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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기업부터 빅테크까지 잇따른 대규모 감원 WSJ “AI 도입 영향으로 호실적에도 인력 감축” 아마존·인텔 등 'AI 사무 자동화' 실험도 이어져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낸 미국 기업들이 AI 전환을 계기로 대규모 감원에 나섰다. 프록터앤갬블(P&G), 에스티로더 등 제조 기업은 물론 인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굴지의 빅테크들은 고수익을 내면서도 단순·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비제조 직군과 중간관리자를 대거 정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딩 중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면서 전문직 일자리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3,000명 해고한 HPE, 직원 6만 명 못 미쳐
1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적인 소비재 기업인 P&G은 최근 7,000명을 감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비제조 부문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규모로 회사 측은 “더 넓은 역할과 더 작은 팀을 만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와 데이팅 앱 운영업체 매치 그룹도 최근 관리직 20%를 해고했다. IT 기업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PE)도 올해 3월 3,000명의 직원을 해고해 현재 직원 수가 최근 10년 내 가장 작은 규모인 5만9,000명으로 줄었다.
이 같은 감원 추세는 과거 경기 침체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WSJ은 “일반적으로 기업은 경기 침체기에 직원을 줄이고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채용하는데, 최근의 감원은 매출과 이익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미국 기업들은 사상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체 기업의 영업이익은 4조 달러로 전체 국민소득에서 기업 이익이 차지하는 비율도 16.2%까지 확대됐다. 이는 2010~2019년 평균(13.9%)보다 2.3%포인트 높은 수치다.
아마존, 효율성 높이기 위해 자사 AWS 활용
기업들이 호실적 속 감원에 나서는 배경에는 AI의 급속한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최근 AI는 인간의 의사결정과 고난도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로 인해 기업들은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사무 업무의 자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 최고경영자(CEO)는 사내 메모에서 “현재의 업무 중 일부는 AI로 인해 인력이 줄고, 그 대신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사람이 필요해질 것”이라며 “AI 기반의 효율화는 결국 전체 사무직 인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마존은 이러한 인식 아래 AI 기반 사무 자동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말에는 일부 부서에 '회의 감축 실험'을 도입했다. 기존의 부서별 주례 회의를 AI가 대체하는 구조로 AI가 업무 상황을 요약한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해 개별 이메일로 발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마존은 이 실험 결과를 토대로 자사의 클라우드 서비스 AWS에 AI 인프라를 접목시켜 반복적·표준화된 사무 업무를 줄이고, 인력을 보다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분야로 전환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중간관리자 직급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인텔은 총 2만2,000명을 감원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팀 리더, 부서장 등 중간관리자였다. 립부 탄 인텔 CEO는 "경쟁사처럼 빠르고 단순하게 움직이기 위해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회의와 결재 절차를 최소화하고 중간계층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텔의 회계팀에서는 보고서 초안 작성·검토·요약 등의 작업을 AI로 자동화하면서 팀 리더급 3명이 해고됐다. 이어 본사 마케팅 부서의 중간관리자 전원이 정리되면서 이들의 업무는 AI 보고 자동화 툴이 대신하고 있다.

美 빅테크에서는 엔지니어 일자리 크게 줄어
빅테크 분야에서는 엔지니어링 종사자가 구조조정의 타겟이 되고 있다.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MS는 지난달 전체 근로자의 3% 규모인 6,800명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이는 2023년 1만 명을 정리해고한 이후 최대 규모다. 직종·직급별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가 4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제품 관리나 기술 프로그램 관리 직책 등 중간 관리자가 30%로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해 MS는 "AI를 업무 전반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불필요해진 인력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어느 정도 예견됐다고 지적한다. 기존 직원 감축에 더해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둘러싼 구직 시장 자체가 급속히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미국에서는 개발자들이 역대 최악의 구직난을 겪고 있다. 미국의 대표 구인 플랫폼 인디드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체 일자리는 전년 대비 10% 증가했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 채용 공고는 35% 급감했다. 미 고용통계국(BLS)은 2023~2025년 미국의 컴퓨터 개발자 고용이 27.5% 감소하면서 1980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산한다.
IT 업계에서는 이미 단순 코딩 업무를 AI가 대체하고 있어 앞으로는 인적·물적 자원을 통합해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내년쯤 개발 업무의 절반이 AI로 대체되고 그 비중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AI 자체를 발전시킬 머신러닝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데 집중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노동통계국은 2033년까지 코딩 관련 일자리는 10% 감소하는 반면, 프로그래밍 전반을 관리하는 개발자 일자리는 17%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