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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계열사들 전반적 유동성 압박 심화
일렉링크 실적 악화 → 자력 회복 불가
연이은 투자 실패로 앵커PE 체력 고갈

SK일렉링크의 최대 주주가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로 바뀌면서 SK그룹의 유동성 위기와 재무적 투자자(FI) 의존 구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자력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서 SK일렉링크는 구조조정형 지분 매각을 통해 일단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구상이지만, 앵커PE 역시 연이은 투자 실패로 포트폴리오 리스크가 누적된 상태다. 이에 업계에선 이번 딜을 두고 양측 모두 불확실성을 품은 ‘절박한 합의’에 가깝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앵커PE 지분 30%→60% 확대
28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SK일렉링크는 500억원 이상의 유상증자 및 지분 양수·도를 통해 앵커PE를 최대 주주로 맞이할 예정이다. 앞서 기존 최대 주주인 SK네트웍스는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SK일렉링크 주식 12만4,656주 중 5만847주를 매도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말 기준 SK네트웍스의 SK일렉링크 지분율은 52.82%이며, 앵커PE는 특수목적법인(SPC) 슈퍼노바아시아(Supernova Asia Ltd)를 통해 30.6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거래는 내달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거래가 마무리된 후에는 앵커PE가 약 6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며, SK네트웍스는 20% 내외의 지분율로 주요 주주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SK네트웍스는 “지분율 변경 후에도 주요 주주로서 SK일렉링크의 성장 여정에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SK는 올해 초 SK네트웍스의 자동차용 전자부품(CPO) 사업부도 FI에 매각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업계는 SK가 사업 확장보다는 ‘당장 연명’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바이오 등 선단형 성장 전략을 펼치던 SK의 비즈니스 모델이 고금리·고비용 환경에서 급격히 흔들리고 있으며, 현금창출력이 낮은 구조 탓에 내부 자금으로 위기를 버티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FI 유치 또는 매각은 사실상 유일한 출구 전략으로 평가된다.
이는 과거 SK온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6월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 법인 SK온의 투자유치를 위한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ENGZ, JPT, Wert 등 싱가포르 기반 FI들로부터 4억 달러(약 5,300억원)를 투자받는 내용이다. 이들 FI는 MBK컨소시엄의 일원으로 SK온 투자에 합류했다. 당시 적자를 거듭 중이던 SK온은 해당 투자 유치를 통해 재무구조를 견고히 하고 해외 시장 진출 확대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었으나, 현실화는 여전히 미진한 실정이다.

안정적 수익 모델 부재에 리스크 누적
SK일렉링크 역시 마찬가지다. 그룹 내 교통·인프라 분야의 미래 성장 사업으로 분류됐지만, 현실은 적자 누적에 따른 운영 부담만 떠안았다. 전기차 충전 사업의 경우, 수익 창출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해 단기간 내 실적 전환이 어렵고 자금 수요는 늘어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 결과 유동성 확보 한계에 다다르면서 FI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불가피하단 분석이다. ‘팔 수 있을 때 팔자’는 SK그룹의 구조조정 원칙이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됐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다만 앵커PE의 SK일렉링크 투자금 회수(엑시트)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설립된 SK일렉링크는 설립 3년차인 지난해까지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SK일렉링크의 지난해 매출액은 511억원, 영업손실은 18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34.63% 증가했지만, 영업손실 폭 또한 24.59% 커졌다. 적자 폭이 커지면서 현금창출력을 보여주는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에비타)은 마이너스(-)134억원에서 -162억원으로 악화했다.
순손실이 지속되면서 자산 규모도 감소하는 추세다. SK일렉링크의 순손실 규모는 2023년 143억원, 2024년 184억원으로 해마다 늘었다. 이에 따라 결손금이 쌓이면서 총자본 역시 2023년 말 972억원에서 2024년 말 787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전기차 충전소 운영을 위한 유형자산 취득에 지난 한 해에만 343억원을 사용했다. 2023년 말 SK일렉링크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543억원이었는데, 2024년 말에는 257억원으로 감소했다.
앵커PE의 행보를 두고 업계에서 “전형적인 구조조정형 투자”란 평가를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SK일렉링크의 수익 모델 자체에 의문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기존 구조를 손보지 않고 단순 지분 인수만으로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앵커PE가 SK일렉링크를 실적 전환 가능한 플랫폼으로 판단했다기보다는 SK그룹이라는 브랜드에 기댄 안정적 회수 가능성을 보고 거래를 진행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앵커PE 포트폴리오 리스크 확대 기로
이런 가운데 SK일렉링크 지분 인수 소식과 함께 앵커PE의 불안정한 포트폴리오도 시장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최근 수년간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이어온 앵커PE는 컬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연이은 상장 실패와 기업가치 하락을 겪으며 수익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특히 컬리의 상장 철회는 앵커PE의 엑시트 전략에 막대한 차질을 가져왔고, 이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앵커가 손대면 고점’이라는 인식까지 번졌다.
이번 SK일렉링크 역시 구조적 수익 모델 부재와 시장 확대 지연, 인프라 투자 과부담 등 복합적인 리스크가 존재하는 사례로, 최대 주주 교체만으로는 실적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와 관련해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앵커PE의 전략은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매각하는 방식보다는 SK그룹 계열사라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 차례 반등을 유도한 뒤 빠르게 회수하는 단기 생존형에 가깝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물타기식 구조조정’이 앵커PE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이미 여러 차례의 엑시트 실패를 경험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불확실한 자산을 추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신뢰도 하락은 물론 향후 투자 유치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는 전략이 반복되는 실패로 이어지면 앵커PE는 단지 고위험 자산을 선호하는 PE로 낙인찍힐 수 있으며, SK일렉링크 인수는 그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