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총파업 나선 전국 15개 공항 노동자, 노란봉투법이 등 밀어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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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항노동자연대, 추석 앞두고 무기한 전면 파업 하청 구조 및 고용 불안정으로 노동자 불만 누적 노란봉투법 시행 앞두고 각계서 파업 사례 속출

최장 열흘간의 추석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인천·김포공항 등 전국 15개 공항 노동자들이 무기한 총파업에 나섰다. 하청 중심의 불안정한 고용 환경으로 인해 누적된 노동자들의 불만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법) 시행을 수개월 앞두고 터져 나오는 양상이다. 이 같은 노사 갈등 양상은 항공업계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서 관측되고 있다.
파업 착수한 전국공항노동자연대
1일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이날 오전 6시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와 전국공항노조가 모인 이들 연대는 전국 15개 공항과 항공기술훈련원, 한국공항공사 항로시설본부 등에서 △보안검색 △보안경비 △소방안전시설 관리 △전력 및 기계 시설 관리 △항공등화 △기계 급유 △탑승교 △정보통신 분야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자기부상열차 △셔틀버스 △셔틀트레인 △터미널 운영 △환경미화 △주차 단속 및 교통 관리 등을 담당하는 공항공사의 자회사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앞서 지난달 19일에도 1일 파업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각 자회사에 공항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달한 바 있다. 이들은 교대제 개편 및 4조 2교대 연내 시행, 노동 시간 단축 및 인력 충원, 모·자회사 불공정 계약 근절, 낙찰률 임의 적용 폐지와 인건비 환수 결원정산 폐지 등을 촉구 중이다. 노조 측은 자회사는 물론 원청도 책임 있는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어 개천절, 추석 명절 연휴를 포함해 요구 사항이 수용될 때까지 파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에 인천공항공사는 추석 연휴 기간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자회사와 협력해 필수 유지 업무 인원 및 자회사 내·외부 대체 인력을 투입하는 등 정상적인 공항 운영 및 국민 불편 최소화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침이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추석 연휴 기간 역대 최다 여객이 예측되는 가운데 이번 파업이 연휴 기간 공항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안전과 편의에 직결될 수 있고, 한 달 앞으로 다가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대비해 공항에서도 국빈 맞이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시기인 만큼 자회사 노동조합 측에서도 국민 불편을 야기할 수 있는 파업을 자제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불안정한 고용 구조, 노사 충돌 잦아
항공업계의 노사 갈등은 단순 일시적 리스크를 넘어 고질적인 병폐로 꼽힌다. 인천공항공사만 봐도 하청 노동자 비중이 높아 고용 구조가 상당히 불안정한 편이다. 이는 개항 직전 외환위기가 터져 공항 운영 대부분을 아웃소싱한 결과다. 탑승교, 셔틀버스, 터미널 환경 미화 등은 물론 내·외곽 경비, 보안검색, 소방대까지 민간 기업이 하청을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내 하청 업체는 3년마다 입찰에 따라 결정된다.
이 같은 고용 환경은 이전부터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벌어진 대량 해고 사태를 살펴보면 공항 하청 노동자들의 위태로운 입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인천공항 카트 노동자 176명은 용역 업체 ㈜ACS에서 근로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카트 운영 사업이 2020년 12월 말에 종료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도급 계약 만료는 1차 하청 업체인 전홍이 인천국제공항공사과 맺은 용역 계약 갱신을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전홍은 광고 입찰 업체로, 카트 운영 업무는 또 다른 하청 업체인 ACS에 맡겨 왔다. ‘인천국제공항공사-전홍-ACS’의 다단계 하청 구조 최말단에 위치한 카트 노동자들이 실업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이는 비단 인천공항공사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비슷한 시기 대한항공 화물청사의 보안과 안전을 담당하던 장풍HR 소속 특수경비노동자 86명도 고용을 위협받았다. 대한항공이 하청업체인 장풍HR에 도급 계약 종료를 선언하면서다. 이후 대한항공의 도급계약 발표가 지연되면서 1개월가량 계약이 연장됐지만, 대한항공이 새로운 하청업체인 ㈜유니에스와 계약하며 이들은 끝내 일자리를 잃게 됐다. 유니에스는 장풍HR 소속 기존 특수경비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하지 않았다.

노란봉투법이 부른 '파업 릴레이'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 불만을 품어 온 공항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파업에 나선 배경에는 노란봉투법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내년 3월 무렵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니어도 근로 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면 ‘사용자’로 간주해 하청업체 노동자도 원청업체와 교섭할 수 있고, 거꾸로 노조 및 조합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는 제한된다.
노란봉투법이 베일을 벗은 후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원청에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금속노동조합 HD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경우, 원청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지난달 중순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근로자들의 작업 시간·방법·일정 등을 통제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어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원청이 직접 교섭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삭감된 일당 회복 및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중이다.
전국금융산업노조 역시 노란봉투법이 국회 문턱을 통과한 뒤 주 4.5일제 도입, 성과급 체계 개선 등을 요구하며 쟁의권 확보 절차에 착수했다. 이전에는 은행이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노조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지만, 노란봉투법이 등장함에 따라 협상 지형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지난달 말에는 현대차그룹 부품 계열사 현대모비스의 자회사인 모트라스와 유니투스도 파업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