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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집권 주, ‘사회적 책임 투자’ 안건 주총 통과율 저조
기관투자자들, 정치권 보복 의식해 ‘사회적 책임 안건’ 지지 여부 조율
해당 주 ‘정치적 성향’ 따라 의사결정해야 하는 기업 현실 보여줘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미국 공화당이 집권하는 주에 본사를 둔 기관투자자들은 피투자회사 주주총회에서 ESG(환경·사회·지배 구조)를 포함한 ‘사회적 책임 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이하 SRI) 안건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지사가 어느 당에 속하느냐는 SRI 안건의 통과 여부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기관투자자들이 SRI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이는 정치적 양극화가 기업 지배구조와 의사결정에 점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정치적 성향까지 살피며 의사결정에 신중해야 하는 기업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사례다.
공화당 주 기관투자자들, ‘사회적 책임 투자’ 안건에 찬성표 던질 확률 낮아
지난 3월 27일(현지시간) 미시시피주 주무장관(Secretary of State of Mississippi)은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의 ESG 투자와 연관된 증권 사기 혐의를 제기하며 회사에 대한 법적 조치에 들어갔다. 블랙록이 주민들에게 정치적 의제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기와 기만을 동원했다고 주장하는 주정부의 조치는 보수 성향 주정부와 ESG 원칙을 옹호하는 자산운용사 간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2022~23년 플로리다, 텍사스, 웨스트버지니아 주정부도 ESG 관행이 원유와 가스 등 핵심 산업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블랙록과 다른 회사들이 관리하던 주정부 기금을 회수한 바 있다.
이 같은 사례는 ESG를 넘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민주당 지도자들이 기업들에 공정, 인권, 환경적 지속 가능성 등을 표방한 이슈들에 동참하라고 밀어붙이는 반면, 공화당은 그러한 움직임이 이미 상식적인 기업의 이윤 추구를 넘는 정치적 행위라고 비난한다. 양당의 양보 없는 대치 속에서 투자 기업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투자자들은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며 고객의 투자금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토드 곰리(Todd Gormley)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교수, 매니시 자(Manish Jha) 조지아 주립대학교(Georgia State University) 조교수, 멍왕(Meng Wang) 사우스 플로리다대학교(University of South Florida) 조교수로 구성된 연구진은 기관투자자들의 SRI 의제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정치적인 영향력이 개입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명확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바로 공화당이 집권한 주에 본사를 둔 기관투자자들은 SRI 안건에 찬성표를 던질 확률이 낮다는 것인데 이러한 경향은 ESG와 CSR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가열화된 최근에 더욱 두드러졌고 피투자회사가 정치권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대기업일수록 더했다.
주지사 및 주 정부 보복 의식한 행동, 트럼프 정권 거치며 극대화
기관투자자들이 주 정부의 정치 성향에 따라 의사결정을 조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 정부가 정책과 세제 혜택, 각종 계약 등을 통해 관할권 내 기업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유력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행동이 회사의 불이익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고, SRI 안건 역시 잘못 지지했다가 정치적 후폭풍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논란에 휘말려 언론에 부정적으로 노출되는 것과 관리하던 주정부 자산을 빼앗기는 것도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은 경우다.
연구진은 구체적으로 2006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기관투자자들이 주총에서 SRI 안건에 어떻게 투표했는지 기록한 자료들을 분석했다. 지속가능성, 인권, 공정, 정치적 기부 등을 포괄하는 SRI 안건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의제다. 연구 결과는 주정부의 정치적 소속과 투표 행위 간 명확하고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드러냈다. 연구진에 따르면 공화당 주에 속한 기관투자자들이 SRI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 사례는 4.1%p 낮은 수치로, 연구 대상 표본 평균에 13%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2기 집권기(2013~2016)부터 심각해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 시절(2017~2020) 극대화됐는데, 2013년 이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가 하면 언론의 주목을 받는 대기업이나 기관투자자들이 이들 기업에 다수 지분을 보유한 경우에도 SRI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 패턴이 더욱 뚜렷했다.
주지사 누구냐에 따라 안건 통과 여부 자체도 영향
연구진이 발견한 또 하나의 패턴은 특정 주의 주지사가 민주당 소속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교체되는 경우 기관투자자의 SRI 안건 지지율이 10%p 줄어 평균보다 30% 낮았다는 점이다. 반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에는 안건 지지율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 투자자들이 양쪽 눈치를 모두 보고 있음을 드러냈다. 다만 공화당으로 정권 교체 시 지지율 감소 속도가 더 빨랐는데, 특히 선거 1년 후 SRI 지지율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임기 내내 지속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반해 민주당으로 주지사가 교체된 경우 SRI 지지율 상승 폭은 그보다 크지 않았다.
이밖에 연구진은 주정부의 정치적 소속이 SRI 안건의 주총 통과 여부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이 사용한 SRI 표본의 8% 정도가 통과 가능 투표율 10% 범위에 근접해 있었는데 이러한 아슬아슬한 안건들의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주지사의 소속 정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도 공화당 주에서 SRI 안건들이 주주총회를 통과할 확률은 민주당 주보다 17%p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 양극화’가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 미치는 미국 현실 보여줘
연구진은 정치적 영향력이 기관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투자자들이 소속 주의 노동자들과 소비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맞춰 의사결정을 조율함으로써 피투자회사와 이해관계자들의 알력을 최소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투자자들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주 자산 관리 권한까지 가진 정치인들과의 직접적인 갈등을 피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공화당 주지사가 SRI 안건을 지지한 투자사로부터 주정부 자산 위탁 운영권을 빼앗는다든지 언론에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기관투자자들의 행동이 그들에게 주어진 자산 관리 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정부 관계자들이 반대하는 SRI 프로젝트를 지지할 경우 주정부가 피투자사에 주어진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철회하는 사태로 발전해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사회에서 가열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정치적 논쟁과 해당 주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눈치를 보며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기업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주요 정당들의 당파적 이념이 기업들의 지배 구조 및 의사결정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드러낸다. 이제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 추구 행동’에 있어 주주, 고객, 이해관계자의 범위를 넘어 정치 판도의 변화까지 세심히 살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토드 곰리(Todd Gormley)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은 The politicisation of social responsibility|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