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수수료 체계 일시불→장기 분할 변경
대면 설계사 중심 수익 모델에 한계
보험사들은 영업 축소 대책 마련 고심

보험 모집인에 지급되는 수수료를 7년에 걸쳐 나눠 지급하는 제도가 오는 2029년부터 전면 시행된다. 이에 억대 연봉을 받던 상위 설계사 중심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보험사의 가입 채널 구조 전반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뜩이나 디지털 전환으로 설계사의 입지가 줄어든 가운데 기존 대면 채널이 급격히 축소될 가능성마저 커지며 보험 가입률과 유지율이 동반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커지는 양상이다.
GA 채널 등 업계 전반 수익률 압박 커져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을 통해 판매수수료 분급 기간을 기존 최대 2년에서 최장 7년까지 늘리고, 유지관리수수료를 신설할 방침이다. 오는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에는 판매수수료 비교공시 의무화, 법인보험대리점(GA) 설계사에 대한 1,200% 룰 확대 적용 등이 포함됐다.
향후 개편될 보험사의 판매 수수료 체계는 △선지급 수수료 △유지관리 수수료(기본 수수료 및 장기유지수수료) △공통비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먼저 선지급 수수료는 판매수수료, 시책, 운영비, 정착지원금 등 명칭과 상관없이 계약 체결의 대가로 지급되는 수수료를 말한다. 해당 수수료는 1~3년 차까지 계약체결비용 한도 내에서 지급된다.
유지관리 수수료는 7년간 분급하는 기본 수수료와 5~7년 차까지 보험계약이 유지될 경우 추가로 받는 장기유지수수료로 나뉜다. 기본 수수료는 매월 계약체결비용의 0.8%(최대 계약체결비용의 67.2%) 이내, 장기유지수수료는 매월 계약체결비용의 0.4% 이내로 지급된다. 공통비는 모집 종사자(설계사) 외 설계매니저, 지점장 등 영업관리자에게 지급하는 수수료다. 장기유지수수료 미지급 기간인 1~4차년에 매월 계약체결비용의 0.4% 이내서 지급할 수 있으며, 4차년 이전 계약해지 시엔 환수 조처된다.
1,200% 룰은 GA 소속 설계사도 초년도 수수료를 월 납입보험료의 1200% 이상 받지 못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시책이나 설계사 정착지원금 등이 모두 포함되지만, GA의 경우 판매수수료 내 내부통제 조직 인력 등 준법경영비(0.9~3%)는 일정 한도 내에 예외 적용하기로 했다. 또 공통비로 지급받는 4개년 비용을 1~2년차에 선지급 할 수 있도록 해 GA의 초기 운영비 부담을 덜 수 있게 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조치를 통해 보험계약 유지율 제고와 소비자 보호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업계 연착률을 위해서는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높은 수수료를 내건 선지급 위주의 영업 관행을 개선해 유지율 개선을 유도할 것”이라며 “단기 보험계약 유지율, 불완전판매 등 일부 지표가 개선되긴 했지만, 전반적인 유지율은 주요국 대비 저조하다”고 개정안 추진의 배경을 밝혔다.

비대면 강화로 설 자리 잃은 설계사들
가뜩이나 디지털 전환으로 설계사들의 입지가 좁아진 보험업계는 모집시장 위축을 우려하는 모양새다. 앞서 2023년 10월 국회 본회의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가결됨에 따라 보험 소비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병·의원 및 약국 등 요양기관에서 보험금 청구서류를 보험사에 전산으로 전송하게 되는 등 소비자들과의 소통 채널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여기에 지난해 초에는 금융위원회 주도로 보험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도 도입됐다. 해당 서비스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비교하고 가입까지 할 수 있는 규제 특례로, 네이버파이낸셜(네이버페이)과 카카오페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핀다 등 11개 핀테크 업체가 참여했다. 현재 비교·추천 보험상품은 단기보험(여행자·화재보험 등)과 자동차보험, 실손보험, 저축성보험(연금 제외), 펫보험, 신용보험 등으로 제한됐지만,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게 나타나면서 확대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실손보험 청구간소화와 보험상품 비교·추천 서비스 도입을 앞두고 강하게 반발했던 GA 업계는 이번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에도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GA협회는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전달한 정책 제안서를 통해 “4년 분급 기준 총수수료가 현행 평균 2,300%보다 줄어들면, 현재 월 300만원가량의 수수료를 받는 설계사의 소득이 60만원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GA 소속 설계사는 고정급 없이 전적으로 수수료에 의존하는 구조인 만큼 초기에 지급받는 금액이 줄면 생계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설계사 이탈 가속, 남은 설계사들은 고령화
실제 이 같은 우려는 일부 현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금감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의하면 1분기 기준 등록 보험설계사는 22만5,528명(생명보험사 7만6,879명, 손해보험사 14만8,649명)으로 집계되며 전년 동기(23만7,155명)와 비교해 1만1,627명 줄었다. 이로써 지난 2021년 28만928명(생보사 10만2,433명, 손보사 17만8,495명)에 달하던 국내 보험설계사 수는 4년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보험설계사 수 감소의 가장 큰 이유로는 국내 보험시장 포화와 비대면 트렌드가 꼽힌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가구당 보험 가입률은 98.2%, 개인은 95.1%에 달했다. 이는 국민 대부분이 이미 보험에 가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년 차 경력의 한 보험설계사는 “10년 전에 비해 설계사들의 수입은 반토막 났다”면서 “예전엔 지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설계사를 권유했는데, 이제는 민망해서 말을 꺼내지 못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영업 축소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보험상품은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경우보다 설계사의 권유로 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짚으며 “보험사들이 낮은 수입으로 고민하는 보험설계사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인구 고령화에 맞춰 보험설계사들의 평균 나이도 고령화되는 추세인 만큼 비대면과의 시너지를 도모하는 채널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