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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살던 재건축, 수십억 차익실현 稅 부담 줄이고 노후 대비 강남구 50세 이상 매도자 60%↑

올해 상반기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 거래된 아파트 10채 중 7채는 50대 이상 집주인이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과 함께 보유세 부담을 줄이고, 노후·증여 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3040세대가 이들 주택을 사들여 집주인의 세대교체가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남3구 '10채 중 7채'는 50대 이상이 매도
14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6월 서울에서 집을 판 매도인 7만6,047명 중 50대 이상은 60.3%인 4만5,880명에 달했다. 강남구(70.4%), 서초구(66.9%), 송파구(62.4%) 등 강남 3구는 서울 전체 평균(60.3%)을 웃돌았다. 올 상반기 강남 3구의 50대 이상 매도자는 1만24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042명)보다 69.5% 늘었다.
특히 장기 보유한 주택 처분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서울에서 20년 넘게 보유한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빌라·상가)을 매도한 사람은 4,726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85.0% 급증했다. 이 가운데 29.3%인 1,383명이 강남 3구에서 팔았다.
매수 주체로는 3040세대가 떠오르고 있다. 올 상반기 서울 집합건물 매수자 7만8,379명 중 40대는 29.3%(2만2,983명), 30대는 29.1%(2만2,837명)였다. 강남 3구 매수자 가운데 3040세대 비중은 60%를 웃돌았다. 서초구(61.8%), 강남구(60.7%), 송파구(60.2%) 순으로 많았다. 50대 이상이 재건축 입주권이나 새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으면 3040세대 고소득층이 이를 사들이는 사례가 많았다는 게 중개업계의 설명이다.
장기보유 주택 팔아 노후자금 마련
업계에서는 강남권 집값이 크게 오르며 차익 실현을 위한 매도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9차 전용면적 111㎡는 지난 5월 60억원에 손바뀜했다. 2006년 5월 같은 면적이 13억4,000만원에 거래된 단지다. 20년간 보유했다면 46억원 넘는 차익을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2009년 7월 13억9,300만원에 팔린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는 지난달 48억2,0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김효선 농협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올해 강남에서 20년 이상 집을 보유한 사람의 매도 비율이 높았다”고 짚었다.
서울의 아파트 장기 보유 매도자 비율이 늘어나는 이유는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 은퇴 영향이 크다. 노후 자금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을 팔고 생활비와 자녀 증여 문제를 동시에 마련하려는 전략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서 국내 65세 이상 고령자 자산 중 81%가 부동산이었다. 은퇴 후 집을 팔거나 줄이는 것은 해외 선진국에선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부동산은 계속 우상향한다’는 인식 속에 처분을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은퇴 세대가 아파트 처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증여·상속용으로 자산을 정리하는 고령자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장기 보유 주택의 매도 유형 중엔 재건축 예정 아파트를 팔아 인근 지역이나 지방의 작은 평수로 움직이는 사례가 많다. 대치동 한 공인중개사는 “강남 일대에선 ‘아파트값이 30억이면 가족끼리 싸움이 생기고, 집값이 50억까지 뛰면 법정에서 만난다’란 말이 나올 정도로 증여 문제로 골치를 썩는 사람이 많다”면서 “고령 세대는 자신의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자식들에게 물려줄 현금을 확보하려고 주택 매도를 문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공인중개사도 “올 들어 40억~50억짜리 구축 아파트를 팔고, 신축 단지가 많은 개포동 일대 20평대로 옮기고 싶어 상담하는 사례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똘똘한 한 채’ 서둘러 증여 나서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법원등기정보광장의 소유권이전등기(증여) 신청 부동산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 419건이었던 집합건물 증여 신청 건수는 강남권 토허구역 해제 기대감에 집값 상승 움직임이 보이던 2월에 514건으로 100건가량 늘어났다. 이후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체 아파트 단지가 토허구역으로 재지정 된 3월에는 649건까지 증가했다. 4월에는 671건으로 늘었고 5월에도 683건으로 늘며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다. 이는 지난해 5월(707건) 이후 1년 만에 최다 건수다.
증여 건수 증가 흐름은 같은 기간 서울 지역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거래량이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한국부동산원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18주 연속 상승한 반면 거래량은 줄었다. 3월 9,529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월 5,032건으로 반토막 났다. 5월 거래량도 5,000건 대에 머물렀다. 통상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증여세 부담이 커지는 만큼 증여 건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장은 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집값 안정화 정책으로 오히려 주택 시장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장소희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부동산전문위원은 “증여세 부담으로 인해 현금을 증여해도 현재 증여자가 보유하고 있는 수준의 자산을 매입하려면 추가적인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차라리 주택 증여를 선택한다”며 “특히 강남권 주택은 양극화 심화로 지금보다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크고 현금보다 자산을 증여하는 것이 미래가치 방어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고가 주택 소유주와 다주택자를 겨냥한 부동산 규제 정책이 똘똘한 한 채로 몰리게 하면서 ‘부의 대물림’이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