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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복잡한 설명보다 한 문장의 기준이 정책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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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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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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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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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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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새로운 정보로 믿음을 바꿀 때 효과 발생
단순하고 구체적인 신호가 행동 변화를 결정
핵심은 반복보다 명확한 메시지 설계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말 기준, 전 세계 약 40%에 해당하는 79개 교육기관이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했다. 겉으로는 강력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제도가 실제로 학생과 학부모의 행동을 바꾸려면 단순한 금지보다 명확한 기준과 구체적 근거가 필요하다. 이 원리는 경제학의 ‘베이지안 정보 갱신(Bayesian information update)’으로 설명된다. 새로운 정보가 효과를 내려면 기존 인식과 달라야 하며,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하거나 불분명한 메시지를 내면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

중앙은행의 경험이 이를 보여준다. 물가가 급등했다가 안정되는 과정에서 복잡한 성명은 시장에 영향을 미쳤지만, 가계와 기업의 기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물가 상승률을 2% 수준으로 유지하겠다”처럼 단순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을 때 기대는 명확히 조정됐다. 학교 정책도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AI) 사용을 다루는 규정이 원칙만 제시하고 구체적 절차가 없다면, 학부모와 학생은 이를 새로운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대로 사용 시간, 보관 방식, 예외 기준 등 구체적인 내용을 함께 제시하면 정책의 실효성이 높아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발표의 양이 아니라 전달 방식이다. 사람들이 정책을 통해 무엇이 바뀌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할 때 제도는 작동한다. 변화가 없다면 메시지를 줄이고 핵심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진=ChatGPT

정보가 효과를 가지는 조건

현대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사람이 모든 정보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으며, 관심을 어디에 둘지 선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합리적 부주의(rational inattention)’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정보를 이해했을 때 얻는 이익이 크지 않거나, 내용이 복잡해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애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 과거 내용을 되풀이하는 발표는 인식이나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 새로운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베이지안 정보 갱신은 기존 생각과 다른 독립된 정보가 제시될 때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 정보를 근거로 기존 판단을 새롭게 조정한다.

따라서 효과적인 소통은 복잡한 설명이 아니라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해하기 쉬운 기준은 기존 인식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행동 변화를 끌어내는 출발점이 된다.

중앙은행의 경험, 단순한 신호가 만드는 신뢰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복잡한 문장으로 기존 지침을 반복할 때와 명확한 수치 목표를 제시할 때 전혀 다른 반응을 얻는다. 장황한 설명은 시장의 단기 변동만 일으키지만, 가계의 기대는 변하지 않는다. 반면 “물가 상승률을 2% 수준으로 안정시키겠다”라는 단순한 목표는 중기 인플레이션 기대를 좁히는 효과를 낸다.

ECB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책 설명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결과가 확인됐다. 정책 담당자의 설명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이해도가 높아지고, 중앙은행의 목표와 유사한 수준의 기대를 형성했다. 특히 정책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민일수록 변화 폭이 컸다. 명확하고 일관된 언어는 정보를 이해하는 부담을 줄이고 신뢰를 높인다.

2025년 8월~9월 유로존과 미국의 물가상승률 기대 중간값(1년·3년·5년 기준)(단위: %)
주: 지역-유로존, 미국(X축), 기대 인플레이션율(Y축)/1년 기대치(연한 빨강), 3년 기대치(중간 빨강), 5년 기대치(진한 빨강)

수치로 본 기대 변화의 흐름

ECB가 2025년 8월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유로존의 1년 후 인플레이션 기대는 2.8%, 3년 후 2.5%, 5년 후 2.2%로 나타났다. 단기 기대는 목표를 웃돌았지만, 중장기 기대는 안정적이었다. 단순하고 반복된 메시지가 신뢰를 붙잡는 역할을 한 것이다.

미국의 조사 결과도 유사하다. 뉴욕 연준과 미시간대 조사에서 모두 단기 기대는 여전히 높았지만, 장기 기대는 완만하게 안정됐다.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고 금융 지식이 고르지 않은 가계일수록 기대를 느리게, 부분적으로 조정했다. 공식 발표보다 체감 물가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는 조사 실패가 아니라, 새롭고 단순한 메시지가 없을 때 믿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정책이 복잡하게 전달되면 경영자들은 인플레이션이나 금리 전망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핵심이 분명한 신호를 받은 기업은 정책 목표와 일치하는 기대를 세운다. 결국 정책의 신뢰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메시지의 구조와 명확성에 달려 있다.

