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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결제액, 카드사 합산액 초과 달러 토큰 확산, 지역 통화 주권 약화 제도적 대응 지연 시 시뇨리지 유출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년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결제된 스테이블코인 규모는 27조6,000억 달러(약 3경6,000조원)에 달했다. 이는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연간 결제 총액을 합친 것보다 7.7% 많고, 독일과 일본의 국내총생산을 합친 수치보다 크다. 전체 결제의 98% 이상은 미국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며, 이 중 테더(USDT)는 유통량이 1,500억 달러(약 196조원)를 넘어 전체 거래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테더는 미국 달러 가치를 기준으로 발행되는 대표적 스테이블코인이다.
통화 불안정 국가에서는 개인과 기업이 자국 통화 대신 달러 연동 디지털 자산을 선택하고 있다. 민간이 발행하는 이 자산은 달러에 연동되며, 어떤 정부도 임의로 발행하거나 평가절하할 수 없다. 현재의 연평균 성장률 38%가 지속되면,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은 2030년까지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시중 통화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는 지금, 자국 통화를 자발적으로 외면하고 외화 기반 디지털 자산으로 이동하는 첫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단기 수단에서 디지털 달러화로
스테이블코인은 본래 암호화폐 시장의 변동성에 대응하는 일시적 수단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최근 온체인 데이터는 이들이 일상 결제 수단으로 정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의 61.8%가, 브라질은 59.8%가 달러 연동 토큰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스테이블코인 거래액이 국내총생산의 9.3%에 이른다.
이처럼 거래 기반이 이동하면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은 점차 무력화된다. 급여 지급, 세금 납부, 거래 송장이 미국 달러 단위로 이루어지면 지급준비율 조정이나 재할인 정책의 효과가 축소된다. 동시에 시뇨리지(Seigniorage), 즉 정부가 화폐 발행으로 발생하는 이익도 민간 발행사를 통해 해외로 유출된다.
스테이블코인은 자동화된 금융 기능도 제공한다. 조건부 결제나 양방 서명 기반 거래를 스마트 계약 형태로 구현할 수 있으며, 주말과 야간에도 전 세계 어디로든 실시간 전송된다. 기존 금융 시스템의 접근성과 운영 시간을 넘어서는 기능이다.
젊은 인구와 모바일 결제 인프라가 확산 속도 높여
라틴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중위 연령이 30세 미만이며, 도심 지역 스마트폰 보급률은 70%를 넘는다. 여기에 2023년 남미의 평균 기대 인플레이션이 17.4%에 달해, 물가 안정성이 높은 달러 기반 디지털 자산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넘는 송금 장벽도 허물고 있다. 2025년 4월, 비자는 브릿지(Bridge)와 협력해 라틴아메리카 6개국에 토큰 연동 카드를 출시했으며, 기존 비접촉 결제 단말기를 통해 달러 결제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동남아시아도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2025년 1분기, 한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약 190억 달러(약 24조8,000억원) 규모의 스테이블코인이 순유출됐으며, 전체 암호화폐 출금의 47%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USDT는 80% 이상 프리미엄 가격에 거래됐다. 이는 달러 연동 토큰이 선진국에서도 우선 선택되는 대체 자산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나이지리아, 필리핀, 베트남, 케냐(X축), 스테이블코인 사용 비율(Y축)/2023년 기준 스테이블코인 거래 비중(진한 파랑), 2025년 예상 거래 비중(중간 파랑), 연평균 성장률(연한 파랑)
수치로 확인된 지역통화 이탈 흐름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통화를 대체하고 있다는 흐름은 수치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블록체인 분석 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는 11억 건의 거래를 분석해 지갑 간 자금 이동 경로를 상세히 추적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의 API를 수집해 전체 시장 거래의 약 92%를 반영한 통계를 구축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역시 중복 거래를 제거한 뒤, 2024년 한 해 동안 약 26조 달러(약 3경4천조원) 규모의 실물경제 결제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처리된 것으로 분석했다. 공식 통계가 부족한 일부 지역에 대해서는 보완 추정이 이뤄졌다. 케냐 농촌이나 페루 내륙처럼 P2P(개인 간 거래) 자료가 부족한 국가는, 유사한 구조의 다른 시장에서 블록체인 기반 송금과 SWIFT 기반 송금이 각각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 지역별 거래 규모를 산정했다. 이후 과도한 추정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수치를 기준선보다 30% 낮춰 보수적으로 반영했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저소득 국가에서 스테이블코인 사용은 연평균 24%씩 증가하고 있다.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전 세계 소매 거래에서 지역 통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 테더(USDT), 유에스디코인(USDC), 기타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 합계, 비자, 마스터카드, 비자 및 마스터카드 합계(X축), 결제 금액(Y축)
송금 수수료는 줄고 정산은 즉시 가능
기존 국제 송금에는 평균 6.35%의 수수료가 부과돼 매년 약 480억 달러(약 63조원)가 비용으로 사라진다. 반면 트론(Tron)이나 스텔라(Stellar) 네트워크를 활용한 스테이블코인 전송 수수료는 건당 0.01달러(약 13원) 미만이며, 실제 시범 사업에서도 전체 송금 수수료가 1% 이하로 확인됐다.
