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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연체율 8.5%, 9년 만에 최고치 기록 재정건전성 악화로 '경영개선권고' 받은 라온 지분 60% 우선 매각 후 30% 추가 매각 추진

지난해 말 적기시정조치(경영개선권고)를 받은 라온저축은행이 KBI국인산업에 인수된다. 오랜 기간 답보 상태였던 OK금융그룹의 상상인저축은행 인수 협상도 최근 매도 측의 재정건전성 악화가 심화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 연체율이 치솟은 저축은행업계가 라온저축은행 매각을 계기로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KBI국인산업, 금융업으로 포트폴리오 확장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I그룹 계열사인 KBI국인산업은 최근 라온저축은행 지분 60%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이르면 이달 중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마무리 짓고 추가로 30%가량의 지분을 매입해 총지분율을 최대 90%까지 늘릴 계획이다. KBI국인산업은 자동차부품, 전선·동 소재, 환경·에너지 등 다양한 부문의 2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 산업 그룹으로 이번 계약을 통해 금융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됐다.
당초 라온저축은행의 지분 40% 인수를 추진해 온 디스플레이 장비 제조업체 베셀은 9.5%로 인수 규모를 낮춰 참여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베셀은 라온저축은행 지분 60%를 인수하겠다고 밝혔으나, 올해 4월 인수 규모를 40%로 낮추었다가 지난 10일에는 배셀은 라온저축은행 지분 7만6,000주(지분율 9.5%)를 매입하겠다고 공시했다. 최근 현금흐름이 좋지 않아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라온저축은 업계 최하위권에 속하는 소형 저축은행으로 최근 몇 년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의 직격탄을 맞으며 2023년 43억원, 2024년 37억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금융위원회로부터 건전성 지표 악화를 이유로 경영개선권고 결정을 받았다. 1분기 기준 자산 규모도 전체 79개 저축은행 중 77위 수준인 1,248억원에 불과하다. 대형 저축은행으로 꼽히는 SBI저축은행, OK저축은행의 자산(약 13~14조원)과 비교하면 수십 배 격차가 있다.
잠재 매물 포함 매각 리스트로 20여 곳 거론
시장에서는 라온저축은행 매각을 시작으로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속도를 낼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2018년부터 PF 대출을 늘려온 저축은행 업계는 2020년 레고랜드 사태를 시작으로 PF 시장이 급격히 경색되고 부동산 경기마저 둔화하면서 부실이 발생했다. 이에 저축은행은 경·공매와 공동펀드 조성을 통해 부실채권을 매각했고,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를 2022년 말 26조원에서 지난해 말 13조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하지만 지난해 저축은행 연체율이 8.52%로 9년 만에 최고치를 찍으면서 구조조정 압박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잠재 매물을 포함한 매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저축은행으로 20곳 정도가 거론된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금융위로부터 경영개선권고를 받은 상상인·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안국저축은행을 비롯해 페퍼저축은행, 고려저축은행, JT저축은행, JT친애저축은행, CK저축은행, 머스트삼일저축은행, 동양저축은행, 우리저축은행, DH저축은행, 대아상호저축은행, 대원상호저축은행 등이다. 애큐온·다올·바로·스마트·OSB저축은행 등은 당장 매각 가능성은 없지만, 아슬아슬한 재정건전성 때문에 잠재적인 매물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지난 4월 교보생명에 매각된 SBI저축은행의 사례는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과는 성격이 다르다. 업계 1위의 우량 저축은행인 데다 교보생명과의 오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성사된 거래였기 때문이다. SBI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14조289억원, 자본총계 1조8,995억원, 거래 고객 172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 PF 위기가 불거지기 전인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3,495억원, 3,284억원의 순이익을 거뒀고, 저축은행업계가 적자 전환했던 2023년과 2024년에도 각각 891억원, 808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했다.

OK금융, 상상인 인수로 전국적 영업망 확보
업계의 관심을 모았던 OK금융그룹의 상상인저축은행 인수 거래는 막바지 협상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 실사 이후 인수 가격 문제로 지지부진했던 협상이 상상인저축은행의 급격한 자산 감소와 부실채권 누적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상상인저축은행의 자산은 2022년 3조5,422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23년 2조8,166억원에 이어 올해 1분기에는 2조3,16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불과 2년 사이 1조2,000억원 이상이 증발한 것이다. 또 부실채권 매각과 상각에 집중하면서 최근 2년간 쌓은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9.81%에 이른다.
부동산 여신 편중도 리스크를 키웠다. 1분기 기준 총여신 1조8,545억원 중 기업대출의 비중은 74.3%(1조3,772억원)으로 전체 여신의 절반가량(49.3%)이 부동산 담보 대출이다. PF 대출 중 고정이하여신 규모도 늘었다. 2023년 1분기 205억원에 불과하던 고정이하여신은 그해 2분기 1,202억원, 3분기 1,417억원, 4분기 1,452억원으로 상승세를 타다가 2024년 1분기 2,962억원을 찍으며 2,000억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이어 2024년 4분기에는 3,152억원까지 치솟았고, 이후 올해 1분기(3,033억원)까지 줄곧 3,0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OK금융 입장에서는 이번 인수가 전략적 승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OK저축은행은 서울·충청·호남권 영업망을 갖고 있지만, 인천·경기권에는 거점이 없다. 반면 상상인저축은행은 분당 본점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영업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OK금융이 확보하지 못한 지역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게다가 OK저축은행은 자산 기준 업계 1위로, 별도 법인 형태로 유연한 운영이 가능하다. 상상인저축은행을 기업금융 특화 법인으로 유지하고, OK저축은행은 가계금융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분리해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