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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값 합병 논란에 '밸류킬' 지적까지, 시작부터 난관 봉착한 두산밥캣-로보틱스 합병 계획
합병으로 밥캣 지분 가져가는 두산그룹, "소액주주 피해 등에 업고 지배주주 이익 극대화한 것"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 실효성에 의구심 ↑, "정부 차원의 정책 재정비 필요해"
사업구조 개편 차원에서 두산밥캣(밥캣)과 두산로보틱스(로보틱스) 간 합병을 추진 중인 두산그룹이 시장의 비판에 직면했다. 밥캣은 저평가되고 로보틱스는 고평가된 탓에 양사의 주식 교환 비율이 불합리하게 책정됐단 것이다. 이에 시장 일각에선 두산그룹의 행태가 정부 차원의 밸류업 기조와 배치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두산그룹 밥캣-로보틱스 49:51 합병 추진, 시장선 '헐값 합병' 비판
22일 밥캣의 외국인 기관투자자 션 브라운(Sean Brown) 테톤캐피탈 이사는 Two IFC 3층 더포룸에서 열린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 합병 제도의 문제점' 세미나에서 "합병 비율의 비대칭으로 밥캣 주주들의 지분이 상당히 희석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밥캣과 로보틱스의 합병은 날강도 짓"이라며 "현저하게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인해 보유하고 있던 밥캣 지분이 휴지 조각이 됐다"고 거듭 날 선 지적을 쏟아냈다.
앞서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밥캣을 로보틱스에 넘기고 내년 상반기 밥캣과 로보틱스를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로보틱스가 밥캣을 100% 자회사로 품고 밥캣은 상장폐지하는 방식이다. 사업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밸류업을 단행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두산그룹 측의 설명이지만, 시장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밥캣의 저평가 및 로보틱스의 고평가 상황을 악용해 '헐값 합병'을 진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두산그룹 측이 내놓은 밥캣과 로보틱스 간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산정돼 49:51로 결정됐다. 그러나 실제 기업가치를 산출하면 실질적인 합병 비율은 다소 달라진다. 브라운 이사가 추산한 밥캣의 적정 가치는 약 15조원이다. 밥캣의 지난 12개월 영업이익 1조4,000억원에 10배수를 적용하고 여기에 순현금을 더한 값이다. 적정 배수를 10배로 정한 건 일본 구보타, 미국 캐터필러 등 경쟁사들이 시장에서 10.5배에 거래되고 있단 점을 고려한 것이다.
로보틱스의 적정 가치는 약 7,000억원으로 평가했다. 경쟁사가 받는 매출액 배수 5배에 할증을 붙이고 순현금을 더해도 로보틱스의 적정 시총은 7,000억원을 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브라운 이사가 산출한 각 기업의 가치를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면, 밥캣과 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은 96:4가 된다.
저평가된 밥캣과 고평가된 로보틱스, 소액주주 피해 커질 듯
합병 방식 자체에도 논란이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밥캣 지분(46%)을 보유한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일시적 비상장사가 된 투자회사를 로보틱스와 합병하는 건 꼼수라는 지적이다. 결국 비상장사와 상장사 간 합병으로 진행되는 탓에 밥캣 소액주주의 이익이 침해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논란의 골자다.
로보틱스 대비 밥캣의 실적이 견조하단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지난 로보틱스는 지난 2015년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적자 행진을 이어왔으며, 올해 1분기 역시 6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반면 밥캣은 북미 소형건설기계 강자로서 2022년 1조716억원, 지난해 1조3,899억원 등 2년 연속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결과적으로 밥캣 주주들은 안정적인 실적을 내던 기업의 주주에서 적자 회사의 주주로 신분이 강제 변경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서도 알짜 자회사 하나를 잃게 됐다. 소액주주들의 주식 가치가 그만큼 침해됐단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거버넌스포럼은 "(이번 합병으로) 밥캣 주주들은 로봇 테마주 주주가 되거나 현금 청산을 해야 하는 양자 선택을 강요받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사실상 소액주주의 피해를 등에 업고 두산그룹 지배주주만 이익을 얻겠단 것"이라는 힐난이 나오기도 한다. 이번 개편으로 실질적인 이익을 얻는 건 손쉽게 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얻어갈 수 있는 두산그룹 지배주주들 아니냐는 시선에서다. 한국거버넌스포럼도 두산그룹이 로보틱스의 고평가를 이용해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했다고 보고 있다.
포럼에 따르면 밥캣이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가 된 직후 두산그룹의 로보틱스 지분은 42%가 된다. 두산그룹이 밥캣에 대해서도 42%가량 간접 지배하는 셈이다. 다만 이는 로보틱스 시총을 5조원으로 계산한 경우다. 지난해 로보틱스 상장 당시 공모가 1조6,000억원을 기준으로 재계산하면, 주식 교환 후 두산그룹의 지분은 18.7%에 그친다. 로보틱스의 고평가와 밥캣의 저평가가 맞물려 두산그룹이 이익을 챙겨 갔다는 의미다.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 정부 '밸류업' 기조에 찬물 끼얹나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이 정부가 역점 과제로 적극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두산그룹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인 소액주주 보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주가순자산비율이 1 미만인 저평가(디스카운트)된 주식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박스권'에 갇힌 한국 증시를 정상화하기 위한 목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소액주주 보호 정책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지난 2022년 물적분할한 자회사의 상장(쪼개기 상장)으로 인한 소액주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공시 및 상장 심사를 강화하는가 하면, 주식매수청구권 도입하는 내용의 대책도 발표했다. 지난해엔 배당받을 주주를 먼저 정한 후 배당액을 확정하는 '깜깜이' 배당 절차를 개선하기도 했다. 올해 발표한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에도 배당 상향,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강화안 등이 중심적으로 담겨 있었다.
그러나 밥캣-로보틱스 합병 절차로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효성에 의구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저평가 상태에서 공개매수 후 상장폐지하는 방식으로 저PBR(주당순자산가치) 종목이 비자발적 퇴출당하는, 소위 '밸류킬' 사태가 직접 가시화한 셈이기 때문이다. 밸류킬이 시장에 만연해질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긴커녕 오히려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차원의 정책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시장을 중심으로 쏟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