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억 달러 취소하겠다" 화석연료 복귀 꿈꾸는 트럼프 행정부, 셧다운 틈타 기후 예산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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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16개 주 정부 대규모 기후 예산 취소 DOE·EPA 등도 친환경 예산 삭감, 제도 폐지 등 착수해 "친환경 관련 용어는 금지어" DOE의 극단적 조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6개 주 정부의 기후 관련 예산을 대거 삭감하기로 했다. 연방 정부의 일시적 업무 정지(셧다운)가 시작되자마자 민주당의 기후 정책에 발맞추고 있는 주들을 겨냥, 청정에너지 재편에 제동을 거는 양상이다.
트럼프, 셧다운 첫날 기후 예산 줄여
2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전날 X에 올린 글에서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포함한 16개 주를 대상으로 하는 기후 관련 자금 지원 약 80억 달러(약 11조2,000억원)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미 에너지부(DOE)에서 곧 발표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미 언론들은 캘리포니아, 뉴욕 외에 뉴저지, 워싱턴, 오리건, 매사추세츠, 메릴랜드, 일리노이, 버몬트, 뉴햄프셔, 코네티컷, 델라웨어, 하와이, 콜로라도, 미네소타, 뉴멕시코 등의 기후 관련 연방 정부 지원 예산이 삭감된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예산 편성 합의 실패로 연방 정부 셧다운이 시작된 첫날 단행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백악관의 지원 취소가 민주당을 향한 일종의 '정치적 보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에 예산을 삭감당한 주들 대부분이 민주당의 주도하에 적극적으로 기후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현재 백악관은 민주당 지도부와 극좌파가 예산 처리에 협조하는 대가로 불법 이민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 예산을 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강조해 오던 트럼프 대통령이 셧다운을 틈타 청정에너지 재편을 막아섰다는 평가도 있다. 취소된 기후 관련 자금이 기후 변화 대응, 청정에너지 프로젝트, 환경 보호 프로그램 등에 투입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석탄, 천연가스, 원자력 등 기존 에너지원 중심의 체제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힘 잃는 기후 변화 대응책들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 관련 예산 삭감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7월 미국 DOE는 지난 9월 30일 종료 예정이었던 회계연도 예산 중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주 정부 및 지방 정부의 저소득층 대상 커뮤니티 에너지 프로그램 예산을 대폭 줄이겠다고 예고했다.
당시 뉴욕타임스(NYT)가 입수한 DOE 내부 문서에 따르면, 풍력 발전 프로젝트 예산은 기존 1억3,700만 달러(약 1,892억원)에서 약 3,000만 달러(약 414억원)로, 태양광 발전 예산은 3억1,800만 달러(약 4,392억원)에서 약 4,200만 달러(약 580억원)로 각각 약 90% 가까이 줄어든다. 난방비 절감, 주택 단열 개선, 가정용 에너지 진단 등을 지원해 온 커뮤니티 에너지 프로그램의 예산도 사실상 전액 삭감될 예정이었다. 다만 해당 방안의 현실화 여부는 미국 의회가 신규 회계연도 예산안을 도출하지 못한 현시점에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청정에너지 밀어내기' 기조는 예산뿐만 아니라 제도적 개편 움직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현재 ‘에너지 스타(Energy Star)’ 프로그램의 폐지를 추진 중이다. 에너지 스타는 가정용 전자제품에 붙는 파란색 인증 라벨로, 소비자들이 에너지 절약 제품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표적인 연방 정부 프로그램이다. EPA에 따르면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은 지난 수십 년간 누적 약 5,000억 달러(약 702조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는 데 기여했고, 약 40억 톤에 달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방지하는 효과를 냈다. 미 재무부 역시 풍력 및 태양광 프로젝트에 대한 세금 공제를 종료하고, 외국 기업이 참여한 청정에너지 공급망에 대해 더 강도 높은 규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DOE, '본분'마저 내려놨다?
최근에는 DOE가 ‘기후변화’, ‘배출’, ‘녹색’, ‘탈탄소’ 등 표현을 금지어로 지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DOE 산하 에너지 효율 및 재생에너지국(EERE)은 내부 이메일을 통해 피해야 할 단어 목록을 업데이트하며 해당 용어들을 포함했다. ‘에너지 전환’, ‘지속가능’, ‘지속가능성’, ‘청정에너지’, ‘더러운 에너지’, ‘탄소 발자국’, ‘CO₂발자국’, ‘세금 혜택’, ‘세금 크레딧’, ‘보조금’ 등도 공무원들이 써서는 안 되는 표현으로 지목됐다.
이메일에는 “현 행정부의 관점과 우선순위에 맞지 않는 용어는 피하라”는 지시가 담겼다. 이번 지침은 내부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외부 커뮤니케이션, 연방정부 자금 지원 신청, 보고서, 브리핑 등에도 적용된다. 폴리티코는 “이는 기후변화의 실상을 부인하거나 축소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 중 가장 최근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DOE의 목록에 실린 단어들은 EERE 사명의 핵심에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