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중국 주식 및 채권 분야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포트폴리오에서 중국 시장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으며, 글로벌 금융 생태계로부터의 분리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중국 중앙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 주식과 채권에 대한 외국인 보유액은 2021년 12월을 정점으로 올해 6월 말까지 약 1조3,700억 위안(약 250조원)으로 17%나 급감했으며, 지난 8월에만 120억 달러(약 15조9,000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중국 시장에서 빠져나갔다.
특히 중국, 대만, 마카오, 홍콩으로 대표되는 중화권 VC 생태계는 올해 상반기 외국인 투자자의 거래 참여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피치북의 '2023년 상반기 중화권 벤처 보고서'에 따르면 총 264건(약 5조8,028억원 규모)의 거래에 비중국 투자자가 참여했다. 이는 중화권 전체 거래 건수의 10%에도 못미쳤다. 이를 제외한 약 92.4%의 라운드, 즉 사실상 대부분의 투자는 중화권 내 자금으로 이뤄졌다. 중화권 VC 생태계가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BoA 펀드매니저 설문조사, “중국 주식 공매도 인기”
이처럼 급격한 자금 이탈은 장기화된 코로나19 제한 조치,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헝다부동산 등 중국 부동산 기업의 연속적인 위기 및 서방과의 지속적인 긴장으로 촉발된 중국 경제의 침체와도 맞물려 있다는 것이 글로벌 금융업계의 중론이다. 악재가 겹치며 소위 '차이나 런'이 더욱 번져가는 모양새다.
실제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258명의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21%가 '중국 주식 공매도가 가장 인기 있는 투자 전략'이라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3분의 1은 중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시스템적 크레디트 이벤트(systemic credit event)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해당 응답 비율이 직전 조사보다 두 배 이상 확대됐다는 점을 비춰볼 때 시장이 중국 부동산 산업의 위험성을 크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투자은행 BNP파리바의 지카이 천 아시아·신흥국 주식부문 대표도 “중국 부동산 시장과 내수 위축 등에 대한 우려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국 투자 비중을 크게 줄이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수건을 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부문에 대한 불안감과 소비자 지출 감소로 인해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고 실망스러운 현실로 인해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국에 대한 투자 익스포저를 재평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신흥국 디커플링 현상도 나타나
과거에는 중국의 금융 취약성이 글로벌 시장, 특히 신흥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올해 약 7% 하락한 MSCI 중국 지수는 3년 연속 손실을 기록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긴 연패 기록이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이 인도와 라틴아메리카 일부 지역, 즉 수익성이 더 좋은 시장으로 자본을 이동함에 따라 MSCI 신흥시장 지수는 3% 상승했다.
이러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은 미중 관계가 악화하는 가운데 공급망 전반에서 중국이 자급자족을 달성하려는 시도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곧 신흥국 포트폴리오에서 중국을 제외하는 전략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를 방증하듯 올해 이미 중국을 우회하는 주식형 펀드의 출시가 연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우라브 판탄카르 메르세데스CERA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국과 관련된 몇 가지 리스크로 LGFV, 주택 재고 오버행, 인구 통계, 대외의존도, 규제 변동성, 지정학적 고립을 꼽았다. 이어 신흥 시장 투자 기회는 다양하게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채권, FX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채권 분야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투자자들은 중국 국채에서 약 260억 달러(약 35조원)를 회수하는 동시에 나머지 신흥 아시아 국가들의 채권에는 총 620억 달러(약 84조원)를 투입했다. JP모건체이스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2019년 이후 중국이 국채 지수에 편입된 이후 유입된 2,500억~3,000억 달러(약 337조~405조원)의 자금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빠른 속도로 중국화가 진행되고 있는 홍콩 증시 상황도 대동소이하다. 2020년 말 이후 외국인 자금 유입이 3분의 1 이상 감소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 시장을 떠나자 위안화가 매도 압력을 받기도 했다. 이에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는 1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에 씨티그룹과 JP모건 등 월가 대형은행들은 온갖 악재를 두고 중국 정부가 올해 성장률 목표치 5%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같은 외국인 자금의 이탈 행렬은 중국 정부의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속되는 외화 유출에 지난 20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유동성을 합리적으로 충분히 유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주식 거래 거래 비용 절감, 대주주 지분 매각 제한 등 증시 활성화 대책을 잇따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전 롱텅 자산관리의 펀드 매니저 우셴펑은 “중국 정부가 시장 안정 기금을 통해 새로운 매입에 나서는 등 더 적극적 대책이 나와야 중국 증시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