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닛산, 통합 비율 등 이견 좁히지 못해
혼다, 닛산 자구책 미흡해 자회사 인수 제안
닛산 거세게 반발, 경영 통합 전면 '재검토'

일본 2위, 3위 완성차 업체 혼다와 닛산자동차 간 경영 통합이 무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영 주도권을 쥐려는 혼다에 닛산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지주사 방식의 통합 협상이 중단됐다. 두 회사가 합칠 경우 단숨에 세계 3위로 올라설 수 있지만 사실상 없던 일이 되면서 양사 모두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사히 "혼다·닛산, 경영 통합 협의 중단"

5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혼다와 닛산자동차가 진행해온 경영 통합 협의가 중단될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내 양사는 각각 이사회를 열어 통합 협의 중단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이날 "혼다와 닛산이 경영통합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철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통합 협의를 재개할지, 전기차 등 협업만 계속할지는 향후 검토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양사는 지난해 12월 '2026년 8월 새로운 공동 지주 회사를 설립해 두 회사를 산하에 둔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이후 두 회사는 상장 폐지할 계획이었다. 

양해각서 체결 이후 혼다는 경영 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실적이 부진한 닛산에 대규모 감원을 포함한 자구책 마련을 요구했다. 닛산은 혼다의 요구에 회생 플랜을 짰지만, 내부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계획 확정이 지연됐다. 이 과정에서 경영 주도권을 쥐려는 혼다와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닛산 간의 갈등이 발생하면서 지주사 통합 비율을 둘러싼 조정도 난항을 겪었다. 결국 당초 1월 말로 예정됐던 경영 통합 방향성 발표 일정은 2월 중순으로 연기됐다.

협상 결렬의 결정적 원인은 혼다가 닛산에 자회사 인수를 타진한 것이다. 혼다 측은 닛산의 구조조정 자구안이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혼다가 주도해 닛산 재건을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아예 공동 지주회사 산하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회사로 만들어 직접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대등한 경영 통합을 원하는 닛산 내부에서 반발이 거셌고 사실상 닛산은 혼다 측의 제안을 거절했다. 닛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요미우리신문에 "양사 주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며 "이제 경영 통합은 어렵다"고 말했다.

통합 무산에 실적 부진한 '닛산 위기론' 대두

지난해 12월 글로발 자동차 시장 7~8위 기업인 혼다와 닛산이 합병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닛산과 혼다는 전기차(EV) 플랫폼 공통화, 고용량 배터리 개발, 자동차소프트웨어 개발부터 공급망 일원화까지 경영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시장에서는 양사의 합병으로 연간 매출 30조엔(약 287조원), 영업이익 3조엔 이상 거대 기업의 출범에 기대했다. 2023년 기준 양사의 자동차 판매량은 735만대로 1위 일본 도요타자동차 그룹(1123만대), 독일 폴크스바겐 그룹(923만대)에 이어 세계 3위로 올라선다.

하지만 양사의 경영 통합이 불확실해지면서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닛산의 미래가 어두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닛산은 지난해 12월 생존을 위해 대규모 비용 절감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닛산은 지난달 중국과 미국, 두 최대 시장에서의 판매 침체로 인해 현재 회계연도에 26억 달러(약 3조5,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9,000개의 일자리와 전 세계 제조 용량의 20%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다나카 미치아키 릿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닛산이 단독으로 살아남기는 어렵다"며 "사내 위기감이 높아지지 않으면 르노 구제 때와 같은 전개로 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논평했다.

닛산의 위기는 단순한 실적 부진을 넘어, 자동차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미흡한 대응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닛산은 이러한 시장 변화에 발맞춰 빠르게 전환하지 못했다. 경쟁사들이 혁신적인 전기차 모델을 잇달아 출시하며 시장을 선점해 나가는 동안, 닛산은 기존 내연기관차에 대한 의존도를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닛산의 주요 시장 중 하나인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도 큰 타격이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닛산은 현지 소비자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상실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판매 부진을 야기했다. 닛산 역시 이러한 경기 침체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전기차 야망' 대만 폭스콘 재등판 가능성도

르노와의 관계 악화는 닛산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양사는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주도권 다툼을 벌여왔고, 문화적 차이와 경영진의 갈등은 협력보다는 경쟁을 심화시켰다. 특히,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의 체포 이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으며, 이는 닛산의 경영에 큰 불확실성을 야기했다. 르노와의 관계 악화는 닛산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르노가 닛산에 대한 투자를 줄이거나, 심지어 지분을 매각할 경우 닛산은 자금난이 예상된다. 또한, 양사 간의 협력이 부족해지면서 기술 개발이나 신모델 출시 등에 있어서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닛산은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이는 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높은 부채 부담은 닛산의 투자 여력을 제한하고,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닛산은 2026년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부채를 지게 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잠재적으로 최대 56억 달러(약 7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영국 정부는 203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등 강력한 환경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닛산은 영국에서 약 7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그 중 6000명은 선덜랜드에 있는 영국 최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닛산은 영국 정부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높은 생산 비용과 경쟁 심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닛산에 눈독을 들이던 대만 폭스콘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폭스콘은 닛산 인수를 제안했지만, 닛산을 대만에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가 혼다를 테이블로 끌어들였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전기차(EV) 사업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폭스콘이 닛산 인수를 통해 생산 역량과 기술력 확보를 노릴 것이란 분석이다. 당초 폭스콘은 올해까지 전 세계 EV 생산 점유율 5%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EV 스타트업이 연이어 파산하면서 기대했던 고객사들이 사라졌다. 반면 중국 샤오미는 빠르게 EV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면서 폭스콘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