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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랠리서 나 홀로 실적 쇼크 올해 2분기 미래 손실 털어 하반기 실적 개선 여지 확대

삼성전자가 올 2분기(4~6월) 시장의 기대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실적 쇼크’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사업이 예상보다 더 부진했고, 적자 규모를 줄일 것으로 기대됐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여전히 2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이 난 영향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반도체 재고 충당금도 많이 쌓은 만큼 2분기를 바닥으로 보고 3분기엔 확실한 반등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전망치 1조 이상 밑돌아, DS 재고 충당 및 대중제재 영향
8일 삼성전자는 잠정 실적 발표를 통해 올 2분기 연결기준 매출 74조원, 영업이익 4조6,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작년 2분기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0.1%, 55.9% 줄어든 수치다. 1분기 대비 매출은 6.49%, 영업이익은 31.24% 줄었다. 영업이익은 이미 낮아진 시장 전망치(6조3,000억원)를 크게 밑돌았다. 증권가에서는 지난 한 달간 삼성전자 2분기 예상 영업이익 눈높이를 2조원가량 급격하게 낮춰왔으나 실제 성적은 이보다 더 저조했다.
2분기 실적은 삼성전자의 캐시카우인 반도체 사업의 부진으로 요약된다. 삼성전자는 잠정 실적에서 사업 부문별 실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증권가에선 반도체(DS) 부문 영업이익이 4,000억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업황이 개선되던 작년 2분기(6조4,500억원) 대비 94% 가까이 곤두박질친 것이다. 여기엔 재고 충당 및 첨단 AI 칩에 대한 대(對)중 제재 영향 등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시장의 기대를 모았던 HBM 사업이 발목을 잡았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성장 동력으로 작용해야 할 HBM의 매출이 오히려 전 분기 대비 감소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미주 고객사 품질 인증과 수주 모두 요원한 상황”이라고 했다. AI 칩 시장의 80%를 장악한 ‘큰손’ 엔비디아에 HBM3E(HBM 5세대) 12단 납품을 제때 하지 못하면서 재고가 쌓이고 수익성이 악화했다.
HBM뿐만 아니라 다른 반도체 사업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은 2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증권가는 예상했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첨단 공정에서 고객사 확보에 난항을 겪으며 작년 4분기부터 매 분기 조단위의 적자 행렬을 이어오고 있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사업도 가격이 하락하며 적자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반도체는 달러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6월 이후 가파르게 하락한 원·달러 환율도 실적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D램價 급등세, 가격 협상력 제고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당장 관세 불확실성이나 약달러 등 대외 악재에서 벗어날 순 없지만, 최근 D램 가격이 공급 부족으로 크게 오른 만큼 하반기 실적 개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달보다 23.81% 급등한 2.60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4월 22.22%, 5월 27.27% 오른 데 이어 석 달 연속 20% 이상의 급등세다.
최근 D램 시장은 단종이 예고된 구형 제품의 가격이 신형 더블데이터레이트(DDR)5보다 급등세를 보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상호 관세 90일 유예 등 관세 불확실성과 DDR4 제품 단종 예고로 인해 고객사의 재고 비축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결과다. PC 조립 업체들의 D램 재고 수준은 올해 1분기 말 9~13주분에서 2분기 초 12~15주분으로 늘었다. 반면 D램 공급업체들의 재고 수준은 같은 기간 10~16주에서 6~13주로 감소해,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SK하이닉스에 상대적으로 뒤처진 HBM에서도 삼성전자는 일부 기술 진전을 이뤘다. 6세대 HBM인 HBM4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반이라 할 수 있는 '1c 설계 공정 기반 D램'을 최근 개발한 것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내부 절차도 끝냈다. 1c는 현존하는 D램 메모리 공정 기술 중 최신이다. 1나노(㎚·10억분의 1m)급으로, 10㎚급 공정 6단계(1x·1y·1z·1a·1b·1c) 중에서도 가장 미세하다. 삼성은 반도체 생산라인에 1c 공정을 적용하고 최신 D램을 만들기 시작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기반으로 HBM4도 개발해 시장에 내놓겠단 계획이다. 지난달엔 HBM4보다 앞선 세대인 HBM3E를 AMD와 브로드컴 등에 공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개선된 HBM 제품이 고객별로 평가 및 출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파운드리 시장
첨단 인공지능(AI)칩에 대한 대중 제재의 악영향과 라인 가동률 저하 등으로 부진했던 비메모리 사업도 하반기부턴 활기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파운드리가 힘을 내고 있다. 지난달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2500'을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는데, 제품 상태를 '대량 양산'으로 표기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칩을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수율이 올랐다는 걸 의미한다. 삼성은 엑시노스 2500을 신형 갤럭시 스마트폰 제품들에 탑재할 방침이다. 오는 9일 공개되는 폴더블폰 '갤럭시 Z플립7' 시리즈부터 승부를 띄운다. 플립7은 엑시노스 2500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도 보인다.
내년 첨단 칩 시장을 주도할 2㎚ 공정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시장에서 고객사와 협력과 네트워크에 적극 투자하면서 2㎚ 공정 수주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 5㎚, 3㎚에서 약속한 성능과 수율을 맞추지 못하며 잃은 신뢰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열린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연례행사인 ‘세이프(SAFE) 2025’에서 고객 수요 전망이 불투명한 1.4㎚ 도입은 미루고 2㎚ 공정에 집중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관건은 수조원의 투자금이 들어가는 미국 테일러 공장이 본격적으로 셋업되기 전에 2㎚ 공정 수율을 안정화하고 현지 고객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퀄컴뿐만 아니라 삼성전자가 약점을 보여온 빅칩(서버용 칩 파운드리) 시장에서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등 대형 고객사들의 주문을 따내야 한다. 업계에서는 2㎚ 공정 수율을 6개월 내 60~70%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고객사들이 원하는 성능과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지 여부에 삼성 파운드리의 명운이 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