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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이공계 대학원 소멸 위기,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혁신이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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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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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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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이공계 대학원, 심각한 질적·양적 위기
고소득·안정성 보장된 '의대 쏠림' 가속화
박사 인력 과잉 공급으로 노동시장 악화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에 의대 쏠림, 이공계 기피 현상까지 맞물리며 국내 이공계 대학원들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15년 뒤에는 상위 20여 개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이 학생을 유치하지 못해 이공계 대학원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이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국가의 12대 전략기술에 필요한 수월성을 확보하고 지역 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5년 뒤 지방 거점 등 20여 개 대학만 생존"

7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이공계 대학원 혁신 방안'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이공계 대학원이 급격한 인구 감소 등으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며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역 격차, 대기업 취업 선호 등으로 인해 국내 이공계 대학원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심각한 질적·양적 위기가 도래했다"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인구 감소세에 비춰 15년 뒤에는 상위권 대학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대학이 이공계 대학원생을 한 명도 유치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바탕으로 최근 3년간 이공계 대학원생 비중이 미래에도 이어진다는 가정하면 석사과정생은 2021년 4만6,542명에서 2만2,000여 명으로, 박사과정생은 같은 기간 4만1,100명에서 2만여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3년간의 연평균 증가율 3.44%를 적용하면 2050년 석사과정생은 2만7,000여 명, 박사과정생은 2만4,000여 명으로 감소한다. 과학기술원 등 우수 연구중심대나 지방 거점 국립대, 수도권 대형 사립대로 몰리는 현상을 고려하면 2050년에는 20여 개 대학만 이공계 대학원 운영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연구진은 이공계 대학원의 문제점으로 먼저 대학의 연구개발(R&D) 지원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대학 R&D 지원 체계는 갈수록 교원의 부담이 가중되는 추세"라며 "안정적인 대학원생 인건비 확보의 한계, 대학 간 서열화와 획일화 등 비효율성도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국가연구개발사업 대부분이 대학·학과·연구소 같은 조직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지원되고, 일반 재정지원이 아닌 경쟁 방식으로만 발주된다. 여기에 대학 자체 재원도 부족해 교원 개인의 연구비 확보 부담이 매년 가중되는 상황이다.

또 모든 연구비가 하나의 연구실 계정으로 통합 운영되다 보니 프로젝트별 성과가 명확하지 않고 각종 평가에서 논문 게재 등 연구 실적이 중요하게 작용해 대학 특성화가 정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상위권 대학의 인력 대비 글로벌 경쟁력도 아쉬운 수준이라고 짚었다. 서울대, KAIST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의 경우, 대학별 R&D 예산과 인력 규모가 국가 전체 지원체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의 연구중심대학보다 높지만, 연구의 성과는 세계 상위권 대학과 뚜렷한 격차를 보여 세계적인 경쟁력에도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5년간 4대 과기원 자퇴생 1,000명 넘어

대학의 R&D 지원체계뿐 아니라 일자리 등 노동시장의 여건도 열악한 상황이다. 보고서는 박사 인력의 공급 과잉에 대해 지적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공계 박사 배출 규모 대비 일자리 숫자는 1990년대 2.6배에 달했으나, 2000년대 이후 박사 배출은 5배 가까이 늘었음에도 일자리는 거의 늘지 않아 이 비율이 0.5배로 줄어들었다. 고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배경에는 이공계 박사의 수급 불일치로 인한 취업률 하락과 양질의 일자리 감소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최근 학령 인구 감소, 의대 쏠림 현상 등으로 인해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한때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이공계는 1990년대 말 IMF 사태를 계기로 '이공계 연구원은 평생직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위기를 맞았다. 실제로 1990년까지만 해도 전국 자연계 대학의 입학생 점수 기준으로 서울대 물리학과가 최상위 학과로 자리했지만 2000년대부터는 상위 5위 안에 든 학과가 모두 의대로 채워지게 됐다.

국내 최고의 이공계 인재 육성 기관인 4대 과학기술원(KAIST·UNIST·DGIST·GIST)에서는 학생의 의대 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이공계 영재들이 모이는 KAIST에서도 1학년 새내기가 휴학 후 의대에 진학하는 사례가 17개 학부에서 매년 발생하고 있다. 4대 과기원 기준으로는 최근 5년간 1,006명이 자퇴·미등록·유급 등으로 중도 이탈했는데, 학계에서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의대로 진학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공계 우수 인재 부족 현상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미국-중국의 인재 전쟁이 본격화하며 주요국 정부가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그 과정에서 특히 AI 등 첨단 분야 인재의 '탈(脫)한국'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에서 해외로 떠난 이공계 고급 두뇌의 규모는 매년 3만~4만명으로 지난 10년간 30만명 이상이 해외로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석사는 실무, 박사는 연구 중심으로 개편해야

이처럼 우수 인재의 이공계 대학원 진학이 줄어들면서 인재 유치, 특히 해외 인재 유입 등에 대한 공백이 발생했다. 한국도 12대 전략기술에 대한 R&D 집중 투자와 육성 정책에 따라 전문 인력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인재 수급 방안이 불확실해 향후 국가경쟁력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례로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 산업으로 꼽히는 반도체 산업의 경우 향후 5~10년 내 약 3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다.

연구진은 "이공계 대학원 학생 수 감소는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지적하고 이공계 대학원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줄이는 '다운사이징'을 대학과 관련 부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학원의 여건과 역량에 따라 석사 양성과 박사 양성을 구분한 투트랙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석사 중심 대학원은 실무와 현장 중심의 인력 배출을 위해 교육과 R&D를 지원하고, 박사 중심 대학원은 세계적 수준을 지향하는 연구중심대학과 지역거점 및 연구 분야별 특화형 기관으로 육성하는 방식이다.

보고서는 학령인구 감소 추이나 국내 고등교육의 규모 등으로 감안할 때 연구중심 대학 숫자는 20~30개 선이 적당하다고 분석했다. 또 지역 및 중소형 대학원의 경우, 석사과정을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지역 산업 수요와 연계해 기업에 필요한 R&D 과제를 수행하고 지역 인재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보고서는 △고등교육 재정 지원과 대학 R&D 지원의 연계 및 재구조화 △대학 단위 지원을 위한 대학원 특성화 사업 추진 등을 이공계 대학원 혁신 방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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