학교 정책에 적용하기

교육 현장도 같은 원리를 따른다. 스마트폰 사용 제한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책의 실효성은 학부모와 학생이 이를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원칙만 제시한 규정보다 구체적 절차를 함께 제시할 때 정책은 행동 변화를 이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보관용 파우치에 넣는다”라거나 “보관 장소와 사용 가능 시간을 명확히 정한다”라는 방식은 단순히 금지만 강조하는 규정보다 효과적이다. 명확한 기준은 해석의 여지를 줄이고, 학생과 학부모가 따라야 할 행동을 분명히 인식하게 만든다.

많은 학교의 스마트폰 정책은 근거 자료보다 관행이나 믿음에 기대어 만들어지고, 그 효과도 지역과 환경에 따라 차이가 크다. 그러나 이는 정책 추진을 멈추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정책의 근거를 데이터로 보완하고, 전달 방식과 실행 절차를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업 중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명확한 기준과 “수업 시작부터 종료까지 지정된 장소에 보관한다”라는 구체적 절차를 함께 제시하면 이해도와 신뢰가 높아진다. 이런 단순하고 구체적인 메시지가 현장에서 정보 갱신을끌어내는 출발점이 된다.

2023년 말 vs 2024년 말: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 정책 도입 현황 (단위: 국가 수, %)
주: 시점(X축), 금지 정책 현황(Y축)/스마트폰 사용 금지 정책을 시행 중인 국가 수(연한 빨강), 전체 조사 대상 중 금지 정책을 시행 중인 국가 비율(진한 빨강)

정책 매뉴얼, 정보 갱신을 실행으로 옮기기

정책의 성과는 발표 빈도나 문장 수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바뀌었는지에 달려 있다. 중앙은행의 경험처럼 단순한 목표는 신뢰를 유지하지만, 복잡한 설명은 주의를 끌지 못한다. 학교 정책도 같다. 인식은 새롭고 현실적인 정보가 제시될 때 움직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짧은 설문이나 교실 관찰을 통해 변화를 점검할 수 있다. 행동이나 기대가 달라지지 않았다면 메시지는 새로운 의미를 주지 못한 것이다.

정보 전달은 명확해야 한다. 문장은 짧고 구체적으로 쓰고, 불필요한 수식어를 줄이며, 한 문단에는 하나의 행동 지침만 담는 것이 좋다.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때 인식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난다.

메시지는 새로워야 한다. “AI를 학습에 활용할 수 있다”라는 원론보다 학년별로 구체적인 기준을 두는 편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글의 개요 작성에는 AI 사용을 허용하되, 에세이 전체를 AI가 작성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사용 여부는 교사가 직접 확인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준이 있을 때 정책은 행동 변화를 이끈다.

정책은 발표로 끝나지 않는다. 실행 이후에는 점검과 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교육 당국은 학기마다 간단한 설문을 통해 스마트폰 사용, AI 활용, 규정 집행에 대한 인식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믿음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방향이 아니라 메시지를 바꿔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말의 양이 아니라 핵심이 분명한 신호다.

정보가 변화를 만드는 조건

추가 정보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정보가 기존의 믿음을 바꾸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할 때만 효과가 생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정책이 실질적 영향을 미치려면, 모든 메시지가 인식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야 한다.

중앙은행이 같은 내용을 반복하면 기대는 달라지지 않지만, 목표와 방향을 간결한 언어로 제시하면 신뢰는 유지된다. 학교 정책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금지 조항만으로는 행동을 바꾸기 어렵지만, 사용 범위와 시간, 절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인식이 바뀌고 규칙이 생활 속에 자리 잡는다.

정책의 목적은 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신호를 명확히 전달하는 데 있다. 메시지가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일 때 정책은 힘을 가진다. 변화가 없다면, 덜 말하고 더 분명히 말해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Extra Information Helps: A Bayesian Information Update Test for Central Bank and School Communica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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