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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노인들만 탓하지 말고 시스템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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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onths 3 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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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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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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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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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인 대상 금융 사기’ 급증
캠페인만으로 막기 어려워
금융 거래 시스템 ‘재설계’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년 미국의 사기 사건 피해 규모는 모두 합쳐 120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하는데 그중 49억 달러(약 7조원)가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저질러졌다. 이는 전년 대비 40%가 증가한 수치이기도 하다. 목소리와 화면 위조 등 인공지능(AI)을 이용하는 노년층 대상 사기 범죄는 전 세계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금융 사기 피해 40% ‘노인 대상’

이는 어리숙함이나 무지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노화와 사회적 고립, 인간의 사고 속도를 넘는 금융 기술이 결합해 만들어 낸 ‘시스템적 취약성’으로 정의하는 게 맞다.

60세 이상 인구 대상 사기 추이(미국, 2024년)
주: 건수(complaints), 피해액(Losses)(단위: 십억 달러)

금융 사기 피해자 가운데 노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노화 현상을 겪는 뇌는 위험과 사회적 신호를 별도로 취급해, 부드럽고 익숙하거나 권위 있는 목소리에 더 많은 신뢰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를 먹을수록 속임수를 감지하는 신경 영역이 비활성화된다는 연구도 있다. 노인들의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속임수에 더 잘 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합성된 목소리가 가족이나 은행 직원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사기 예방 포스터나 공익 광고만으로는 노화로 인한 현상을 되돌리기 어렵다. 사랑하는 손자가 도움을 청하는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활용, 경각심만으로 ‘막기 어려워’

수년간 관계 당국은 ‘사기 전화를 받으면 일단 끊고 다시 걸라’는 지침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데이터를 보면 경각심을 일깨우는 캠페인만으로는 흐름을 막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에 따르면 작년에만 사기 피해액이 25%나 증가했으니 말이다. 10,000달러(약 1,429만원) 이상의 피해 규모를 동반한 노인 대상 사기 건수는 2020년 이후 네 배나 늘었다.

범인들 입장에서는 AI 덕에 비용과 수고가 훨씬 줄었다. 목소리 합성과 발신자 위조, AI를 이용한 대화를 통해 완벽한 사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목소리는 물론 실제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이성적인 의심을 가로막고 송금이 빠르게 실행된다.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미국 국무부 장관으로 위장한 목소리에 고위 관료가 피해를 당한 사례가 올해 실제로 있었다. 국무위원도 속는 상황에서 은퇴한 노년층들이 더 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시스템적 예방책’ 필수

그렇다면 해답은 피해자를 탓하기 전에 금융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위험해 보이는 거래가 발견됐을 때 속도를 지연시키고 진위를 검증하는 중간 단계를 넣는 것이다. 새로운 수취인이나 신규 가상화폐 거래에는 일일 거래 한도를 책정하고, 대규모 거래인 경우 실행 전까지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금융 기관도 자금 이체 전 당사자에게 확인 전화를 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사기로 의심되는 거래를 중단시키는 전용 창구를 개설하는 것도 좋다.

위에 언급한 조치는 일부 영역에서 이미 시행 중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미국 증권 중개인들은 노인 대상 사기가 의심될 경우 지불을 잠정적으로 유예할 수 있다. 이제 해당 조치를 증권업에만 한정하지 말고 일상적인 금융 거래로 확대할 때가 됐다.

결제 수단별 금융 사기 규모(미국, 2024년)
주: 우편환, 수표, 현금, 온라인 송금, 기프트 카드 및 충전식 카드, 가상 화폐, 은행 송금, 직불 카드, 결제 앱, 신용카드(위부터) / 피해 규모(Total Loss, 단위: 백만 달러), 건수(Reports)

영국은 작년 10월 은행 사기 피해자들에게 금융 기관이 배상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에게 최대 85,000파운드(약 1억6천만원)까지 송금 및 수취 은행이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이었다. 특기할 점은 제도 시행 후 몇 달이 안 돼 환급률과 사기 적발률이 동시에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은행들도 사기 예방을 위한 동기부여를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결국 기관의 조치를 강화하고, 사기 거래의 속도를 늦추며, 송금 완료 전 가족들이 개입할 시간을 버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으로 보인다.

‘금융 기관 책임 분담’도 필요

은행을 포함한 금융 기관들은 수상한 거래가 감지되면 ‘목소리와 발신인이 위조됐고 위험성이 높다’는 메시지를 통해 이용자에게 다시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이 경우 자동으로 거래를 24시간 연기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모든 계좌에 믿을만한 지인들의 연락처를 추가해 수상한 행동이 감지되면 알려야 한다.

통신사들은 모바일에서 사용하는 ‘발신자 확인 시스템’을 기존 전화 및 인터넷망에도 적용해 위조 전화를 줄일 수 있다. 모든 조치를 결합하면 합법적 거래를 위축시키지 않고 상당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층 금융 사기는 지나가는 우려 사항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120억 달러(약 17조원)의 피해 규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파괴된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미 언급했지만 단순한 교육이나 경고는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없고 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거래 속도를 늦추고, 가족 간 확인 과정을 연습시키고, 금융 기관들이 책임을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내년에는 확 달라진 숫자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Stop the Wiring: How to Contain AI Elder Fraud Without Blaming the Victim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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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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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