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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멈추고 물가는 오르고', 브렉시트 이후 무너진 영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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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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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브렉시트(Brexit) 이후 3년여가 지난 가운데 영국 경제가 주요국 대비 낮은 성장세를 이어가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간의 팬데믹, 러-우 전쟁 장기화 등과 함께 결정적으로는 브렉시트의 부정적 영향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영국 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하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브렉시트 당시 정부 및 금융기관예측이 맞았다

영국은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한 후 2020년 1월 EU를 공식 탈퇴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EU 탈퇴를 추진해 온 영국이 브렉시트를 감행한 결정적인 이유는 부담금 때문이다. EU 회원국은 공동정부 운영을 위해 경제 규모에 따라 부담금을 내는데, 2014년 당시 영국의 부담금은 49억 유로(약 7조218억원)로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부담금을 냈다. 그러나 정작 영국이 EU로부터 받는 예산 규모는 회원국 중 12번째로, 독일과 프랑스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많이 내고 적게 받자 결국 EU 탈퇴를 감행한 것이다.

공식 탈퇴로부터 3년이 넘는 기간이 지난 지금 영국 경제는 탈퇴 당시 일부 금융기관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부정적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Brexit 이후 3년간의 경제적 영향 평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영국은 미국 등 선진국 대비 낮은 경제성장률과 함께 높은 물가상승률에 허덕이고 있다.

먼저 성장 측면에서 영국의 전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0%대 초반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GDP 규모 또한 주요국과 달리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9년 4분기 수준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IMF와 영란은행 등은 영국이 올해 상반기부터 상당 기간 마이너스 성장에 가까운 불황에 빠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물가 측면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가속화 시기 주요국의 오름세보다 큰 폭 상회했던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후의 디스인플레이션도 주요국에 비해 느린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간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던 에너지 가격 안정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가 전월 대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근원물가도 공산품 및 서비스 가격의 가파른 상승으로 오히려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 영국 정부는 당장 경제 성장보다는 물가안정에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지난 6월 공식 석상에서 “물가안정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밝히며 “올 연말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 5.4% 달성이 목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최근에는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임금 부문의 물가 지속성 강화를 언급과 함께 공공부문 등의 임금인상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주요국 및 영국의 GDP 성장률 및 변화/출처=한국은행

생산성 둔화 및 노동공급 제약등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 미쳐

브렉시트의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미친 곳은 교역 부문이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수출과 수입을 다루는 영국의 대외 교역량은 브렉시트 이전보다 약 3% 감소했고, 무역의존도 역시 같은 기간 2.6%p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상품 교역에선 2021년 EU와 영국 간 통상 등 미래관계를 규정한 무역협력협정(TCA) 발효 직후 대EU 교역이 급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TCA 초기 수입 부진이 수출에 비해 뚜렷이 나타났으며 최근에는 수출 비중이 여전히 탈퇴 이전 수준을 상당폭 하회하고 있다.

한편 서비스 교역은 전반적으로 엔데믹 이후 여행·운송 부문의 가파른 회복이 이어지고 있으나 대EU 비중만큼은 예년에 비해 상당폭 하락했다. 일례로 금융 서비스의 경우 영국 금융기관에 대한 패스포팅이 종료되고 양국 금융규제와 관련한 양해각서 체결이 지연되면서 금융서비스의 대EU 수출 비중이 2019년 37%에서 지난해 29%로 상당폭 축소됐다.

한국은행 자료 외에도 글로벌 주요 연구기관의 주요 연구들도 지난 3년여 기간 대EU 교역을 중심으로 영국의 교역이 상당폭 감소한 것으로 평가했다. 유로 지역 싱크탱크 CER(Centre for European Reform)가 최근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브렉시트에 따른 영국 교역 충격은 지난해 2분기 기준 -7% 정도로 나타났으며, 영국 예산책임청(OBR)도 15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역충격이 -15%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G7 및 영국의 교역량 및 무역의존도/출처=한국은행

예상된 충격, 다만 최근 추세론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미칠 여지도

브렉시트 결정 당시 영국 정부와 연구기관들은 당장의 경제 충격이 곧 회복될 거로 전망했다. 예컨대 영국 경제연구소 IEA는 보고서를 통해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경우 무역 및 투자 부문의 대규모 이탈로 300만~400만 개의 일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본질적으로 역동적인 영국 노동시장이 EU와의 새로운 관계에 맞춰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유럽 금융시장에서도 단기적으론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 내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불확실성이 확대되겠지만, 장기적으론 노동시장이 재편됨에 따라 영국 경제가 다시금 회복하는 시나리오를 점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브렉시트의 부정적 경제 충격이 앞으로도 누적될 경우 영국 경제 성장 잠재력이 크게 약화될 거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영란은행은 2024~25년 영국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0.7% 정도로 추정했다. 이는 팬데믹 이전(2010~19년 연평균 1.7%) 수준을 1%p가량 하회하는 수준으로 당초 영국 정부가 예상했던 전망을 하회한다.

한은 관계자는 “이러한 전망에는 팬데믹에 따른 비경제활동인구 증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투자 위축 등도 반영된 결과지만, 내년까지 팬데믹 및 에너지 가격 충격의 영향이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영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브렉시트의 영향이 지배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은 AI, 친환경 등의 첨단 산업에서도 브렉시트 이후 관련 R&D 환경이 악화되는 점도 향후 경제 전망이 어두운 배경이다. 특히 그간 EU 단위로 진행되던 첨단 분야 연구에서 영국이 배제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은 지난 2020년 유로지역에서 955억 유로(약 136조8,534억원) 규모의 공동재원을 바탕으로 각국 연구진들이 기후변화 대처, 첨단 산업기술 개발, 기초과학 연구 등을 진행하는 ‘Horizon Europe 프로그램’에서 재원분담 등에 대한 협의가 지연되자 프로그램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이 밖에도 영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소들이 늘고 있다. 특히 EU 탈퇴의 주요 배경이었던 장기 이민자 유입이 오히려 급증하거나 EU와의 규제 격차로 인한 문제 등이 부각되고 있다. 결국 최근에는 브렉시트 반대 진영에선 재가입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크게 반감됐다. 일각에선 기존 분담금 활용으로 인한 성장 기반 강화 등 브렉시트의 이점이 후생손실을 만회할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 지리적 한계나 영국의 이민 억제정책 기조 등을 고려할 때 충분한 성과가 나타나기 어려울 거란 반박이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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