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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포기한 줄 알았는데", 5세대 HBM 기술로 시장 진출 성공
'주도권 쟁탈전' 본격화, 미국 정부서 61억 달러 보조금 지원받기도
엔비디아 납품 또 실패한 삼성전자, "마이크론에 사실상 뒤처진 셈"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전략적 성과를 내고 있다. 시장 요구에 맞는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시기적절한 생산능력 확대를 이룬 게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칼 갈던 마이크론, 본격적인 '도약' 시작
2일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AI 반도체 시장이 본격 개화하던 2022년 4세대 HBM인 HBM3 양산을 과감히 포기했다. 당시 자사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으로는 시장 주도권을 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넘어설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2022년만 해도 마이크론의 HBM 시장 점유율은 10% 미만에 머물러 있어 한국 HBM 제조사엔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HBM3 공백 기간 동안 5세대 HBM인 HBM3E 기술을 연마해 온 마이크론이 시장 진출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시작하면서다. 마이크론은 우선 AI 반도체 칩의 고질적 문제인 전력을 메모리 단인 HBM에서 해결하기 위한 기술 고도화에 착수했다. 그 결과 경쟁사 대비 30% 높은 전력 효율을 달성하는 성과를 쟁취,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기술을 일정 부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간 약점으로 지목됐던 생산능력(CAPA)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장 건설에도 주력하고 있다. 일본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오는 2027년 말 가동을 목표로 일본 히로시마현에 차세대 D램 생산을 위한 새 공장을 건설한다. 이 공장에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로 10나노급 6세대 공정인 '1-γ'(감마·11~12나노미터) D램을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본격 가동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 공장 설립에 매진하는 건 마이크론의 최종 목표가 단기 성과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마이크론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주도권 쟁탈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HBM 후발주자인데, "기술 추격 속도 예상보다 빨라"
마이크론의 위협은 HBM3E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이크론은 HBM 후발주자임에도 빠르게 시장 진입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장기 로드맵까지 구축하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와 'HBM 전쟁'을 대비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 6세대 HBM(HBM4)을, 2027년 7세대로 추정되는 HBM4E까지 개발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와 비슷한 시기다. 마이크론은 이를 통해 HBM 용량과 전송 속도 등 핵심 성능에서까지 한국 HBM과 맞붙을 수준까지 역량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마이크론이 미국 기업이란 점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의 높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국에 반도체 생산 거점을 확충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마이크론의 뒤에 '팀 USA'가 있다는 의미다. 실제 마이크론이 미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라 지원받은 보조금은 61억 달러(약 8조4,100억원)에 달하는데, 이는 인텔·TSMC·삼성전자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다. 미 정부가 마이크론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다.
아직 기술력에 확신은 없지만 기술 추격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면서 마이크론만의 위세를 떨치고 있기도 하다. 앞서 지난 2월 마이크론이 2분기 출시 예정인 엔비디아의 H200 GPU에 탑재될 HBM3E 양산을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하고 나서자 국내 업계에선 의아하단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일각에선 마이크론의 발표 가운데 양산과 출하 시점에 대한 표현이 모호하다는 점을 들며 기술적인 검증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시각도 나온다. 결국 후발주자로서 기술력에 의구심이 여전하단 의미지만, 한편으론 "최소한 마이크론의 기술 수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매우 근접했다는 게 드러난 것 아니겠나"라는 반응도 적잖이 나타났다. 실체가 어떻든 마이크론의 존재감이 점차 커지고 있단 방증이다.
엔비디아 테스트 통과 못 한 삼성, 이대로 무너질까
이런 가운데 최근 외신에선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기 위한 테스트를 여전히 통과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지난달 24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5세대 HBM(HBM3E)'에 대한 엔비디아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4월 테스트에 실패했다는 결과를 받았다"며 "발열과 전력 소비 등이 문제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지는 명확지 않다"며 "엔비디아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SK하이닉스보다 뒤처질 수 있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소식통의 발언도 전했다.
앞서 언급했듯 마이크론은 이미 엔비디아에의 HBM 납품을 공식화한 상태다. 엔비디아가 HBM 시장 내 최대 고객으로 꼽힌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는 이미 마이크론에 뒤처진 셈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기대가 낮아진 건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모건스탠리는 삼성전자를 아시아 AI 수혜주 추천 목록에서 제외했다. HBM 양산 체제를 갖추지 못한 데다 엔비디아 테스트도 통과하지 못하면서 삼성전자를 평가절하한 것이다. 마이크론의 도약이 가시화한 가운데 아직은 선두권을 유지 중인 한국 업체들이 후일 결국 무너지게 될지,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