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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 청년' 수 급증, 내수 가라앉은 결과인가
위기 감지한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하며 내수 살리기 돌입
"구조적 문제가 내수 회복 발목 잡을 것" 비관적 전망 제기
15~29세 청년층의 고용 시장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내수 부진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자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본격적인 '내수 살리기'에 나선 가운데,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만으로 내수 시장을 부양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고용 시장 떠나는 청년들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취업자 수는 2,884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14만4,000명 늘었다. 취업자 수는 5월과 6월엔 1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가 7월 17만2,000명으로 10만 명대를 회복했다. 15세 이상 고용률은 69.9%로 9월 기준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 역시 2.1%로 1999년 기준 변경 후 동월 기준 가장 낮았다.
그러나 저출생·고령화 영향에 연령별 격차가 두드러지고 있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27만2,000명 늘었고, 30대와 50대 역시 각각 7만7,000명, 2만5,000명 증가했다. 반면 20대와 40대 취업자는 각각 15만 명, 6만2,000명 줄었다. 청년층(15~29세) 취업자도 전년보다 16만8,000명 감소하며 23개월 연속 줄었다.
취업을 포기하고 고용 시장에서 발을 뺀 청년층도 1년 만에 크게 늘었다. '쉬었다'고 응답한 15~29세 청년의 수는 전년 대비 6만9,000명 증가한 44만2,000명으로 확인됐다. 이는 2021년 1월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 청년층 고용 상황은 오히려 악화하는 양상이다.
시장은 청년층 고용 시장 이탈의 원인으로 '내수 부진'을 지목한다. 한 시장 관계자는 "내수가 가라앉으며 기업들의 수익성이 줄줄이 악화했고,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며 "취업 눈높이가 높은 청년층들이 현 고용 시장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줄줄이 취업을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짚었다.
위축되는 내수, 한은 피벗 단행
한국의 내수 부진 상황은 소매판매 등 각종 지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경영자총협회가 9일 발표한 ‘최근 소매 판매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 기준)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4% 감소했다. 이는 2003년(-2.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매판매액지수는 개인·소비용 상품을 다루는 2,700개 기업의 판매액을 조사한 대표적인 내수 경기 지표로, 지수 증가율이 음의 값일 때 실질 소비의 양이 이전보다 감소했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내수 경기가 가라앉음에 따라 경제성장률 역시 주춤하는 추세다. 지난 2분기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 대비 0.2% 역성장했다. GDP가 분기 기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 2022년 4분기 이후 1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우리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인 국민총소득(GNI)도 559조5,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4% 감소했다. 이는 2021년 3분기(-1.6%)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내수 침체의 그림자가 시장 전반을 뒤덮는 가운데, 한은은 긴축 고삐를 늦추며 본격적인 내수 살리기에 나섰다. 지난 11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3.50%에서 3.25%로 0.25%p 인하, 3년 2개월 만에 통화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앞서 한은은 2021년 8월 통화 긴축을 시작해 지난해 1월 기준금리를 연 3.5% 수준까지 끌어올렸으며, 이후 13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바 있다.
금리 인하만으론 내수 부양 어렵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금리 인하로 내수가 크게 반등하기는 어렵다는 평이 우세하다. 가계대출이 선제적으로 불어난 상황인 만큼, 피벗(통화 정책 전환) 이후 단기간 내로 내수 회복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은 작다는 시각이다. 김진욱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내수에 도움이 되려면 기존에 있는 대출 금리가 내려가고 전반적인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대출이 늘어야 한다"며 "금융 정책이 어그러져 가계가 대출을 미리 당겨쓴 부분이 있어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 역시 내수 회복의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9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9월 수출은 587억7,000만 달러(약 77조5,770억원)를 기록했다. 일평균 기준 수출액은 사상 최대치인 29억4,000만 달러(약 4조620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2.9% 증가했다. 통상 수출이 호조를 보일 경우 투자와 고용이 확대되고, 이를 통해 소비가 성장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이 지연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호실적을 기록한 수출 대기업으로부터 ‘트리클 다운 효과(Trickle-down Effect, 낙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수출 증가세가 일부 품목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수출 성장세를 견인한 것은 반도체·컴퓨터·무선통신기기 등으로, 고용이나 가계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작은 품목이 대부분이다. 한은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백만 달러당 2.6명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수출 대기업들의 ‘투자 방향’이 내수 부진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고스란히 해외에 재투자하며 내수 시장이 회복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수출로 인해 발생한 기업 수익이 해외로 흘러 들어갈 경우, ‘수출 호조-기업 성장-고용·투자 확대-소비 성장’으로 대표되는 트리클 다운 효과 역시 내수가 아닌 해외에서 발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