수수료 절감 외에도 실시간 결제가 가능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통 은행 시스템에서는 송금 도착까지 수일이 소요됐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몇 초 내로 자금이 도착한다. 이로 인해 중소 수출업체의 자금 회전 속도가 빨라지고, 공급망 참여자들은 입금된 토큰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 된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속도와 효율의 네트워크 정렬이 블록체인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줄어드는 시뇨리지, 약해지는 정책 수단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국가 재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4년 기준,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고객 예치금을 미국 국채에 투자해 약 400억 달러(약 52조원)의 자산을 운용했다. 이는 세계 10대 단기 자금 운용 펀드 규모에 맞먹는 수치다. 과거에는 이자 수익이 국내 재정에 기여했지만, 이제는 대부분이 해외 수탁기관으로 유출되고 있다.
동시에 지역 금융기관들은 예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하더라도, 연준 금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에는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자금세탁 방지나 자본 유출 통제에도 한계가 드러난다. 온체인 분석보다 자산 이동이 더 빠른 상황에서는 실시간 추적이 어렵고, 전면 금지 조치조차 하드웨어 지갑을 통한 비공식 거래를 막지 못한다. 인도는 2016년 현금 폐기 당시 유사한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자금 이탈과 국채 시장 왜곡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미국 국채의 주요 신규 매입자로 부상했다. 이는 미국 국채 시장의 유동성을 높이지만, 주변국의 저축이 미국 자산으로 이동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 결과, 각국 정부가 자국 인프라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국채의 투자 수요는 줄고, 조달 금리는 상승한다. 이러한 상황은 기업 자금 시장에서도 영향을 준다. 지역 통화 기준으로 형성되던 금리 곡선은 왜곡되고, 기업 투자 판단은 중앙은행 금리가 아닌 디지털 달러의 수익률에 따라 이뤄지게 된다.
한국의 경우,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외화 자산’으로 간주하고 보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2025년 1분기, 업비트와 빗썸의 총거래액 중 17%가 달러 연동 토큰으로 이탈했다. 과거 무역 송장 조작이 주요 경로였다면, 이제는 블록체인상의 32바이트 메모 필드 하나로 익명 송금이 가능해진 것이다.
규제 갈림길에 선 각국
전 세계 규제 당국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상반된 접근을 보인다. 금융안정위원회(FSB)에 따르면, 60% 이상의 회원국이 2025년까지 관련 규제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외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결제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도매 전용 디지털 유로를 준비 중이다.
반면에 JP모건은 2025년 7월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시장 전망치를 향후 5년간 5,000억 달러(약 650조원)로 낮췄다. 규제 격차와 소비자 확산의 한계를 이유로 들었지만, 보고서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분기당 150억 달러(약 20조원) 이상의 결제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는 수많은 소규모 국가의 연간 통화량을 초과하는 규모다. 규제 지연은 확산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흐름 자체를 멈추지는 못한다.
디지털 달러의 물결을 넘는 법
스테이블코인의 네트워크 효과는 억제하기 어렵지만, 파급력을 완화할 수 있는 전략은 존재한다. 지역 통화 연합을 통해 시뇨리지를 공동 관리하고, 토큰 발행사와 상호 유동성 협약을 체결하는 방식이 하나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더라도 자동으로 자국 통화 기준으로 부가가치세를 징수하는 과세 시스템을 도입하면, 국가의 재정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아울러, 정부가 직접 디지털 형태의 국채를 발행하고 이를 시민들이 전자지갑을 통해 보유하도록 하는 방식도 있다. 이 경우, 시민은 예금처럼 디지털 국채를 보유하면서 이익을 얻고, 국가는 공공부문 내에 안전하고 투명한 디지털 자산 운용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 정책 여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 금지가 아닌 선제적 수용이 필요하다. 디지털 달러 기반 청구서가 거래 표준이 되기 전에, 준비금 구성, 환매 보장, 투명성 기준 등을 제도화해야 한다. 대응이 늦어지면 주도권은 해외 발행사로 넘어간다.
디지털 달러 시대의 경계선
스테이블코인 결제 규모는 디지털 화폐 시대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각국 정부, 지역 공동체는 지금 선택해야 한다. 디지털 달러를 제도권에 편입해 재정 체계에 통합할 것인지, 아니면 시뇨리지와 통화 주권을 민간 디지털 자산에 넘길 것인지. 현재는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다음 예산 주기에는 그 결정권조차 사라질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Digital Dollar Hegemony: Why USD-Stablecoins Are Set to Absorb Regional Currencies Within a Decade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