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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中 전자제품과 부품에 145% 고율 관세 예고 中 의존도 80% 넘는 애플, 가격 인상 등 타격 불가피 인도·베트남을 생산거점으로 낙점해 물량 이전 추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산 전자제품과 부품에 145%의 고율 관세를 예고한 가운데, 애플이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인도, 베트남 등 새로운 생산기지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애플과 중국이 20여 년에 걸쳐 긴밀한 공조 관계를 유지해 온 데다 중국 현지에 이미 고도화된 생산 인프라와 촘촘한 부품 공급망이 구축돼 있어, 애플이 80%가 넘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생산기지를 완전히 이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中, 애플의 최대 생산기지이자 두 번째로 큰 소비시장
11일 IT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대중 관세 정책으로 인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애플의 공급망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애플은 2024년 기준 아이폰을 비롯해 전체 제품의 90%를 중국에서 생산했다. 최근 인도 등으로 생산기지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올해 그 비중이 80%로 다소 낮아졌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부품 조달과 조립은 중국에서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트 행정부가 예고한 대로 중국산 전자제품과 부품에 최대 14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생산비용 급등과 공급망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중 관세로 인한 타격이 우려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애플과 중국의 공급망 협력 구조가 단순한 파트너십을 넘어 '전략적 공조' 관계라고 진단한다. 애플이 중국 진출을 본격화한 2000년대 초반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해외자본과 기술 유치에 적극적이던 시기로, 당시 중국 정부는 애플에 토지, 기반 시설과 인프라, 인력 등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힘입어 애플은 20여 년간 중국 시장과 생산기지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시가총액 7조5,000억 달러(약 1경260조원)의 세계 최대 상장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애플의 가장 큰 생산기지이자 두 번째로 큰 소비시장으로 자리 잡았고, 애플은 중국 기술산업의 혁신과 성장에 큰 몫을 했다. 애플은 중국 기업에게 단순히 생산을 위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엔지니어, 디자이너, 관리자 등 자사의 핵심 인력을 현지에 파견해 중국 기업들과 함께 생산 공정을 설계하고 운영해 왔다. 이에 따른 고용효과도 컸다. 애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에서만 5만 명 이상을 직접 고용했고, 이 중에는 1,000명이 넘는 연구개발(R&D) 인력이 포함됐다. 애플 생태계 전반에서 일하는 인력을 모두 합치면 500만 명에 달한다.
애플과 중국 간의 공조 관계는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팀 쿡 CEO는 2017년 포춘(Fortune)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이미 저임금 국가가 아니다"라며 "애플이 생산거점으로 중국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한 비용 절감 때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강점으로 고급 기술력과 방대한 기술 인력 풀을 꼽았다. 그는 "애플 제품에는 고급 툴링(tooling)이 필요한데, 중국 엔지니어들은 이 분야에서 매우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기술력이 제품별로 정밀한 가공 조건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애플, 中에 첨단 기술 이식해 선도기업과 경쟁 유도
그러나 애플과 중국의 긴밀한 공조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중국은 세계 각국의 첨단 기술 부품을 싼값에 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기술저작권과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법제를 갖추고 있지만, 집행력과 실효성 면에서 한계가 많아 현장에서는 기술 복제와 역설계 등 불법 행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실제 애플은 이러한 환경을 악용해 한국이나 미국, 일본 등 부품·소재 기업의 기술을 채택한 뒤 레시피를 중국, 대만, 홍콩 등 협력사에 유출해 경쟁을 유도하는 '멀티 벤더' 전략으로 부품 단가를 낮춰왔다.
국내 한 디스플레이 업체 관계자는 "애플은 공급업체들과의 계약을 통해 제품의 제조 과정 전반을 소유하며, 그 과정에는 도구부터 광택 처리 등 모든 디테일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애플 직원 다수의 증언을 인용해 “애플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가 삼성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 상응하는 품질을 갖춘 디스플레이를 생산할 수 있도록 수년간 도움을 줬다”며 “이를 통해 애플은 삼성디스플레이에 패널 납품 가격을 인하하도록 압박을 가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년간 이어온 긴밀한 공조는 애플에 부메랑이 됐다. 최근 애플은 자국의 첨단 기술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중국 정부의 압박과 함께 현지 테크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했다. 애플이 중국의 전자 제조 역량을 키운 덕분에 화웨이, 샤오미, 오포 등이 애플의 성숙한 공급망을 재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애플은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를 화웨이와 비보에 내줬다. 내수 침체로 중국의 소비 지출이 줄어든 데다, 챗GPT가 중국에서 금지되면서 AI 기능을 원하는 소비자 사이에서 애플이 경쟁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도 이전 추진 계획도 中 정부 통제와 방해로 어려워
애플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관계가 '공생'에서 '경쟁'으로 전환하자. 인도를 새로운 생산거점으로 낙점하고 생산 물량의 이전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올해 5월 쿡 CEO는 투자자 설명회에서 중국 공장 설비 일부를 인도로 이전하고, 2026년 말까지 중국 내 아이폰 생산 기지를 인도로 옮겨 미국 공급량 연간 6,000만 대 전량을 인도에서 조달한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미국 내 투자 확대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그는 “향후 4년간 미국 내 여러 주에 걸쳐 5,000억 달러(약 687조원)를 투자할 예정”이라며 자국 내 고용과 생산 기반 확대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인도로 생산기지를 완전히 이전하는 데는 여러 난관이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아이폰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인도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부품의 공급망을 동시에 이동시키는 물리적·구조적 어려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폰 한 대에는 수백 개의 정밀 부품이 들어가는데, 이 부품들의 상당수가 중국 현지에서 생산·조달되고 있는 데다, 조립 공정만 인도로 이전하더라도 핵심 부품과 장비, 기술 인력의 공급망은 여전히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어 전체 생산 체계를 한 번에 옮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중국 당국의 강력한 통제와 방해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애플과 협력사들은 아이폰 신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 설비와 장비를 중국에서 인도로 반출하려 했으나, 중국 정부가 명확한 이유 없이 출하를 지연하거나 아예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장비 반출에 소요되는 시간이 기존 2주에서 최대 4개월로 늘어났으며, 일부 장비는 설명조차 듣지 못한 채 반출이 불허됐다. 이는 중국 내 첨단 제조 기술과 생산설비의 해외 유출을 막아 산업적 우위를 지키려는 의도로 이로 인해 애플의 인도 생산 확대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인도 현지 환경도 생산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숙련된 인력 부족, 품질 관리 문제, 노동법 등으로 인한 제도적·운영상의 한계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도 타타그룹 아이폰 생산공장에서는 현지 인력의 숙련도가 중국에 비해 크게 떨어져 수율이 50%에 그치고 있다. 또한 공장 설비 운영체제가 중국어로 돼 있어 인도 노동자들이 기기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인도 노동법상 하루 근무 시간이 9시간으로 제한돼 있어 중국식 12시간 2교대 근무제 도입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