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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적인 초강력 대출 규제, 여당·대통령실도 사전 몰라 文정부 실패 '반면교사', 집값·소득과 무관하게 6억 제한 서민 내집 마련 봉쇄 vs. 투기 수요 억제 효과 두고 논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의 집값이 급등하자 금융당국이 강력한 대출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일괄 제한하고, 생애최초·서민 대상 정책대출까지 줄이는 이번 조치는 문재인 정부 시절 고강도 규제를 총망라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새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이 발표된 만큼 시장은 세금과 공급을 둘러싼 후속 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7일, 금융위 등 '가계부채 관리 방안' 발표
30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7일 정부가 내놓은 '가계부채 관리 방안'은 극비리에 마련된 것으로 파악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차원에서도 별도의 당정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고, 대책의 주요 내용과 발표 일정 등을 몰랐던 이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금융권 사이의 사전 조율도 없었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를 앞두고 보안 유지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대책 발표 전에 시장에 내용이 알려지면 막차 수요가 불붙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7일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는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강력한 대출 규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28일부터 시중은행이 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최대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됐다. 또 금융당국은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로 한도가 컸던 생애 최초 주담대도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경우 LTV(주택담보대출비율)을 80%에서 70%로 낮추고 동시에 6개월 이내 전입의무가 부과했다.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이른바 '갭투자'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수도권 2주택 이상 보유자가 추가 주택을 구입하거나 1주택자가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않고 추가 주택을 매수할 경우 주담대를 아예 금지한다. 사실상 LTV 0%가 적용되는 조치로 다주택자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다만, 1주택자가 6개월 안에 기존 주택을 처분할 경우에는 무주택자와 동일하게 비규제지역 LTV 70%, 규제지역 LTV 50%를 적용한다. 이와 함께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담대 대출 만기도 최대 40년에서 30년 이내로 제한하고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는 최대 1억원으로 제한했다.
서민 대출로 여겨지는 디딤돌·버팀목 대출도 최대 한도를 제한했다. 디딤돌 대출의 경우, 일반 무주택자는 2억5,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생애최초·청년은 3억원에서 2억4,000만원으로, 신혼은 4억원에서 3억2,000만원으로, 신생아는 5억원에서 4억원으로 각각 최대 한도가 줄었다. 버팀목 대출은 생애최초·청년은 2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신혼은 수도권이 3억원에서 2억5,000만원, 지방이 2억원에서 1억6,000만원으로, 신생아는 3억원에서 2억4,000만원으로 각각 최대 한도가 축소됐다.

소득 대비 부채 수준, 월 상환가능액 등 고려
'007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극비리에 추진된 이번 부동산 대책은 내용 면에서도 파격적이라는 평가을 받는다. 시장에서는 과거 문재인 정부 5년간 시행했던 모든 대출 규제를 한번에 꺼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9년 12월 정부는 15번째 부동산 대책으로 15억원 이상 고가주택에 한해 주담대를 금지했는데, 그러자 시장에서는 10억원대 초반 매물이 15억원에 키를 맞추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에 새 정부는 고가주택에 대한 주담대 금지 대신 6억원으로 대출 한도를 제한하는 조치를 꺼낸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위는 대출 한도 6억원에 대해 "소득 대비 부채 수준과 월 상환액이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한도를 정했다"며 "6억원 이상 대출받는 사람은 전체 차주의 10%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제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연봉 2억언인 차주가 20억원의 주택을 구입할 경우 대출 한도가 13억9,600만원에서 6억원으로 7억9,600만원 감소한다. 연 소득 1억원 차주가 10억원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6억9,800만원에서 6억원으로 대출한도가 줄고, 연 소득 6,000만원 차주가 10억원 주택을 살 땐 한도가 4억1,900만원이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번 대책을 두고 서민과 청년이 집을 못 사게 막고 현금 부자만 배불리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송언석 원내 대표는 "언뜻 보면 과도한 부채를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일 수 있지만, 중산·서민층에게 서울 집은 꿈꾸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박민영 대변인도 "서울 평균 집값이 13억원인데 대출 상한을 6억원으로 묶으면 최소 7억원 이상 가진 사람만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며 "이는 2030세대가 숨만 쉬고 20년 이상 저축해야 모을 수 있는 액수라 사실상 집을 사지 말라는 것과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27일 대출규제 발표 직후 브리핑에서 강유정 대변인은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금융위에서 나온 대책으로 대통령실 차원의 대책이 아니다"라며 "사전에 보고는 없었고 이에 대해 대통령실이 특별한 입장을 갖거나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만 "이번 대책이 어떤 식의 효과가 나올지에 따라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면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여지를 남겼다.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 대변인실은 공지를 통해 금융위의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부처 현안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대출 규제에 이어 세금과 공급 대책에도 관심
유례없이 강력한 대출 규제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부동산 정책이 발표된 만큼 시장은 이제 전통적인 대책으로 꼽히는 세금과 공급 관련 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세금으로 집값을 잡기 않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보유세, 양도세 등 부동산 관련 세 부담을 인위적으로 높여 집값을 억제하는 방식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게 새 정부의 기조다.
이재명 정부가 세금을 통한 부동산 규제 방식을 당장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학습효과'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보유세 증세·양도세 중과 등 세금을 통한 부동산 대책은 과거 문재인 정부 당시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활용됐지만, '똘똘한 한 채' 쏠림을 부추기고 매물 잠김을 유발해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이후 수도권 집값은 오히려 더 빠르게 상승했고, 가계 대출도 가파르게 불어났다.
공급 확대 역시 당장은 배제되는 분위기다. 부동산 공급 대책은 정책 효과가 수년 뒤에 나타나는 만큼, 단기적 시장 대응책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최근 건설경기 침체와 건설사 재무 악화도 공급 확대의 걸림돌도 작용하고 있다. 인건비, 자재비 등 원가 상승으로 분양가가 급등하고, 건설사는 미분양 리스크와 자금난에 시달리며 줄줄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신규 사업 추진이 어려워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