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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사관리국, 공무원 자발적 퇴직 신청 안내 9월 30일까지 퇴직 인센비트로 유급휴가 제공 재택근무 폐지, 무기계약직 전환 등 연일 파격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 공무원 인원 감축과 정부 조직 개편을 위한 본격적인 조치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 공무원의 재택근무를 전면 폐지하고 채용을 동결한 데 이어 최근에는 200만명의 연방 공무원에게 자발적 퇴직 신청을 안내하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새롭게 설치한 정부효율부가 주도하는 정책으로 행정부는 3개월 안에 정부 조직의 효율성 개선과 인원 감축 방안을 담은 인력 운용 계획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해야 한다.
연방 공무원 200만명에게 '갈림길' 이메일 발송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미국 언론에 따르면 백악관 인사관리국(OPM)는 지난 1월 28일 연방 공무원에게 '갈림길'(Fork in the Road)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통해 자발적 퇴직을 신청하는 '유예 퇴직 프로그램(Deferred Resignation Program)'을 안내했다. 해당 메일에는 퇴직이 강요가 아니라 전적으로 자발적인 결정(fully voluntary)에 의한 것임이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효율부에서 정부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케이티 밀러 자문위원은 "200만명이 넘는 연방 공무원에게 퇴직 신청 안내 메일이 발송되고 있다"고 밝혔다.
인사관리국에 따르면 오는 2월 6일까지 연방 공무원들은 해당 프로그램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퇴직을 신청하면 약 8개월 간 현재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 받게 된다. 또한 9월 30일까지 즉시 업무를 재배정하거나, 업무에서 배제돼 9월 말까지 유급 행정 휴가를 받는다. 일종의 퇴직 유도 인센티브인 셈이다. 다만 국가와 공공 서비스의 안정성 유지에 필수 인력으로 분류되는 군인, 우정국(USPS) 직원, 이민 단속 및 국가 안보 관련 직무 담당자, 기타 기관에서 제외한 직책 등은 이번 퇴직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美 정부효율부 수장 머스크, 정부 조직 축소 주도
미 언론들은 미 정부효율부의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 공무원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퇴직 신청을 '비대한 공무원 조직을 감축할 신호탄'이라고 평가하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머스크가 내세운 목표들이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머스크는 지난해 비백 라마스와미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칼럼에서 연방 공무원의 원활한 퇴직과 그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날 연방 공무원이 받은 이메일의 제목 '갈림길'이 2022년 머스크가 트위터 직원에게 보낸 최후 통첩 메일의 제목과 유사하다는 점도 관심을 모았다. 당시 머스크는 직원들에게 뛰어난 성과와 강도 높은 근무를 강조하며 요구하며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회사를 떠나라고 압박했다. 이날도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정부 조직의 축소는 가장 인기있는 정책 이슈"라며 "신청 자격이 있는 공무원 중 5~10%가 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OPM 대변인은 감축 목표를 따로 설정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퇴직 신청 이메일 조치에 대해 미국연방공무원노조(AFGE)의 에버렛 켈리 위원장은 "헌신적인 공무원을 연방정부에서 몰아내는 것은 미국 국민이 의존하는 정부 기능을 무너뜨리는 의도하지 않은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같은 조치는 새 행정부에 충성하지 않는 공무원들에 대한 퇴직 압박"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들도 "대량 이메일 발송 방식으로 사퇴를 권고한 것은 근로자 개인이 자신의 퇴직을 두고 협상할 기회를 위축시킨다"며 신중한 선택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취임 당일 모든 부처와 기관의 채용 동결
연방 공무원의 자발적 퇴직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다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연방 공무원의 전면 출근을 요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해당 명령에 따라 행정부의 모든 부서와 기관의 장관은 가능한 한 신속히 재택근무를 종료하고 소속된 근무지에서 전일제로 대면 근무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CNN에 따르면 재택근무가 승인된 연방 공무원은 약 130만명에 이르며 이들은 업무 시간의 60%만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수행한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정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거의 모든 연방 기관의 채용을 동결했다. 다만, 국방과 이민 관련법의 집행, 공공 안전, 사회보장 등과 같이 우선 순위 정책을 수행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예외를 허용했다. 아울러 관리예산국(OMB)에 정부효율부 및 인사관리처와 협의해 90일 이내 연방정부 각 기관의 효율성 개선과 자연 감원·자발적 퇴직 등을 통한 인력 축소 계획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연방 공무원을 무기계약직(at-will status)으로 재분류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연방 공무원이 누리는 강력한 고용 보호를 폐지하는 정책으로 정부는 사전 통보나 명확한 사유 없이 공무원을 해고할 수 있게 된다. 전환 대상은 정책 결정·수립, 기밀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경력직 공무원으로 최대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2020년 말 임기 종료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딥스테이트'라 불리는 연방정부 내 기득권 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조치로 연방 공무원의 유연한 채용과 해고를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 '스케줄 F(Schedule F)'에 서명한 바 있다.
DEI 정책 폐지와 함께 담당 공무원도 해고하기로
특정 업무에 대한 축소 명령도 이뤄졌다. 지난달 21일 인사관리국은 각 부처 및 기관장에게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유급휴가로 내보내고 관련한 웹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폐쇄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이와 함께 열흘 안에 DEI 담당 직원에 대한 해고 계획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아울러 차기 인사관리국장으로 지명된 찰스 에젤은 발송된 공지문을 통해 유사한 프로그램을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거나 은폐하려는 시도를 알고 있는 직원의 경우 해당 사실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지시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과 선호 정책의 종료'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에 따른 조치로 트럼프 대통령은 DEI가 인종으로 미국을 분열시키며 세금을 낭비하는 부끄러운 차별 정책이라 성토한 바 있다. 캐롤라인 레빗 신임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DEI 재앙을 종식시키고 피부색이 아닌 능력에 따라 채용하는 실력 기반 사회로 미국을 되돌리겠다는 공약으로 캠페인을 벌였다"며 "이것은 모든 미국인을 위한 또 다른 승리이며, 약속은 지켜졌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공 노조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집단 반발했다. 37개 연방기관·사무소 직원으로 구성된 전미재무공무원노조(NTEU)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일련의 행정명령에 대해 '공공부문의 손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만드는 위험한 퇴보'라고 지적하면서 지난달 21일 행정명령 시행 금지명령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도린 그린월드 NTEU 총괄위원장은 가디언에 "전일의 행정명령은 142년 전 의회가 명시적으로 거부한 정치적 엽관제도로의 후퇴"라며 "이 명령이 불법임을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