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美 재무부, 올해 하반기 환율보고서 발간 韓·中·日 등 7개국, 관찰대상국으로 지정 트럼프 행정부, 압박 수단으로 활용 우려
한국이 1년 만에 미국의 환율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 명단에 다시 올랐다. 대미 무역흑자에 더해 경상수지 흑자 조건이 충족되면서다. 이에 대해 별다른 제재는 없지만 강달러로 인한 미국의 무역 적자를 방어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은 "환율 관찰대상국 지정 영향 제한적"
14일(현지 시각) 미 재무부는 의회에 보고한 '2024년 하반기 주요 교역 대상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중국·일본·한국·싱가포르·대만·베트남·독일 등 7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한국은 지난해 하반기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됐다가 1년 만에 다시 명단에 포함됐다. 나머지 6개국은 지난 상반기에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나라다.
미국 정부는 2015년 제정된 교역촉진법(Trade Facilitation and Trade Enforcement Act of 2015, TFTEA)에 따라 자국과 교역 규모가 큰 20개국의 거시정책과 환율정책을 평가하고 일정 기준에 해당할 경우 심층분석국 또는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구체적 요건은 △대미 무역 흑자 150억 달러(약 21조900억원) 이상 △경상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의 3% 초과 △1년 중 8개월 이상 달러 순매수가 GDP(국내총생산)의 2% 초과 등 세 가지로 이 중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면 관찰대상국, 세 가지 기준 모두를 충족하면 심층분석국으로 지정한다.
미 재무부는 이번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해외 투자자의 국내 자본·외환시장 참여를 촉진하는 개혁이 경제적 기회 확대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며 "노동시장·사회안전망·연금 등 구조개혁 성과도 구조적 불균형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해당 보고서는 자국 통화의 약세를 유도해 환율을 올리는 등 수출경쟁력을 부당하게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며 "일정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양국 교역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도체 등 수출 호조로 경상수지 흑자 확대
미국 정부가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에 다시 지정한 건 대미 무역 흑자와 경상수지 흑자가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한국은 지난 1년(2023년 7월~2024년 6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GDP의 3.7%에 이르고 대미 무역 흑자도 500억 달러(약 69조6,000억원)로 크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한국은 세 가지 요건 가운데 대미 무역 흑자(380억 달러) 기준에만 해당하고 경상수지 흑자는 GDP의 0.2%로 기준에 미달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반도체 등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경상수지 흑자 폭이 확대됐다.
한국은 2015년 교역촉진법 시행 이후 2016년 상반기 환율 관찰대상국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세 차례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된 것을 빼면 줄곧 관찰대상국을 유지해 왔다. 그간의 변화를 살펴보면 2019년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가 기준에 못 미치면서 잠시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됐다가 반년 만에 다시 관찰대상국으로 복귀해 2023년 상반기까지 그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에도 역시 경상수지 흑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두 차례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됐다.
일반적으로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되면 미국과의 무역 분쟁 위험이 줄어들면서 대미 교역 리스크가 낮아진다는 점에서 수출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경제 여건에 따라선 마냥 호재로만 볼 수도 없다. 가장 최근 제외된 지난해 상황을 살펴보면 원화 약세가 관찰대상국 해제의 주요 원인이 됐다. 미 재무부는 특정 국가가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달러를 사들여 통화를 약세로 만드는 것을 경계하지만 지난해 한국은 달러를 매입하기는커녕 매도하면서 가파른 원화 약세 흐름을 방어해야 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달러화 순매도 규모는 458억6,700만 달러(약 63조8,500억원)에 달했고 관찰대상국에서 해제된 2023년 하반기에 반영한 달러 순매도액(2022년 7월~2023년 6월)은 GDP의 0.5%에 이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달러를 너무 쓴 탓에 외환보유액 감소가 너무 가파르다는 지적까지 나왔지만, 정부의 미세 조정에도 불구하고 원화 약세가 주요국보다 강한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지난해 9월 기준 누적 경상수지는 전년 동월 대비 35% 감소했고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도 미 재무부가 제시한 지정 요건에 한참 못 미친 0.5%에 그쳤다.
트럼프, '强달러·무역적자' 방어 정책 전망
이런 가운데 이번 관찰대상국 복귀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조달 시장 접근이 제한되는 심층분석국과 달리 관찰대상국은 제재를 받지 않지만, 시장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동맹국과 제2의 '플라자 합의'와 같은 환율 타협에 나서겠다고 공표해 온 만큼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플라자 합의는 1980년대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일본·서독·프랑스·영국 등 G5(주요 5개국) 국가와 달러 가치를 낮추고 엔·마르크화 가치를 높이기로 한 '환율 조정' 합의를 말한다.
앞서 지난 4월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2기에서는 각국에 대한 관세 위협이 더 명백해질 것"이라며 "트럼프 후보 재집권 시 통상정책을 관장할 가능성이 높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이 달러화 평가 절하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주요 교역 상대국에 인위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높이도록 압박하고, 이를 거부하면 해당 국가의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엔·위완화 약세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명확하게 던진 상태다. 지난 7월 트럼프 당시 후보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심각한 통화 문제를 안고 있다"며 "이는 미국 제조업계에는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그는 "일본과 중국이 자국의 통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해 대미 수출 경쟁력을 높였다"며 "달러 가치를 내려 미국산 수출을 촉진하고 제조업을 부양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 같은 통화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엔·위안화에 동조하는 원화는 환율이 우하향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