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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그룹, 유동성 확보 위해 매각 고려 업계, 안정적 실적에도 '밸류업 한계' 보여 상장사·유통업 이중 부담, 홈플·발란 여파

애경그룹이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그룹의 캐시카우이자 모태사업인 애경산업 매각에 나섰으나 동종업계의 구미를 크게 당기지 못하고 있다. 화장품 사업은 수익성은 탄탄하지만 중국 시장에 편중돼 있고, 생활용품 사업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문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모펀드(PEF)업계에서는 최소 5년 이내 밸류를 끌어올리기 적합하지 않아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새 주인 찾는 애경산업, '확실한 인지도' 강점
10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애경그룹은 최근 매각 주관사로 삼정KPMG를 선정하고, AK홀딩스(45.08%)와 애경자산관리(18.05%),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애경산업 지분 63.38%에 대한 매각 작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애경그룹은 그간 지주사 AK홀딩스를 통해 주식담보대출을 일으켜 제주항공과 AK플라자 등 부진한 계열사를 지원했다. 이로 인해 AK홀딩스의 연결기준 부채총계는 2024년 4조918억원, 부채비율은 328.7%로 가중됐다. 이 상황에서 상장 계열사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채권자가 추가 담보 요구나 강제 매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애경산업을 매물로 내놓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애경산업이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알짜 매물로 인식 중이다. 실제 애경산업은 케라시스·2080·루나 등 생활용품·화장품 산업에서 국내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매출 6,719억원과 영업이익 468억원을 달성하며 안정적인 실적을 보여줬다.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K뷰티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장점이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화장품 올 1분기 수출 규모는 역대 1분기 중 최대 수출액을 기록한 지난해 1분기보다 13% 증가한 26억 달러(약 3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두 번째 수출액을 기록한 2021년 1분기 수출액 22억 달러보다 18.2% 오른 것으로 1분기 수출 사상 최대 실적이다.

中에 치우친 글로벌 사업,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엮여
하지만 애경산업이 알짜 매물임에도 정작 동종업계 반응은 미지근하다. 특히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 주요기업들의 경우 애경산업을 인수하면 단숨에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음에도 인수를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 중이다.
가장 큰 이유는 추진 중인 글로벌사업 방향과 맞지 않다는 점이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은 최근 해외 진출 국가를 다변화하며 '탈중국'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두 기업의 최근 투자 이력을 보면 북미시장에 대한 확대 의지가 확고하다. 아모레퍼시픽은 인수합병(M&A)에 보수적이던 기업이지만 2023년 미국 아마존 유통망이 탄탄한 코스알엑스 잔여 지분을 전부 사들였다. LG생활건강도 뉴에이본, 더크렘샵 등 미국 화장품 브랜드 인수에 과감히 나섰다.
반면 애경산업의 경우 작년 화장품 사업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6%였는데 상당부분이 중국에서 매출이 나오고 있다. 이 회사도 미국과 일본, 동남아 등으로 수출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 비중이 80%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애경산업의 대표 화장품 제품이 여전히 에이지투에니스(AGE20'S)의 팩트 외에는 없다는 점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애경산업은 2018년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입성 당시에도 AGE20'S의 매출 95% 이상을 차지하는 '에센스 팩트' 외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또 다른 사업 축인 생활용품 사업 역시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엮여 있는 점이 부담이다. 관련 재판은 지난해 말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하며 여전히 진행 중인 사안이다. 피해자 지원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2022년 민간 차원에서 요구한 피해자 지원금을 이번엔 정부가 개입해 들여다보고 있다. 환경부는 연구 용역을 의뢰해 피해자 구제 재원 징수 방식 마련 등에 대한 법리적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PEF업계 "유통업· 화장품은 엑시트 쉽지 않은 분야"
PEF업계 반응도 회의적이다. PEF 특성상 5년 내외의 구간에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엑시트(투자금 회수)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애경산업은 구조적으로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한 PEF 관계자는 “애경산업의 잠재적 성장 동력은 뷰티사업 부문에서 찾아야 하지만, 이미 레드오션인 시장에서 경쟁사 대비 뚜렷한 차별화 전략이 부재하다”며 “PE가 개입해서 성장을 가시화하기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국내 유통업계 전반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것도 부담 요인이다. 홈플러스의 매각 지연과 발란의 유동성 논란 등으로 인해 업계 전반이 ‘보수 기조’로 전환된 가운데, 애경산업 또한 상장사이자 유통기업이라는 이중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상장사의 경우 경영 전략 수립 및 구조조정에 있어 공시나 주주 가치 제고 등 고려사항이 많아 PEF 입장에선 접근이 어려운 구조다.
높은 매각가 역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애경산업의 시가총액은 3,000억대다. 애경산업이 매각하는 지분 63.38%를 대입해 보면 실질적인 매각 지분가치는 2,000억대 수준이다. 하지만 애경산업은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6,000억~7,000억원 안팎에 매각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EF 입장에서 보기엔 규모가 작지 않지만, 이 정도의 투자금을 들여도 고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명확한 성장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