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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특히 자본, 기술, 노동력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민간 및 기업의 설비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경기 침체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질적인 이유는 반도체 산업 이후 우리나라가 성장동력을 재점화할 신산업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저출생·고령화·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나라
한국경제학회가 발표한 보고서인 '한국경제 성장의 현황과 도전'에 따르면 한국의 2010년 총요소생산성의 성장 기여도는 -4%로, 총요소생산성이 되레 경제 성장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동기간 총요소생산성이 경제 성장률에 기여한 비중이 45%에 달한 점을 감안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은 노동과 자본, 그리고 기술력을 반영한 생산효율성 수치다. 쉽게 말해 자본과 노동, 기술의 한 단위 투입 당 산출량을 의미한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돈, 노동력, 기술력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경제 성장 동력이 꺼지고 있단 얘기다.
같은 맥락으로 전문가들은 한국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생·고령화 현상 또한 지금의 저성장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국내 노동 성장률이 오는 2030년엔 -0.39%를 기록하는 등 일손 부족 위기가 가시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해당 보고서에서 경제학회가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30년 GDP 성장률은 1.68%를 기록한 뒤 2040년엔 0%대(0.97%)로 추락할 예정이다. 이후 2050년, 2060년 예상 GDP는 각각 0.89%, 0.44%로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만성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세가 불러온 우리나라 경제 저성장
국가 경제의 성적은 단순히 위의 GDP 성장률만 보고 평가하기 어렵다. 각국이 처한 경제적 위치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일례로 2022년 GDP 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나라는 남미 서안에 위치한 가이아나인데, 해당 나라의 성장률은 62.3%로 같은 해 미국 GDP 성장률(2.1%)의 30배에 달한다. 단순히 GDP 성장률만 비교한다면 가이아나의 경제 상황이 미국보다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 직관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는 일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성장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 전문가들은 특정 국가의 경제 성적을 평가하기 위해 GDP 성장률 그 자체를 바라보기보다는, 잠재성장률이라는 지표를 활용한다. 잠재성장률은 자본, 노동, 기술력, 경영혁신 등의 총생산요소를 활용해 물가 상승을 일으키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경제 성장률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이는 경제의 기본 실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GDP 성장률 못지않게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수치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실력 자체도 퇴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둔화세는 20세기 후반부터 지금 시점까지 이어져 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만성적인 '고질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장기 성장 전망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 중반에 약 9%까지 상승했다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2000년대 초반 5%로 하락하면서 본격적인 둔화 국면을 맞았다. 2010년대 들어선 3.09%에서 2020년대 1.89%까지 줄어든 뒤 2030년대는 0.69%까지 추락할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2040년대엔 0.05%, 2050년대에는 -0.03%로 본격적인 마이너스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본 및 설비 투자 자체도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가 깊어지니 지갑 사정이 나빠진 기업들도 설비 투자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설비 투자를 하지 않으면 생산량이 줄게 돼 다시 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실제 인프라 시설 등 자본 투자에 해당하는 건설투자는 2018년 이후 감소 추세로 2022년에는 -2.8%를 기록했다. 정부의 SOC 분야에 대한 재정투자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09년(2.1%) 한시적으로 증액된 이후 2022년 현재까지 1%대에 머무르고 있다. SOC란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의 약자로, 국가 산업의 기반에 해당하는 교량, 항만, 도로, 철도 등 모든 건축과 토목 자본을 포함한다.
건설투자 축소는 곧 일자리 축소로 이어져 경제 침체에 일조하게 된다. 건설업 취업자의 약 절반 정도가 일용직 근로자로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인 서민과 빈곤층이다. 건설투자가 축소되면 자재, 하도급, 장비업자 등 관련 건설산업의 연관산업도 침체해 서민들의 일자리 또한 줄어들게 된다는 설명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지방권의 경우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위축돼 정부의 추가적 지원 없이는 자립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특히 지난 2022년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호남권의 잠재성장력 지수는 0.95로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산업 육성에도 이렇다 할 구체적인 성과가 없고, 주력산업 자체도 성장정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살아날 길은?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반도체 산업 성장 이후 새로운 산업으로의 전환이 더 이상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진단한다. 그간 한국 경제는 아날로그 생산시대의 여러 부문에서 경공업, 중공업,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으로 이어지는 혁신을 통해 비교 우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경제의 부가가치 원천이 디지털 중심으로 급속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해 잠재성장률이 추락했고, 이는 민간 소비와 투자의 추락으로 이어지고, 또다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저출생·고령화, 경직된 노사관계 등의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덩달아 겹치면서 쉽사리 경제 성장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경제의 현주소라는 분석이다.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반도체 외에 혁신을 주도할 산업을 민간이 주도해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또한 이러한 혁신 성장을 위해선 인재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게끔 돕는 환경을 마련하는 정책 수립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일관적인 경제 정책을 펼쳐 경제를 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 침체가 강하게 예견되자 대규모 양적 완화로 경제 부양에 나섰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후임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그대로 계승해 경제 부양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권이 바뀌면서 경제정책의 근간도 흔들렸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과 같은 정책의 연속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실패해 왔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정책의 과감성과 뚝심이 우리나라 경제 정책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