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에 1.2조 물린 메리츠 “MBK 생색내기 사과” 직격, 책임 전가에 누적된 불만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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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피용·생색내기” 원색적 표현도
누적된 불만과 책임 전가 논란
실질 손실 구조 채권단에 집중

홈플러스 회생 사태를 둘러싸고 메리츠금융그룹과 MBK파트너스 간 갈등이 정면 충돌로 번지는 모습이다. 메리츠는 1조2,000억원을 빌려준 채권단으로서 이번 사안은 “사모펀드의 폐해”라 비판하며 MBK의 책임 회피를 문제 삼았다. MBK는 사재 출연과 지급보증 등 일부 지원을 내세우며 사태를 수습 중이지만, 손실 구조에서 담보 대출 비중이 큰 만큼 채권단과 투자자들의 피해를 보전하기엔 역부족이란 평이 지배적이다.
누적된 갈등 표면화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는 최근 ‘MBK & 홈플러스 회생 관련 주요 쟁점’이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해당 자료에서 메리츠는 MBK의 홈플러스 회생 관련 주요 쟁점을 다섯 가지로 나눠 의견을 개진하며 ‘생색내기’, ‘남의 뼈만 깎아내는 MBK’, ‘사모펀드의 폐해’ 등 다소 원색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업계에선 메리츠가 홈플러스에 대여해준 자금이 1조2,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여론전을 위해 이번 문서를 작성했을 것이란 시각이 주를 이룬다.
앞서 지난달 24일 MBK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같은 달 19일 김병주 MBK 회장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지 닷새 만의 일이다. MBK는 사과문을 통해 "10년 간의 투자 과정에서 저희의 부족한 판단과 경영 관리로 인해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이라는 중대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며 "장래 운영 수입을 재원으로 하여 향후 최대 2,000억원을 홈플러스에 무상으로 추가 증여하겠다"고 밝혔다.
MBK 측은 증여 시점과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으나 홈플러스에 2,000억원을 무상지원한다는 계획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인수자의 인수 출자금을 줄이고, 매각을 좀 더 용이하게 하겠단 의도를 드러냈다. 운용수익이 불규칙한 PEF 운용사의 특성상 MBK의 연간 수익을 추정하긴 어렵지만, MBK의 펀드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실제 자금이 집행된다면 향후 수년 내에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메리츠는 MBK의 자구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MBK가 최초로 내놓은 3,000억원 지원 계획은 김병주 회장의 개인 증여(약 400억원)와 DIP(Debtor In Possession) 차입에 대한 MBK 임원의 연대보증(약 780억원)이 전부이며, 이중엔 과거 홈플러스가 증권사로부터 대출을 받을 때 MBK가 연대보증을 선 2,000억원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2조5,000억원에 대한 무상소각 계획에 대해선 회생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무상소각은 일반적인 상황이고, 홈플러스 청산 여부와 무관하게 MBK가 가진 지분은 사실상 ‘휴지조각’에 불과하단 점을 강조했다.
최근 발표된 2,000억원 무상 증여 계획과 관련해선 구체적인 지원 주체와 시기별 금액, 방식, 조건 등에 대해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향후’, ‘최대’ 등의 표현으로 미뤄볼 때 최소한의 증여만 하고 싶단 속내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고 날 선 평가를 내놓기까지 했다. 문서 말미에서도 메리츠는 “MBK의 지난 20년간 경영 실패의 결과를 죄 없는 다수의 이해관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갔다.

홈플러스 경영 부담 채권단에 떠넘겼단 인식
이처럼 메리츠가 MBK를 강하게 비판하는 배경에는 누적된 불만이 자리한다. 홈플러스 회생 과정에서 MBK가 손실 부담을 채권단에 전가한 채 발을 빼려 한다는 인식에서다. 실제로 홈플러스가 회생 계획을 알린 지난 3월 기준 홈플러스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는 총 1조4,462억원으로 추정됐는데, 이 가운데 약 1조2,000억 원이 메리츠금융그룹 몫이다.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이 참여한 선순위 대출은 신탁계약 수익증권을 담보로 했으며, 리파이낸싱 당시 연이율은 약 8%였다. 이율이 다소 높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메리츠가 대규모 자금을 안고 홈플러스의 회생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다.
갈등의 뿌리는 MBK의 인수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7조2,000억 원에 인수하며 블라인드 펀드로 2조2,000억 원을 조달했고, 4조3,000억 원은 금융기관 차입, 나머지 7,000억 원은 국민연금 등에서 끌어왔다. 홈플러스는 MBK 운영 체제에 편입된 직후인 2016년 3,231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이후 막대한 차입 부담으로 실적이 악화돼 2019년 적자 전환했다. 심지어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누적 손실이 1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는 채권단이 “애초부터 무리한 차입 구조가 사태의 씨앗이었는데, 회생 단계에서 그 부담을 자신들에게 전가했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배경이 됐다.
홈플러스가 발행한 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가 금융채권으로 분류된 점도 논란의 불씨가 됐다. ABSTB는 홈플러스가 카드사 대금을 기초로 SPC를 통해 발행했는데, 회생절차에서 금융채권으로 처리되면서 개인·기관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을 볼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회생 직전까지 자금 조달을 이어가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회생을 신청한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으며 MBK가 회생 시점과 리스크를 인지하고도 책임을 회피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사태는 단순한 투자 실패를 넘어 이해관계 충돌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MBK는 대국민 사과문과 지원책을 제시하며 방어에 나섰지만, 채권단과 투자자들의 불만을 해소하진 못했고 사태에 연루된 증권사들도 ABSTB 처리와 관련해 신뢰도 위기를 맞았다. 메리츠는 이 같은 홈플러스의 위기와 경영부담은 모두 자신들이 떠안게 됐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도 “사모펀드가 주주와 동일한 이해관계를 지니는 만큼 MBK 역시 경영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번 사태는 무리한 인수 구조와 실패한 배팅의 결과”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MBK 직접 감당 손실 규모 제한적
실제로 MBK가 홈플러스 회생 국면에서 직접 감당한 손실은 제한적이다. 김병주 MBK 회장이 500억원 규모 사재를 투입하고 600억원 규모 지급보증을 제공하긴 했지만, 홈플러스의 월 상거래 정산자금만 최소 5,000억원, 급여·임대료 등을 합치면 7,000억 원 이상이 필요한 현실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모펀드 운용 보수와 성과 보수로 이미 1조1,325억원 이상을 거둬들인 MBK 입장에서 실질적 재정적 부담은 미미했고, 피해는 고스란히 채권단과 납품업체, 투자자들의 몫이 됐다.
검찰과 금융당국 수사에서도 같은 맥락이 지적됐다. 홈플러스가 회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행된 ABSTB 규모는 약 6,000억원에 달했고, 이 가운데 820억원은 신용등급 강등 사실을 통보받기 불과 사흘 전에 조달됐다. 당시 금융당국은 MBK와 홈플러스가 이 같은 위기를 숨긴 채 투자자에게 채권을 판매한 것은 “사기적 부정거래”라고 정의하며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하는 사모펀드의 전형적 행태”라고 꼬집었다.
다만 일각에선 메리츠 역시 고금리 대출을 통해 MBK를 압박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2023년 메리츠는 연 8%대의 고정금리 조건으로 1조2,000억 원을 리파이낸싱했는데, 1년 만에 약 1,300억 원의 이자와 수수료를 수취했다. 메리츠는 당시 다른 금융사가 참여하지 않은 리스크를 고려한 조치였다는 입장이지만, 홈플러스의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게 비판론자들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