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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인프라 수요 확대로 변압기 업계 초호황
국내 전력기기 3사 수출 규모 50% 이상 상승
변압기 호조 테마 타고 상장 도전하는 기업도
글로벌 전력 인프라 수요 확대로 변압기 업계의 슈퍼사이클(장기호황)이 도래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변압기 수출액 규모가 1년 전보다 약 5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력망 확충에 필수적인 중·대형 변압기를 생산하는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은 5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로, 최근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증설에 나섰다.
국내 변압기 기업 수출액, 50% 증가
1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5월 1만 킬로볼트암페어(㎸A) 이상의 초고용량 변압기 수출액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47.8% 상승한 3억9,474만 달러(약 5,467억원)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수출 총량은 2만7,875톤(t)으로, 전년 대비 30% 늘었다. 수출량 증가량에 비해 가격이 더 큰 폭으로 뛴 것이다. 2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수출액은 251%, 수출 중량은 135% 늘었다.
이에 국내 전력기기 3사는 올해 일제히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울산과 미국 앨라배마 변압기 공장에 각각 272억원과 180억원을 투자해 생산능력을 약 20% 확대할 계획이다. 효성중공업은 지난 12일 약 1,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멤피스와 경남 창원에 있는 초고압 변압기 공장을 증설하겠다고 밝혔다. 내년에 상반기 증설이 완료되면 효성중공업의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은 지금보다 40% 이상 늘어난다.
LS일렉트릭은 800억원을 투자해 연매출 2,000억원 규모의 부산사업장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을 내년 9월 4,000억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지난달 전했다. 이와 함께 592억원을 투자해 국내 중소 변압기 업체 KOC전기 지분 51%를 인수했다. LS일렉트릭은 KOC전기의 증설도 추진해 오는 2026년 초고압 변압기 생산 능력을 5,000억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IRA 시행 및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에 변압기 시장 호황
이 같은 한국산 변압기 호황은 10여 년 만의 일이다. 국내외에서 수주 실적을 꾸준히 쌓아가던 국내 업체들은 2011년 미국 업체들의 제소로 반덤핑 조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수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변압기 가격이 충분히 오르면서 반덤핑 이슈도 사라지고 미국 내 수요가 늘면서 슈퍼사이클을 맞게 됐다.
특히 미국 수출이 두드러진 데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과 함께 급격히 늘어나며 전력 인프라 수요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 크다. 이에 더해 AI(인공지능) 시대에 데이터센터 건립이 늘면서 전력 소모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변압기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더욱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에 따르면 미국 내 대형 변압기 70%는 설치된 지 25년이 넘었다. 특히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러스트벨트,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등 북동부 지역 내 공장에서 활용되는 대형변압기는 수명이 40년을 초과했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최소 5년 이상 교체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일전기', 시장 호조세 타고 올해 4호 코스피 상장사 도전
변압기 시장 호조세에 힘입어 기업공개(IPO)에 나선 국내 기업도 늘고 있다. 지난달 21일 변압기 전문기업 산일전기는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공모 절차에 착수했다. 산일전기는 과거 한 차례 코스닥 시장 상장을 노린 적이 있으나 최근 변압기 시장 슈퍼사이클을 앞세워 코스피 상장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에이피알, HD현대마린솔루션, 시프트업에 이은 올해 4번째 코스피 신규 상장 도전이다.
산일전기는 이번 상장에서 760만 주를 모집한다는 계획이다. 신주 650만 주, 구주매출 110만 주다.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는 2만4,000~3만원으로 책정했다. 밴드 상단 기준 공모 금액은 2,280억원, 상장 후 시가총액은 9,134억원으로 추산된다. 상장 주관은 미래에셋증권이 맡았다.
산일전기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을 핵심 고객사로 확보, 북미향 배전 변압기 물량을 잇달아 공급하며 2022년 1,297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교류 전압을 승압과 강압으로 조정하는 변압기 제조·판매를 주력 사업으로, 1994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기록한 1,000억원대 매출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더욱 늘었다. 북미 지역 변압기 교체 시기 도래에 따른 수주 증가로 미국에서만 1,400억원 매출을 냈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도입을 늘린 유럽향 매출 증가로 총 2,145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재작년 122억원에서 작년 466억원으로 증가했다.
다만 9,000억원이 넘는 몸값의 지속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산일전기의 몸값은 작년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1년치 당기순이익에 비교기업 주가수익비율(PER)을 적용한 수치다. 올해 1분기 매출은 706억원으로 전년 동기 530억원 대비 증가했고,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94억원에서 165억원으로 증가한 점이 반영됐다. 하지만 시장은 분기 기준 매출과 당기순이익이 현재 산일전기가 거둘 수 있는 실적 고점이라 판단하고 있다. 산일전기는 변압기 시장 슈퍼사이클에 대비한 생산 능력 확대 등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산일전기의 지난 1분기 생산 설비 가동률은 90%로 집계됐다. 장비 점검 시간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풀가동 중인 상태로, 실적 개선 상방이 막힌 셈이다. 실제 올해 1분기 월평균 매출은 235억원, 이후 4월과 5월 매출은 각각 232억원, 229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렇다 보니 산일전기도 공모 자금을 생산능력(CAPA) 확대에 최우선 배정했다. 현재 운영 중인 제1공장 인근 부지에 제2공장을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변압기 제품 생산설비 구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산일전기는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진행한다. 계획대로 진행 시 18~19일 일반 청약을 거쳐 이달 말 상장한다. 상장 예정 주식 수는 3,044만5,200주로 전체의 20.45%에 해당하는 622만7,100주가 상장일 유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