은행과 보험사에 PF 사업장 신규 자금 투입을 주문했다. 공동 펀드를 조성하고 착공 전 단계의 브릿지론을 인수해 달라는 게 금융당국이 내건 요구의 골자다. 브릿지론은 부동산 개발사업 착공 전에 토지 매입 등 초기 단계에 자금을 빌려주는 단기 대출을 뜻한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브릿지론을 받은 뒤 토지 매입 등이 마무리되고 착공이 시작되면 은행이나 보험사 등에서 새로운 대출(본PF)을 받아 브릿지론을 상환하는 게 통상적인 과정이다.
다만 은행과 보험사들은 금융당국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브릿지론 사업장 가운데 사업성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브릿지론 사업장 가운데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고 1회 이상 만기를 연장한 곳은 70%를 넘어섰다. 신용평가사에선 본PF 전환율이 5% 미만 수준이라는 언급도 나온다.
향후 전망도 회의적이다. 부동산 시장에 신규 분양 물량이 공급되지 않고 있음에도 미분양 감소세가 더딘 탓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8,865호로 전월(7만1,365호) 대비 3.5%(2,500호)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렇다 보니 금융권에선 섣불리 브릿지론 사업장을 인수했다 투자금 손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충당금 부담 가중, "브릿지론 인수 시 손실 불가피"
금융권의 부담이 집중된 지점은 충당금이다. 고금리가 장기화할 시 브릿지론의 손실이 불가피하리란 전망은 이미 지난해부터 나온 바 있다. 지난해 12월 S&P와 나이스신용평가 공동 세미나에 참석한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브릿지론에 대출을 내어 준 금융사의 손실은 불가피하다"며 "고금리가 길어질 경우 브릿지론의 30~50%는 최종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브릿지론을 인수하면 필연적으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충당금은 이익을 떼 쌓아두는 구조여서 순이익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브릿지론 사업장 인수가 금융권 실적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실 비율이 우상향을 그리고 있단 점도 부담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등급을 보유한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요주의이하자산 비율은 브릿지론에서 2022년 9월 20.1%였으나 1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더욱이 지난해 9월 기준 부동산 PF 요주의이하자산 비율은 42.7%에 달하며 같은 기간 브릿지론의 고정이하자산도 2.4%에서 3.8%로 증가했다. 브릿지론 사업장 인수에 리스크만 커지고 있는 셈이다.
'캠코 역할론' 전면에, "은행에 부담만 지워선 안 돼"
이런 가운데 금융권은 금융당국의 압박에 거듭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잖아도 업황이 어려운 와중 브릿지론 인수까지 떠맡으면 금융권 전반이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은행은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은행이 지급해야 할 홍콩H지수 ELS 배상금은 2조원이 넘는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 PF 구조조정에 나설 여력이 없다는 게 은행 관계자의 의견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어떻게든 연내 PF 부실 사업장 정리를 마무리하겠단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 부동산 PF 정상화에의 '시중은행 역할론'도 강조하는 모양새다. 지난 7일 금융당국은 시중은행 PF 담당 실무자들과 개별 비공개 면담을 갖기 시작했다. 시중은행의 PF 사업장 인수 움직임이 저조한 이유를 파악하고 인수 확대를 위해 현장에서 필요한 제도적 인센티브 등을 논의하겠다는 취지인데, 업계는 사실상 금융당국이 인수 압박을 본격화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을 두고 금융권과 금융당국의 충돌이 거세지는 양상을 띠기 시작하면서, 일각에선 캠코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에만 부담을 지울 게 아니라 공공자금부터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캠코가 PF 부실 관련 부실채권(NPL) 2,000억원가량을 사들이겠다며 백기사를 자처한 바 있다는 점도 캠코 역할론에 힘을 싣는다. 막대한 출혈을 강요하는 금융당국과 이를 거부하는 금융권의 기싸움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다시금 캠코에 손을 벌려야 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