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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카드 사용 증가율 1.4% 물가상승률 2%보다 줄어 들어 업계 “전례 없는 수준” 우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고 탄핵 국면이 지속되면서 개인들의 소비 위축이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개인들이 지갑을 닫으며 카드 이용 실적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도 더 적게 늘어난 것인데, 카드업계에선 이런 불황은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 소비 위축 '심각'
3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카드사에서 개인들이 올해 2월까지 누적으로 결제한 국내 신용·체크카드 이용 내역은 147조8,406억원으로 전년 동기 145조7,804억원보다 1.4% 늘어났다.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은 2%에 달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도시가계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구입하는 상품 가격과 서비스 요금의 변동을 종합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통계청이 발표하는 지수다.
개인 카드 이용액은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소비가 존재해 경기가 아무리 나빠도 물가 상승률만큼은 카드 이용액이 증가해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카드 이용액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보다도 줄어들면서 극한의 소비 침체가 왔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작년에는 2023년 대비 6.7% 늘어난 138조6,537억원, 2023년에는 2022년보다 12.9% 늘어난 129조9,796억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카드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소비 위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요식업과 같은 업종에서는 물가 상승률에 대비해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일 정도로 매출 감소가 두드러진다. 여신금융협회의 '2025년 2월 카드승인실적'에 따르면 지난 2월 숙박 및 음식점업 카드 승인실적은 11조2,1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4,320억원(3.7%) 줄었다.
취미활동과 관련된 소비 위축도 눈에 띈다. 지난 2월 예술ㆍ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 카드승인실적의 전년 동기 대비 감소율은 9.0%로 산업분류 중 가장 높았다. 숙박 및 음식업점과 마찬가지로 3개월째 전년 동월 대비 감소 중이다. 지난해 12월에는 2.7%, 올해 1월에는 1.7%, 지난 2월에는 9.0%로 전년 동기 대비 감소폭이 급증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카드 매출이 역성장하지는 않지만, 물가 상승률이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등을 고려할 때 올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소비 위축이 올해 들어 더 심화하고 있는데, 이 정도로 개인들이 지갑을 닫은 걸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신용카드 연체 2.3조 눈덩이
유래 없는 불황에 카드 연체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업카드사 8곳(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카드)의 1개월 이상 연체액은 2조3,223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말 1조2,216억원에 비해 90.1% 폭등한 숫자다. 3개월 이상 연체돼 사실상 회수가 어려워진 연체액은 1조1,33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연체액의 무려 48.8%다.
업계는 카드사 연체액 규모가 늘어난 원인을 고위험자산 취급 증가에서 찾는다. 여신금융협회에 의하면 작년 말 카드론(장기카드대출) 잔액은 42조3,872억원으로 2023년말 38조7,613억원과 비교해 8%가량 늘었다. 카드론은 급전이 필요한 취약차주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품으로, 카드사 입장에선 14% 이상의 고금리로 당장의 수익을 내기는 쉽지만 그만큼 연체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상품이다.
신한카드는 카드사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돈을 취약차주들에게 빌려줬다. 지난해 신한카드가 취급한 전체 카드론 잔액은 8조4,131억원이다. 신한카드 다음으로 카드론을 많이 취급한 KB국민카드와 비교해도 약 1조5,000억원 이상을 더 내줬다. 고금리로 인해 가계 상환여력이 약해지자 빚을 못 갚는 이들도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의 대손충당금 부담도 확대됐다. 카드사들이 취약차주를 대상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내주면서 지난해 대손충당금 규모는 11조4,417억원으로 확대됐다. 사상 최대치다. 문제는 올해 카드론 잔액 규모가 더욱 확대되면서 연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점이다. 지난 2월 기준 카드사 전체 카드론 잔액은 42조9,888억원으로 43조원 돌파를 목전에 뒀다.
할부·연회비로 버티는 카드업계
이에 카드사들은 할부 수수료와 연회비 등으로 수익을 채우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업카드사 8곳의 지난해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8조1,862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소폭 증가했지만, 전체 카드수익(22조567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11%로 전년(38.45%)보다 1.34%포인트(p) 감소했다.
가맹점 수수료 수익 비중은 2020년 40.93%에서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37.11%까지 떨어졌다. 이는 14년째 이어진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의 영향이다. 2007년 4.5%에 달했던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은 현재 우대수수료율 기준 0.4~1.45%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 이후 금융당국은 3년 주기로 카드수수료 적격비용을 재산정해 수수료율을 하향 조정해 왔으며, 지난 2월까지 총 15차례에 걸쳐 인하됐다.
카드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카드 무이자 혜택을 줄였고, 이 때문에 할부 수수료가 증가했다. 지난해 할부 수수료 수익은 3조4,630억원으로, 2020년 1조9,338억원 대비 79.1% 급증했다. 전체 카드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1.17%에서 15.70%로 크게 늘었다. 할부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가운데, 카드사들이 수익 감소를 보전하고자 무이자할부 혜택을 대폭 축소한 영향이다.
연회비 수익도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카드사들은 연회비가 높은 프리미엄 카드 출시를 확대하며, 저연회비 고혜택의 ‘알짜카드’는 단종시키는 추세다. 이에 따라 연회비 수익은 2020년 1조174억원에서 지난해 1조4,414억원으로 매년 1,000억원 단위의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