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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참전 이후 북-러 동맹 강화 움직임 동북아 긴장 고조 시 중국 견제 나선 일본 ‘자국 방어 회귀’ 가능성 일본 적극적 대외 전략 위해 한국과의 안보 협력 강화해야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북한군 12,000명이 러시아를 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가운데 북한-러시아 동맹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북러 동맹은 깨지기 쉬운 동북아시아 내 힘의 균형을 무너뜨려,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일본의 초점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이 지역 안보와 국방력 유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한국과 미국의 대북한 억지력에 대한 강한 신뢰와 협력이 필요하다.
일본, 팽창적 대외·안보 정책 실행 중
작년 11월 이와야 다케시(Takeshi Iwaya) 일본 외무성 장관은 우크라이나 키이우(kyiv)를 방문해 안드리 시비하(Andrii Sybiha)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과 깜짝 회담을 가졌다. 주된 목적은 러시아 국경 쿠르스크(Kursk)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과 교전하고 있는 북한군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었다. 최근 결성된 북러 군사 동맹이 동북아 안보 균형을 와해시켜 일본이 동아시아 해상 이슈에 대한 관여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전까지 지속돼 온 배타적, 제한적 국방 태세를 전환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방 다자주의’(defence multilateralism)에 참여를 본격화했다. 2014년 아베 신조(Shinzo Abe) 전 수상은 자위대가 침략당한 우방국을 지원할 수 있도록 일본 평화 헌법(pacifist constitution)을 재해석함으로써 안보 전략 재조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또한 아베 총리는 2016년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전략을 발표해 아시아 해상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국에 대한 견제 의사를 명확히 했다. ‘쿼드 안보 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재개에 힘을 보태고 쿼드 동맹국들(미국, 일본, 인도, 호주)과 인도양까지 진출하는 해상 훈련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다자적 안보 노력과 함께 자위대는 일본 최남단 난세이 쇼토(Nansei Shoto, 류큐 제도의 공식 일본 이름)에도 눈을 돌려 중국의 공세에 대응한 전력 강화에도 힘을 기울여 왔다. 일본은 이러한 포괄적 대외 정책을 통해 미국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는 한편, 인도-태평양 국가들 사이에서도 위상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일본 팽창 정책, ‘동북아 평화 유지’ 전제로 해
하지만 일본의 팽창적 지역 전략은 최근접 지역인 동북아시아에서 예견 가능한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을 암묵적 전제로 하고 있다. 지역 평화 유지의 가장 큰 걸림돌인 북한은 미국 핵우산에 의해 효과적으로 억제돼 왔고, 수십 년간의 경제 제재로 취약하고 빈곤한 상태에 놓여 있다. 또한 한국이 북한과의 군사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일본은 일본 열도에서 시선을 넓혀 중국 위협하에 놓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까지 우선순위를 확장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일본 국방 정책에 있어 북한의 위협은 중국의 팽창주의와 비교해 긴급한 현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약한 상태인 북한이 갓 시작된 러시아와의 군사 동맹을 통해 기술 역량을 지원받고,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한다면 한반도를 넘어서는 무력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러시아의 원조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북한에 방공 기술을 제공하고 군사 우주 프로그램을 지원한 바 있다. 여기에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 사령관인 사무엘 파파로(Samuel Paparo) 제독은 러시아가 북한에 핵잠수함 기술까지 이전해 줄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동해상 해안선을 따라 순찰 중인 북한 잠수함들이 첨단 추진 체계를 갖추게 된다면 일본 해상 자위대에 대한 위협 수위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북러 동맹’ 긴장 고조 시 일본도 ‘본토 방위’로 회귀 불가피
이렇게 중국으로부터의 자율성과 첨단 무기로 대담해진 북한은 외교적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목적하에 동북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은 현재의 중국 견제에서 북한 억지로 전략의 초점을 전환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일본 정치 지도자와 국민들도 외교적, 군사적 역량을 자국 영토를 넘어 확장하는 ‘인도-태평양 비전’에 대한 열정이 식을 것이다.
한편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한 우려는 일본의 대만 및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 일본의 확장된 지역 전략을 방해하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계산된 도발을 승인할 가능성도 있다. ‘인도-태평양 비전’을 지원하는 일본 자민당이 소수당 정부로 기능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엘리트 정치인들 역시 첨예한 동북아 긴장 상황에서 국방 역량을 분산하는 데 따른 비판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전략 방향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정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 기술을 완성하고 한국과의 외교 채널을 단절해 버린 상황에서, 트럼프가 북한이 화해를 원하는 상황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과의 안보 협력이 일본 대외 정책 유지의 핵심
따라서 일본은 미국과의 일방 외교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한국, 미국이 참여하는 3자 간 국방 협력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한국 및 한미 동맹을 통한 동북아 안보를 신뢰할 수 있다면 현재까지 지속해 온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지속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미 비슷한 사례도 있는데 2022년 10월 북한이 일본 본토를 넘어 미사일을 발사하자 한국과 미국은 북한 인접 지역에 대한 정밀 폭격 훈련을 실시해 응징한 바 있다. 물론 현재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탄핵 사태로 그러한 전략이 다시 가능할지는 불투명해졌다.
어찌 됐든 한국이 북한이 세우려고 하는 날을 무디게 해준다면, 일본은 북한과 러시아가 긴장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중국 견제를 위한 자위대를 파견할 여유가 생긴다. 한국과의 지속적인 안보 협력이야말로 일본이 ‘인도-태평양 비전’을 유지하고 해당 지역에서 중국의 위협을 제어할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벤 산도(Ben Sando) 글로벌 대만 연구소(Global Taiwan Institute)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Moscow–Pyongyang partnership could derail Japan’s Indo-Pacific strategy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