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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중국 관세 145%에서 30%로 하향 동남아엔 중국 겨냥한 환적 관세 40% 신설 중국 내 생산기지 복귀 움직임 가속화 전망

중국 제조업체들이 동남아시아로 생산 거점을 확대해 미국으로의 수출을 우회하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30%로 낮추는 대신, 동남아시아 국가에 최대 40%에 달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환적 수입품에도 고율 관세를 적용하면서 중국과 동남아 간 관세 격차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상당수 중국 기업이 생산기지를 다시 중국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동남아 고율 관세로 생산거점 이전 유인 사라져
4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45%에서 30%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동남아시아 주요국에 10~40% 수준의 신규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 제조업체들이 공급망 재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그간 저렴한 노동력, 지리적 이점 등을 활용해 베트남·캄보디아·인도네시아 등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며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전개해 왔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으로 생산 거점 이전의 유인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 1일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공장에서 생산돼 동남아시아 등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환적 제품'에 대해 40%의 관세를 일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루이즈 루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수석 연구원은 "일부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더 먼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대중국 관세 격차가 10%포인트 내외에 불과하다면 중국 내 생산망을 유지하는 쪽이 비용이나 공급망 측면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며 "상당수 기업은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고 진단했다.

환적 관세와 별개로 최대 40%의 상호관세 부과
환적 관세에 더해 동남아시아 주요국에 대한 상호관세까지 더해지면서 중국 제조사와 바이어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주요국에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국가별로는 최대 수혜국으로 꼽혀온 베트남에 20%, 캄보디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에 19%, 미얀마·라오스에 40%의 관세가 매겨졌다. 이는 지난 4월 발표한 관세율에 비해 대체로 낮아진 수치나, 여전히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실제 무역 통계도 이러한 공급망 변화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 통계 당국에 따르면 5월 기준 중국산 제품의 미국 수입은 전년 동월 대비 43% 줄었지만, 같은 기간 아세안(ASEAN) 국가로부터의 수입은 15% 증가했다. 이 기간 중국산 제품 34억 달러가 베트남을 통해 미국으로 수출되며 인도네시아 경유 수출도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도 수출 전략을 조정하면서 직접적인 대미 수출은 16.1% 감소했지만, 아세안과 유럽연합(EU), 일본, 대만 등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우회 수출을 확대하자, 미국은 첨단 기술 분야로까지 대응 범위를 넓히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AI 칩 분야에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중국산 고성능 칩의 우회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두 나라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고급 인공지능(AI) 칩이 싱가포르를 거쳐 말레이시아로 운송된 정황이 포착되면서, 싱가포르에서는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며, 말레이시아 당국도 미국 측 요청에 따라 수입 품목에 대한 정밀 조사를 약속한 상태다.
남반구 국가들, 美 관세 압박에 中과의 협력 모색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의 무차별적 관세 위협에 대중국 포위망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조치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글로벌사우스 지역 국가들이 미국 대신 중국과 외교·경제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 시장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부터 15~30%의 상호관세를 부과받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30~31%)과 레소토(50%) 등에서는 관세가 예정대로 부과될 경우 의류, 과일, 자동차 등의 미국 수출 길이 사실상 막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당국은 중국 시장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웨데 만타셰 남아공 자원부 장관은 최근 “미국이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면 우리는 대체 시장을 찾아야 한다”며 “우리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말했다. CNN은 “아프리카가 트럼프 관세란 현실에 적응하면 중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아프리카와 오래 교류해 온 중국은 이들 국가에 생명선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난 6월,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관세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며 우호적 무역 환경 조성에 나섰다.
동남아와 인도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국의 고율 관세로 인해 중국과 이들 국가 간 관세 격차가 좁혀지면서, 오히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에 내몰리고 있다. 생산 유치와 수출 확대를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지만, 관세 부담을 감안하면 중국에 다시 기회를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의 최근 외교 전략은 트럼프가 마음껏 요리하도록 두는 것(Let Trump cook)”이라며 “중국은 트럼프가 무역 전쟁을 벌이며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