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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WTO와 결별하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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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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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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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실상 ‘WTO 탈퇴 선언’
‘예산 부족’에 ‘항소 기구’도 마비
“힘의 논리가 규칙 대신할 것”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기여금인 2,270만 스위스 프랑(약 388억원)을 올해 초에 미납하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수롭지 않은 행동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글로벌 무역의 양상이 달라지고,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그램이 멈춰 서고, 경영대학원의 교과 과정까지 바뀌고 있다.

사진=ChatGPT

미국, WTO 기여분 미납

미국은 수십 년 동안 WTO의 최대 기여자였다. 그런 만큼 미국의 미납은 2억 500만 스위스 프랑(약 3,500억원) 정도인 WTO 예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핵심 예산의 11%가 빠진 셈이니 직원 고용과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중단한 가운데 다른 회원국에 절망적인 호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 체납으로 인한 WTO 예산 영향(2023~2026년, 단위: 백만 스위스 프랑)
주: 미국 기여액(U.S. Contribution), 부족 예산(Budget Shortfall), WTO 예산(WTO Budget)

연체가 지속되면 누적 예산 적자가 7,500만 스위스 프랑(약 1,280억원)에 달해 개발도상국에 제공되는 기술 훈련 프로그램이 전면 중단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에도 미국 국회는 조용한 편이다. 미국의 WTO 탈퇴를 위해 올해 도입된 하원 결의안은 142개 단어가 전부고 청문회도 형식에 그쳤다. 한때 다자간 무역을 소리높여 옹호했던 미국 재계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미국 관세 불확실성으로 글로벌 GDP 499조 원 ‘피해’

관세 중심의 산업 정책에 사로잡힌 공화당 정치인들은 WTO를 구시대적 유산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고, 말로만 다자주의를 외쳐 온 민주당도 실질적인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 규칙 기반 무역 체제에 대한 초당적 지지는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글로벌 무역의 현실은 이미 심각하다. WTO에 따르면 올해 미국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전 세계 무역량의 1.5%가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금액으로 3,660억 달러(약 499조원)에 해당하며 WTO 연간 예산의 15배다.

미국 관세로 인한 글로벌 무역 피해(단위: 조 달러) 예상
주: 무역 피해 규모(청색), 세계 무역 규모(짙은 청색)

미국의 이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무역 분쟁에서 대법원에 해당하는 WTO 항소 기구(Appellate Body)의 기능 마비일 것이다. 2019년부터 미국의 거듭된 거부권 행사로 재판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영국을 포함한 56개국은 ‘다자간 임시 항소 중재 협정’(Multi-Party Interim Appeal Arbitration Arrangement, MPIA)으로 불리는 임시 재판소를 만들었다. 임시 재판소가 회원국 간 무역 소송을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소송이 미국과 관련되면 재판 결과를 강제 집행이 아닌 호의와 신뢰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국제기구의 파편화는 실제적인 거시경제적 피해로 연결되고 있다. IMF 추산에 따르면 별도의 무역 연합이 결성돼 경쟁 구도를 이루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글로벌 GDP가 7%까지 축소될 수 있다고 한다. 해마다 일본 경제 한 개가 지워지는 셈이다.

규칙 사라진 자리, ‘힘의 논리’가 채울 것

글로벌 무역은 올해 0.2%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숫자가 작아 보이지만 예측 가능한 관세 수입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들은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된다. 기업들은 WTO의 기능이 사라진 상황을 사업 모델에 적용하고 있다. 운송 비용이 급등하고 있으며, 무역 계약에도 상황을 고려한 위험 회피 조항이 추가되고 있다.

무역 관련 교육 내용도 바뀌고 있다. 최혜국 대우(Most-Favored Nation treatment)와 같은 WTO의 기본 원칙 대신, 다자간 체제가 파괴된 상황에서의 위기 대응이 수업의 중심을 이룬다. WTO 탈퇴에 대비한 기업 정관을 작성하게 하는 미국 경영대학원도 있고, 미국의 방해를 우회하는 WTO 의결 규칙 협상을 연습하는 유럽 학교도 있다. 모두 힘의 논리가 규칙 기반의 시스템을 압도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인 셈이다.

부재 길어질수록 ‘복귀 어려워’

전문가들은 WTO의 앞날을 세 가지로 전망한다. 첫 번째는 미국의 연체와 법관 임명 방해가 지속돼 완전한 몰락으로 가는 것이다. 임시 재판소의 기능이 확대돼 WTO 항소 기구를 대체하게 된다. 두 번째는 중국, EU, 인도 등의 주요 경제권이 미국의 거부권을 피하기 위해 WTO 예산과 의결 제도를 개혁하는 시나리오다. 상당히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미국의 보복이 따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권이 바뀌며 미국이 복귀한다는 가정도 할 수 있다. 정치적 기류가 뒤바뀌고 탄소 가격제(carbon pricing) 및 디지털 규정 등 새로운 무역 이슈가 등장하며 WTO의 존재 의미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가능성은 줄어든다. 새로운 체제가 공고화하고, 계약 내용이 바뀌고, 미국 없는 분쟁 해결 절차가 자리를 잡는다면 말이다. 모든 것을 뒤집으려면 엄청난 법적, 행정적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헨릭 혼(Henrik Horn) 스톡홀름 산업경제연구소(Research Institute of Industrial Economics) 교수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Why the US and the WTO should part way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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