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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비닐봉지보다 그것을 버리는 방식 요금제는 단속보다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 잘 설계된 가격 신호가 책임 있는 소비를 유도
비닐봉지는 해수욕객의 가방 안에 있을 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순간은 그것이 아무렇게나 버려졌을 때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는 이유는, 그에 따른 비용이 사용자에게 전혀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안 오염의 본질은 플라스틱이라는 물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태도에 있다. 비닐봉지를 버려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면, 쓰레기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결의 열쇠는, 단속이나 금지가 아니라 비용을 행동에 연결하는 방식에 있다. 정부가 감시와 정화에 드는 예산을 감당하는 대신, 그 부담을 비닐봉지에 직접 부과하는 것이다.

문제는 버리는 순간
비닐봉지는 해변에 있다고 해서 곧바로 오염원이 되지는 않는다. 손에 들고 있든, 가방에 담겨 있든 문제는 되지 않는다. 실제 위협은 그 얇은 봉투가 바람에 날리거나 파도에 휩쓸려 떠돌게 될 때 시작된다. 2024년 오션 컨서번시(Ocean Conservancy)의 국제 해안 정화 캠페인 자료에 따르면, 전체 수거 품목 중 비닐봉지는 3%에 불과했지만, 해양 생물을 위협하는 항목 중 상위 다섯 번째 안에 포함됐다. 문제는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데 있다. 최근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메타분석은 전 세계 1,600건의 해안 규제를 검토한 결과, 요금제나 금지 조치를 시행한 지역에선 해변 쓰레기 중 봉투 비중이 25~47%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핵심은 봉투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처분 방식이다.

주: 연도(X축), 해양 쓰레기 중 비닐봉지 비율(Y축)/워싱턴DC(요금제, 진한 파랑), 캘리포니아(전면 금지, 중간 파랑), 아일랜드(요금제, 연한 파랑)
단속의 한계와 비용 구조
비닐봉지를 해변에 아예 들고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금지를 현실화하려면 단속이 전제돼야 한다. 출입 지점마다 감시 인력을 배치하고, 위반자에게는 경고나 처벌을 가해야 한다. 이 과정은 상당한 행정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문제는 단속을 해도 지출을 줄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조사에 따르면, 지방정부는 쓰레기 1파운드당 평균 3.86달러(약 5,300원)를 처리비로 쓰고 있다. 이 가운데 비닐봉지는 전체 쓰레기 무게의 0.6%에 불과하지만, 연간 수거 비용은 33만8천달러(약 4억6천만원)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는 3억5천만 개에 달하는 비닐봉지가 도로와 수계 주변에 방치돼 있으며, 단속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리 비용은 계속 발생한다 게다가 단속은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인력 확보, 경고 표지판 설치, 행정 절차 운영 등에는 고정적인 예산이 들어가고, 이 자원은 결국 교육, 복지, 도시 인프라 같은 핵심 서비스에서 빠져나간다. 반면, 같은 비용을 계산대에서 가격 신호로 전환하면 감시 없이도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쓰레기를 유발하는 물건이 아니라, 그에 따른 사람의 선택에 비용을 묻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다.
가격 신호의 효과
아일랜드는 2002년 15센트(약 220원), 이후 2007년 22센트(약 320원)로 오른 비닐봉지 요금제를 도입해 6개월 만에 사용량을 90% 줄였다. 환경청 조사에 따르면 해변 쓰레기 중 비닐봉지 개수는 500미터당 평균 17.7개에서 5.5개로 줄었다. 잉글랜드는 2014년 대형 유통업체의 비닐봉지 사용량이 76억4천만 개였지만, 10펜스(약 170원) 요금제 시행 후 2024년에는 7,900만 개로 98% 급감했다. 우루과이는 생분해성 봉투 의무화와 함께 4페소(약 140원) 요금을 도입해, 수요를 불과 몇 주 만에 80% 줄였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단속 인력이 거의 필요 없었다는 점이다. 소비자 스스로 가격 신호에 반응해 행동을 바꿨다. 반면 케이프타운처럼 전면 금지를 택한 도시는 소송과 암시장으로 인해 실질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주: 국가별(X축), 지지율(Y축)/미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일본(좌측부터), 비닐봉지 유료화 지지율(진한 파랑), 비닐봉지 사용 금지 지지율(연한 파랑)
문화와 제도의 균형
비닐봉지 요금제가 소수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다수의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누군가는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일본은 질서 유지가 제도보다 문화로 작동하는 사례다. 공공장소의 청결을 중시하는 생활 규범이 깊게 자리 잡아, 별도의 단속 없이도 자발적인 정돈과 분리배출이 이뤄진다. 2018년 월드컵 당시 일본 축구 팬들이 경기 후 객석을 자발적으로 정리한 장면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해변에서도 비슷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쓰레기를 45종으로 분류해 80% 이상을 소각 없이 처리하는 가미카쓰 마을의 사례처럼, 문제는 비닐봉지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자율적 규범이 작동하는 사회에선 가격을 붙이지 않아도 무분별한 배출이 억제된다. 하지만 그런 문화적 기반이 약한 곳에선 요금이 사회적 규범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비닐봉지에 명확한 가격을 매기는 것만으로도, 행동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적정 요금의 기준
비닐봉지에 부과할 요금은 지금까지 사회가 대신 부담해 온 비용을 사용자에게 미리 전가하는 수준으로 설정돼야 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자료에 따르면, 비닐봉지 하나를 수거·처리하는 데 드는 공공비용은 약 4.2센트(약 60원)다. 여기에 해변 쓰레기로 인한 관광 수입 손실과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한 생태계 피해까지 반영하면, 적정 요금은 최소 10센트(약 140원)로 추산된다. 감시와 단속에 드는 비용을 유발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이다. 그 행동을 바꾸는 데 가격 신호는 유효한 수단이다.
규제보다 유연한 선택
비닐봉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용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규제를 통해 강제하면 자발적 유도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적 측면에서 이런 방식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영국 환경청 분석에 따르면, 폴리프로필렌 재사용 봉투는 최소 14번, 면 에코백은 131번 이상 써야 일회용 비닐봉지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같아진다. 금지로 인해 소비자들이 대체재를 일회용처럼 사용할 경우, 오히려 탄소 배출이 증가할 수 있다. 요금제는 이런 부작용을 줄이는 방식이다. 봉투가 정말 필요한 사람만 비용을 부담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스스로 챙겨오게 만든다. 강제보다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이 환경과 소비 모두에 효과적이다.
맥락을 반영한 설계
전국 단일 요금제로는 지역별 여건을 반영하기 어렵다. 여름철 관광객이 몰리는 해안 5킬로미터 이내에선 요금을 높이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다. 판매세처럼, 소매업체 시스템에서 지역별로 요금을 조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보증금-환급 제도도 유용하다. 덴마크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병 반환 제도를 통해 90% 이상의 회수율을 기록하고 있다. 비닐봉지도 사용 후 반납하면 2센트(약 30원)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이는 저소득층 부담을 줄이면서도 사용 억제 효과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쓰레기를 줄이는 선택
비닐봉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아무 대가 없이 버릴 수 있다는 구조가 문제다. 자율적 질서가 작동하는 사회에선 규범이 행동을 조절하지만, 그렇지 않은 환경에선 경제적 신호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잘 설계된 요금제는 단속 없이도 행동을 바꾸고, 공공예산을 보다 우선순위 높은 분야로 돌릴 수 있게 한다. 금지보다 효과적인 방식은, 책임 있는 선택을 유도하는 가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