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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증권업계 간담회서 직설 발언 화제 "단기적 이익에만 매몰된 증권 업계 성향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다만, 금융당국 개입이 은행 자율성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국내 주요 증권사 10곳의 최고경영자(CEO)를 향해 경고와 질타를 쏟아냈다. 증권사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과 관련한 리스크 관리가 부족하다는 점과 더불어, 최근 증권사 임직원들이 무분별하게 사익 추구를 한 사례가 적발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선 이 원장의 고강도 발언이 지난해도 여러 차례 있었다며 그간 은행권 인사에 과도하게 개입했던 점으로 미뤄볼 때, 당국이 구시대적 관치금융 노선을 따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주요 증권사 사장단 앞에서 엄중 경고한 금감원장
24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증권업계 간담회’에서 증권사 리스크관리와 내부통제 강화 등을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KB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10개 증권사 CEO가 참석했다.
이 원장은 증권사의 부동산 PF 리스크가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CEO가 직접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부실 사업장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리하고, 12월 결산 시 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비해 달라”며 “일부 회사의 리스크 관리 실패가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해당 증권사와 경영진에 대해 엄중하고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부동산 PF 담당 증권사 임직원들이 무분별하게 사익 추구를 한 사례가 거론되며 금융투자 업계의 ‘체질 개선’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됐다. 이 원장은 “최근 검사 결과 다수의 금융투자 회사에서 다양한 형태의 불건전 영업행위와 사익 추구 행위가 지적되고 있다”며 “성과 만능주의가 금융투자 업계 전반에 만연함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실제 금감원은 최근 다올투자증권, 메리츠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현대차증권 등 5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부동산 PF 기획검사 과정에서 임직원의 수백억원대 사익 추구 행위와 증권사 내부통제 취약 사례 등을 적발한 바 있다.
당국은 건설사와 금융사에 대해 기존보다 강도 높은 대응이 있을 거라고도 강조했다. 이 원장은 간담회를 마치고 진행된 기자설명회에서 “새살이 돋으려면 굳은살을 벗겨내야 한다”며 “PF와 관련해선 그전에 통상적으로 얘기한 수준이 아니라 건설사나 금융사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를 감내하고 강한 강도로 대응할 것”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이 원장 취임 후 '금융회장'만 5명 교체, 관치금융 비판도
이 원장의 직설적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원장은 이번 증권사 CEO 대상 간담회 이전에도 국내 자산운용사 CEO들과의 간담회를 지난해 두 차례나 가진 바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간담회에선 해외대체투자 펀드 손실 증가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며 “불법행위 단속을 통해 부실회사를 적시에 퇴출하겠다”고 강도 높은 발언을 꺼냈다.
지난해 1월 금감원 임원 회의에서는 “금리 상승기에 대출 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금리 산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또 은행권이 이미 지난해 7월 ‘상생금융 관련 주요 추진방안’을 내놓으며 금리인하 등 상생금융 지원을 하기로 한 상황에서 지난달 재차 2조원에 달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 추가 지원책을 내놓은 것도 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데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에 일각에선 당국이 은행권 인사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원장 취임 후 금융그룹 회장이 교체된 사례는 총 다섯 번이나 있었고, 이 가운데 농협금융그룹과 우리금융의 회장이 새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이 낙점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그룹에선 내부 출신인 손병환 전 회장 임기가 연장되는 대신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농협금융 회장에 낙점됐고, 이후 우리금융에서도 내부 출신이 아닌 금융위원장 출신인 임종룡 회장이 낙점됐다.
문제는 당국의 과도한 개입이 은행의 자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단 점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의 거세진 외풍은 시중은행들의 팔과 다리 모두 묶어 오히려 주체적인 상생금융이나 새로운 사업화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또 정계 관료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금융사를 회전문으로 이용하는 악순환도 반복될 우려가 높다”며 “시중 금융사 수익을 보면 못마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래적인 관치금융의 틀이 없어야 국민의 무서움을 금융사가 자각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