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고용보험 기금 이미 4조 적자인데 되레 초단기 근로자까지 지급 추진 가입자 증가로 실업급여 지출 확대

국민신문고에 실업급여 제도를 바꿔 달라는 민원이 올라오는 등 일반 국민조차 실업급여 제도의 구조적 문제와 역효과를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제도 개선 논의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내년도 최저임금이 인상돼 최저임금과 연동된 실업급여 지출액이 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고갈 위기에 빠진 고용보험기금을 안정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업급여 하한액 올라 상한액 역전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6년도 적용 최저임금이 올해 1만30원보다 290원(2.9%) 오른 1만320원으로 결정됨에 따라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일액, 8시간 기준)도 6만4,192원에서 6만6,048원으로 상승한다. 6만6,000원인 실업급여 상한액을 역전하는 셈이다. 이는 2016년 이후 10년 만이다.
실업급여 하한액은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이 치솟으면서 함께 급등했다. 2017년 4만6,584원이던 일일 하한액은 최저임금이 2년 연속 급격하게 오르며 2018년 5만4,216원, 2019년 6만120원으로 상승했다. 상한액도 2017년 5만원에서 2018년 6만원, 2019년 6만6,000원으로 급등했다. 상한액은 재정 부담 우려에 2019년 이후 6년간 동결됐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연동된 하한액은 그 이후로도 계속 증가했다.
내년에는 실업급여 월 최소 지급액(30일, 하루 8시간 기준)이 192만5,760원에서 198만1,440원으로 6만원가량 오른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4대 보험료와 소득세 등 세금을 공제하고 손에 쥐는 실수령액(약 186만1,000원)보다 많다. 이는 근로 유인을 떨어뜨려 실업급여 신청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초단기 알바생·N잡러도 실업급여 수령 가능해져
이런 가운데 초단시간 근로자와 N잡러(두 개 이상의 직업을 병행하는 사람)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가 더 늘어나게 됐다. 지난 7일 고용부는 고용보험 가입 기준을 ‘근로시간’에서 ‘소득’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고용보험법과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현행 고용보험은 주당 소정 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인 경우에만 가입할 수 있다. 이보다 적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고용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법안이 시행되면 합산 소득이 기준을 넘을 경우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구직급여(실업급여)와 육아휴직급여,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 출산 전후 휴가 급여 등을 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도 실제 받은 보수를 기준으로 변경돼 지급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기준이 되는 소득 금액은 차후 논의를 거쳐 시행령에 반영할 예정이지만 월 80만원 수준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고용보험제도 개편안은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고용보험 적용 범위 확대 및 사각지대 해소’ 정책의 일환이다. 이재명 정부 노동 분야 1호 정부 입법으로도 평가된다. 고용부는 최근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고용보험 부과 및 산정 기준을 ‘시간’에서 ‘소득’으로 개편하겠다며 구체적인 로드맵을 보고한 바 있다.
고용재정 악화 우려, 사업주 부담도 과제
고용보험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던 초단시간 근로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지만,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고용보험의 재원이 되는 고용보험기금은 고용안정, 직업능력개발, 실업급여 등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특히 실업급여 부문에서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 중 실업급여 계정 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적자가 4조1,267억원에 이른다. 적립금 3조6,000억원에서 재원 부족으로 차입한 공자기금 7조7,000억원을 제외한 수준이다. 고용부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실업급여 계정 적립금이 내년 말 소진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실업급여 지급에도 한계가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고용보험 개편에 따라 가입자 수가 늘어난다면, 모이는 재원이 증가할 순 있으나 동시에 실업급여 등 지출 규모도 늘어나게 된다. L-ESG 평가연구원의 김성희 원장은 "재정에는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함께 존재하는데 소득 기준으로 개편되며 일용직, N잡러 등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는 불안정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올수록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용보험 가입자 확대로 사업주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용보험료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나눠 분담하기 때문이다. 개편이 완료되면 초단기 알바생을 고용하는 영세자영업자도 월 급여의 0.9%를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른 일자리 축소도 우려된다. 자영업의 경영난을 가중시켜 인력을 가족으로 대체하거나 ‘나 홀로 사장’이 더 늘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