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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618곳 지주택 중 187곳 분쟁 부실 조합 운영, 탈퇴·환불 지연 등 다른 계좌 가입비 받아 횡령·배임도

전국 지역주택조합(지주택) 10곳 중 3곳은 부실한 조합 운영, 가입비·분담금 환불 지연으로 분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다음 달까지 지주택 사업에 대해 전수 실태점검을 실시한 후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1980년 제도가 도입된 지 45년 만이다.
국토부, 전국 지역주택조합 분쟁 현황조사
8일 국토부는 전국 618개 지주택을 대상으로 분쟁 현황조사를 벌인 결과 30.2%인 187개 조합이 분쟁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광주전남 타운홀미팅에서 지주택 피해자의 질의에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을 지시해 (국토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지주택은 무주택자 또는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 소유자들이 조합을 구성해 공동으로 토지를 확보하고, 주택을 지어 청약 경쟁 없이 공급받는 제도다. 사업 절차가 재개발·재건축보다 간단하고 청약 제도 예외 적용을 받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토지 확보가 안 돼 사업이 지연되고, 이로 인해 추가 분담금이 늘어 사업 자체가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618개 조합 중 설립인가를 받지 못하고 모집 단계에 있는 조합이 316개(51.1%), 모집신고 후 3년 이상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한 조합이 208곳(33.6%)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주택은 조합원 모집신고를 하려면 대지 50% 이상의 사용권원을 확보, 조합설립 인가를 받으려면 대지 80% 이상 사용권원 확보, 대지 15% 이상 소유권을 확보한 상태여야 한다. 그만큼 토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조합이 많다는 의미다.
분쟁은 사업 초기 단계인 조합원 모집, 조합설립인가 단계에서는 부실한 조합운영(52건)과 탈퇴·환불 지연(50건)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사업이 본격 추진되는 사업계획승인 이후 역시 탈퇴·환불 지연(13건), 공사비 갈등(11건)이 분쟁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분쟁이 발생한 187개 조합 중 조합원 모집 단계인 조합이 103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설립인가된 조합과 사업계획승인 이후 조합은 각각 42곳이었다. 사업 초기에 분쟁이 집중되는 것은 토지 확보가 어렵고 인허가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토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체 지주택 사업을 대상으로 다음 달 말까지 전수 실태점검을 하기로 했다. 주요 분쟁사업장은 관계 기관 합동 특별점검을 실시, 원인을 파악하고 중재·조정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제도·운영상 문제점을 찾고 사업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등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주택, 대체조합원 없어도 분담금 환불 가능
업계는 이미 법원이 ‘대체조합원이 없어도 조합원 분담금을 환불해 줘야 한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만큼, 사업성이 없는 지주택 정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 본동 402-1 일대 ‘한강지역주택조합’은 지난해 10월 조합원의 납입금 반환 소송에서 패소했다. 대체조합원 모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조합 탈퇴를 원하는 조합원이 분담금을 포함한 납입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강지주택은 본동 일대에 지하 6층~지상 34층, 4개동 836가구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입지는 탁월하다. 지하철 9호선 노들역 초역세권 위치에 있으며, 차량을 이용하면 한강대교에 곧장 진입할 수 있다. 흑석동과 노량진동 사이에 위치해 뉴타운 사업과 시너지를 이룰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좋은 입지에도 불구하고 한강지주택도 다른 지주택 사업과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2020년 12월 30일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은 뒤 현재 사업계획승인 단계에 있다. 사업주체인 조합이 토지소유권 95% 이상 확보해야 사업승인을 받을 수 있는데, 최근 수년간 토지확보가 더뎠다.
사업 추진이 계획대로 되지 않자 일부 조합원들은 납입금 반환을 요구하며 탈퇴 의사를 밝혔다. 이에 조합은 2022년 4월 정기총회를 열어 신청자에 한해 대체조합원 모집을 조건으로 납입금을 반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합은 대체조합원이 모집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고, 이에 일부 조합원들은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조합원 측은 대체조합원 모집이라는 조건이 도래하는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기한이라고 주장하며 납입금 반환을 요구했다. 대체조합원이 모집됐을 때는 물론이고 모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정할 정도로 기간이 지나면 조합원에게 납입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조합원의 손을 들어줬다. 대체조합원 모집 책임이 조합에 있는데, 2023년 7월 동작구에 추가 모집을 위한 변경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이 소송의 변론이 종결되는 2024년 7월까지도 추가 조합원 모집이 없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법원은 사실상 추가 모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법원이 지주택 조합의 관행에 제동 걸었다는 의미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그간 대체조합원 모집을 핑계로 탈퇴 희망 조합원에게 환불 거부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있었는데, 이제 다른 지주택에서 분쟁을 겪는 조합원들에게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익 좇지 않고 타협하는 조합만 생존"
지주택은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이라는 희망을 안고 출발했지만, 현실은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사익을 추구하는 일부 조합장과 업무대행사의 손에 들어가는 구조적 문제로 얼룩져 있다. 그중에서도 업무대행사의 비위행위는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사익을 목적으로 하는 업무대행사가 조합을 장악하면 정상적인 사업진행이 이뤄지지 않고 각종 위법, 편법 등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비위행위 유형은 다양하다. 업무대행사 직원인 법인등기이사를 조합장으로 내세워 국토부 표준계약서와는 다른 이중계약을 작성하게 하거나, 또다른 법인등기이사 명의로 계열사를 만들어 나눠먹기식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 같은 비위행위는 주택법 위반에 해당할 뿐 아니라 이면계약체결, 중복용역계약체결을 통한 조합자금착복은 업무상배임에 해당한다.
또한 조합장 본인이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와 토지용역계약을 체결하거나, 실제로는 철거업무를 하지 않은 업체와 허위용역계약을 체결해 대금을 지급하는 등의 사익편취 행위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행위들은 조합원들의 정보공개 요구를 무시하고, 조합원 제명을 운운하며 겁박하는 등의 방식으로 은폐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결국 지나치게 사익을 좇기보다는 사업의 진정한 주체인 조합원들과 상생하는 태도가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고 입을 모은다. 목포의 석현도룡지역주택조합은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조합원 1인당 1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감수하고 사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 업무대행사 구일개발의 개입으로 최소 250억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하며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비위행위로 지주택에 문제가 생기면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상황 극복을 위한 자문을 구하게 되는데, 구일개발은 다른 대행사와는 달리, 상생을 강조하며 지주택 사업 진행이 정상화할 수 있도록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